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가는 길
청솔고개
어제 아버지가 심한 설사로 또 입원하셨다. 담당의사는 탈수 증상으로 섬망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는 병상에서 괴로운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여보, 여보…….” 하고 소리치신다. 그리운 당신의 아내를 찾으시는 것이다.
문득 울엄마가 생각난다. 울엄마와 같이 외갓집 갔던 길이 생각난다. 외갓집은 우리 집에서 십리 남짓, 두 ⁰모랑지만 돌아가면 산 밑 천변에 있다. 외갓집과 관련된 가장 뚜렷한 기억은 딱 두 가지.
하나는 예닐곱 살 때, 외갓집 ⁱ죽담에 놓인 토종벌에 귓불을 두어 번 쏘였다가 혼비백산했던 일, 또 하나는 외갓집 앞 물가에서 거위한테 쫒기다가 물린 기억, 그 후 외갓집은 정말 가기 싫었었다. 기억하기 싫은 것, 첫 순위였다. 그래서 그 후 외가에 잘 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외가라 하면 벌떼와 거위 떼의 습격 같은 공포의 기억만 뇌리에 남아 있는 거다. 그렇지만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던 다섯 살 이전의 외갓집 가는 길은 그 자체가 나의 유년의 평화 경이었다. ²갱빈에 지천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 연분홍 싸리 꽃 같은 떨기나무의 쌉싸름한 꽃 향에 취하면서 타박타박 걸어서 엄마와의 동행하던, 내 생애 다시 꿈꾸고 싶은 평화경이다. 그래서 그 후 지금까지도 엄마와 같이 손잡고 외갓집 가는 길은 아직도 꿈에 한 번씩 나타나 보인다. 내가 힘들다고 칭얼대거나 보채면 엄마는 나를 안기도 하면서 업기도 하면서 아장아장 걸리면서 외갓집 길 갔던 다정하기만 했던 기억. 모래와 자갈뿐인 거친 길, 먼지와 가시덤불 길이었지만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과 포근한 품 속 이 있었기에 더 좋았던 길.
향긋한 분내 나던, 앳되고 젊은 새댁인, 이쁜 울엄마. 그 때는 울엄마가 내 손만 잡으면, 나를 그 품에 안기만 하면, 어린 내 마음까지 두근거리게 하던 나의 연인이셨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울엄마 얼굴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지금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서, 쪼르르 달려가서 엄마! 하고 불러보고 싶다.
2020. 4. 23.
[주(注)]
⁰모랑지 : ‘산모퉁이’의 토박이 말
ⁱ죽담 : ‘방 문 앞에 약간 높이 쌓아 놓은 흙담’의 뜻으로 사용된 토박이 말
²갱빈 : ‘강변’의 토박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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