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록 1
청솔고개
어제 산행 후, 점심을 같이 먹고 아이 데려다 주면서 큰집에 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통증을 못견뎌하신다. 오늘은 또 입술이 두어 배나 부어올랐다. 몇 달 전에는 이런 식으로 혀 밑이 부어서 식사하기도, 숨쉬기도 힘들었던 게 생각난다. 1년 전에도 그랬다. 원인은 아무래도 면역력 저하인 것 같았다. 몸이 쇠약해지니 생기는 증상이다.
아버지는 또 나를 보시더니 “내가 그날 행인이 신고해서 차에 실려 오기 전에, 아무한테도 눈에 띄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면 지금 이런 고통은 없을 텐데…….”하고 넋두리하신다. 재작년 운동하신다면서 외출했는데, 병원의 다섯개과 이상의 복잡한 복약 오남용으로 생긴 섬망 증상으로 길 가다가 방향을 잃고 탈진해 있는 모습을 행인이 신고해서 구급대원 셋과 경찰 둘에게 구조된 경우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런 푸념을 요즘 자주 입에 담으신다. 나는 오죽 고통스러우면 저런 말씀을 다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수록 내 속이 더 힘들어진다. 또, “니는 나한테 더할 수 없이 잘 해주는데도 내가 이렇게 자꾸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어쩌나!”고 하신다. 난 그냥 듣기만 한다. 이럴 경우 아무런 대꾸도 단말마적 통증에 시달리는 당신에게는 어떤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잘 안다. 아버지는 마냥 통증에 허덕이신다. 먼저 병원 창구에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두 군데 접수를 했다. 신경외과에서는 먼저 엑스레이를 찍었다. 담당 의사가 그 사진 판독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작년 9월 3일 이후 척추 뼈가 하나 압착이 돼 손상된 게 있었으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금은 어떻게 직접적인 처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가능한 다른 방식으로 시술한다고 했다. 그 시술에 대한 설명을 나에게 하고 사인을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시술로 등에 생기는 참을 수 없는 병증을 싹 도려내고 싶으신데, 주사로 한다고 하니 기대에 못 미쳐하시는 것 같다. 절차대로 주사실에서 탈의하고 간호사와 같이 1층 내려가서 심혈관 실에 가서 좀 전에 찍은 엑스레이를 바탕으로 시술을 받으셨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협착한 척추 사이에 긴 주사로 9대로 처치하는 방식이 주사 시술이다. 나중에 담당 의사는 아버지의 척추 사이가 워낙 협착이 돼서 시술하는 데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시술 후 탈의실에서 다시 옷을 갈아입는데 시술로 인한 통증 때문에 굴신도 제대로 못하시니 시간이 10분도 더 걸렸다. 아까 접수해 놓은 이비인후과 가서 진료하니 아버지의 증세는 일종의 알레르기이며 어제 심장혈관내과에서 추가로 처방 받은 약을 잘 복용하시도록 강조한다. 집에 가서 냉찜질도 하도록 주의를 준다. 주사는 없고 약만 처방해 준다. 아버지를 지키고 돌보아 드리면서, 22년 후 내가 현재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때, 내가 아버지보다 심신의 건강을 더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간 아버지의 건강 진행 과정 앞부분을 대략 정리해 본다.
2018년 4월 18일: 11시에 정신건강의학과 가시려고 일어나다가 물이 있는 곳에 미끄러져서 엉덩이를 부딪쳤는데 왼쪽 어깨 통증이 생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티브이고치는 사람들의 작업 상황은 아버지가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고 꿈인 게 판명이 남. 왜냐하면 대문도, 방문도 안 열어 줬고 아버지가 수리하는 사람에게 욕까지 했는데 반응도 없고 나중 아버지가 밥 먹으려고 할 때는 그들이 안 보인다는 점, 무엇보다도 그들의 침묵, 고개 숙임 등으로 확인함.
2018년 4월 21일: 고향 친구들과 두 달에 한 번씩 식사모임을 하고 있는데 내 휴대폰에 아버지 전화번호가 떴다. 순간, 직감적으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아서 약간 긴장이 되고 불안했다. 아버지 폰으로 119대원이라고 하면서 ㅊㅇㅇ님이 쓰러져 있으신 걸 보고 행인이 신고해서 대원과 경찰이 모시고 가는 중이라고 했다. 큰집 근처 파출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119구급대 차와 파출소 업무용 차 두대가 동원된 채 아버지가 내리셨다. 땀에 흠뻑 젖어서 멍한 표정을 하시고 있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괜찮다.”고만 하신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를 뵐 때마다 이상한 언행을 보이셨다. “텔레비 수리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있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도 대꾸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아서 화를 막 내도 고개만 숙이고 고장수리만 하고 있더라. 거 참...”, “꿈에 화산이 폭발해서 바위 녹은 벌건 물이 막 쏟아지는 끔직한 광경을 보았다.” 등. 그 다음 날: 아버지 거의 정신이 없으시고 고개를 못 가누심. 정신없으심은 갈수록 심해짐. 목과 어깨 등 상체를 가누도록 도와드려도 그냥 앞으로 숙여짐. 아침 식사하시다 머리카락이 국그릇에 적셔진 형국 그대로임.
다시 그 다음 날: 건너 방에 피아노를 치러 가시는 등 걸음과 정신이 많이 회복되심. 그건 어제 아무래도 상황을 파악해 볼 때, 아버지가 약의 미복용, 중첩 복용 등 오남용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내가 임의로 정신건강, 신경외과, 정형외과 약을 모두 빼버린 후 나타나는 결과라고 내 나름대로 판단됨. 저녁 10시 다 돼 가는데 아버지가 다시 혈변의 고통을 호소하심. 다시 그 다음 날: 기력과 정신력은 좀 회복하셨는데 혈변, 복통, 안절부절못하심 등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남. 소화기내과에 예약 후 10시 반쯤 집에서 출발. 소화기내과에서 절차 밟아 결국 입원 조치함. 진료 결과 약의 과오남용으로 인한 일종의 *섬망(譫妄)증상이라고 주치의가 판정함. 저녁에 또 심한 혈변 한 번 하심. [여기까지가 전반부 아버지의 투병, 나의 간병 기록임.] 2020. 4. 8.
[주(注)]
*섬망(譫妄) : delirium, 의식장애와 내적인 흥분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운동성 흥분을 나타내는 병적 정신상태. 급성 외인성(外因性) 반응증세로서 나타난다. 동시에 사고장애(思考障碍), 양해나 예측의 장애, 환각이나 착각, 부동하는 망상적인 착상이 있고, 때로는 심한 불안 등을 수반한다.(네이버 두산백과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