등불이 켜질 무렵
청솔고개
참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어디쯤인가요 여기가
찬란한 노을도 가뭇없이
사그라지고 이제는
어디에선가 이 무거운 머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더욱 낮게 베고
그냥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시간입니다
가장 낮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 머리를 붙이고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등불을 켜야 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등불을 켜야 합니다
어둠에 묻혀 가는
사랑과 추억을 밝히려
등불을 켜야 합니다
한낮의 이글거리던 태양도
그 아래 영롱히 빛나던 뭇 생명들의 영광도
어둠에 묻혀버리니 내 불망(不忘)의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서
불을 밝혀야 합니다 등불을 켭니다
집마다 창마다 더욱 붉고 은성(殷盛)한 등불의 순례(巡禮)
자꾸만 뜨거워지는 내 청춘(靑春)의 가슴에는
들풀들의 푸른 광휘(光輝)와 숲들의 푸른 잎새와 초원(草原)에
이름 모를 들꽃들의 영광(榮光)입니다
그대로 청춘의 추억입니다
온기(溫氣)를 더해 가는
백열등(白熱燈) 아래 달그락거리는
행복의 소리를 들으면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위의 시는 2002년 봄에 쓴 것임]
2020.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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