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록 3
청솔고개
6313호 병실에서 (2020년 4월의 끝자락)
매일 큰집에 가서 아버지가 챙겨드리고 나올 때 자주 하시던 아버지 말씀, “날은 이리도 좋은데……. 내 때문에 니가 수고 많다.” 귀에 쨍하다. 이제 자칫하면 그 말씀도 못 하실 것 같다. 못 들을 것 같다. 우리 아이, 아내, 동생들…….가족들도 알아보시지 못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3대(三代) 여행 이튿날, 통영 욕지도 가는 길(2019년 4월의 끝자락)
(전략)아버지는 차를 배에 태워서 가는 게 무척 신기하신 듯했다. 아버지와 손자는 내려서 승선하고 난 차를 몰아서 배에 실었다. 뱃전에 올라보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제법 출렁거린다. 4~50분 정도 지나니 욕지도 항이 보인다. 내려서 보니 점심시간 펜션 입실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어서 섬 주변을 일주해 보았다. 날이 아직 개지 않아 구름과 안개가 섬을 휘감는다. 그냥 운해다. 안개가 개서 바위 절벽 풍광과 전망이 좋은 정자 옆에 차를 세우고 커피 한 잔씩 하면서 쉬었다. 아래는 다랑이 밭인데 일하는 섬 주민 두엇이 보인다. 아버지가 큰소리로 “수고하십니다.”고 외치신다. 거기서도 뭐라고 화답한다. 아버지의 기분도 무척 고조되신 듯하다.
(중략) 지금의 섬 일주는 운해에 가려서 미완성. 이어서 ‘해녀 *** 포차’라고 간판이 걸려있는 욕지도 동항에 소재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미리 신경 써서 알아보고 예약해 놓은 곳이다. 아마 해녀가 직접 하는 식당인가보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회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주 기름지고 찰지다.(후략)
6313호 병실에서(2020년 4월의 끝자락)
관장을 세 번이나 하는 것은 신장 기능이 떨어져서 칼륨 등 몸속 노폐물, 독소를 배출 못하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수액 류를 최대한 보충해줘야 하는데 심장 기능마저 많이 떨어져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혈압이 유지돼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 혈압 떨어지면 위중해질 수 있는데,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때가 오면 전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한다, 위중하면 1인실로 이송할 것이다, 연세로 보나, 병증으로 보나 연명치료(생명연장장치)는 불필요하니 굳이 중환자실로 갈 필요 없다고 그간 아침 저녁 몇 차례 회진과 면담에서 주치의는 설명한다.
3대(三代) 여행 이튿날, 통영 욕지도 해변에서 아버지의 명상 (2019년 4월의 끝자락)
(전략) 바닷가 펜션은 2시 입실이라서 천천히, 느긋이 회를 즐기고 고개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전망과 풍광이 그저 그만이었다. 아버지께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정말 만족해하셨다. 아버지는 벤치 밑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서 마침 날이 개서 따스하게 비치는 봄 햇살을 즐기고 계셨다. 눈을 감으시고 명상을 하시는 것 같다. 가끔 독경도 하신다. 내가 봐도 정말 멋진 장소였다. 왼쪽 해안은 아주 넓고 큰 바위가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주인장은 이 거북바위에 가려면 2분 정도 걸리니 아주 쉽다고 잘 설명해 준다. 햇살도 따스하지만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서, 행여 아버지께서 원로에 감기 몸살이라도 하실까봐 들어오시라고 해도 그냥 거기가 좋은지 제법 오래 계신다.
6313호 병실에서(2020년 4월의 끝자락)
12시 다 돼서 나도 자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난데없이 횡설수설 하신다. 욕설도 또렷하게 하신다. “**놈아!......” 등등. 내가 어쩔까 하고 황당히 대응하고 있는데 이미 간호사 둘이 와서 수습하고자 한다.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해보니 바로 대응하는 것이리라. 다른 사람 안면방해 전에 신속대응 조처일 터. 결국은 뒤편 1인실로 이사 후, 수습하고 나니 1시가 다 됐다. 내가 나가면서 죄송하다고 두 번이나 나지막이 사과했다. 아무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러니 내가 더 민망하고 곤혹하다. 일단 옮기고 나니 안심은 된다. 새벽에 보니 산호호흡 마스크와 코줄이 또 빠져 있다. 검붉은 액체가 환자복 상의에 묻어 있다. 어제부터 결박을 해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3대(三代) 여행 이튿날, 통영 욕지도의 거북바위 탐방(2019년 4월의 끝자락)
오른쪽 해안 절벽의 풍광도 참 멋지다. 가파른 고개 너머 이런 명소가 있다니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다. 좀 쉬었다가 거북바위에 가보기로 말씀드리니 흔쾌히 가자하신다. 아버지의 이런 적극성이 늘 날 감동케 한다. 내가 먼저 비가 와서 약간 질벅한 언덕을 오르다가 그냥 미끄러져 바지에 진흙이 묻어버렸다. 제법 세게 미끄러진 것 같다. 내 가슴팍이 좀 아픈 게 충격이 있는 것 같다. (중략) 좀 험하게 난 갯바위 길을 좀 내려가니, 마치 부산 태종대 해안 바위처럼 엄청나게 넓은 장소가 펼쳐진다. 아이는 제 할아버지를 옆에서 돌보아드리고 난 쭉 바닷가까지 난 바윗길을 걸어보았다. 내 평생 아버지, 아들 3대(三代)가 이곳을 다시 올 가능성은 거의 영(零)에 가까운 법. 그래서 어떤 여정이라도 여정은 늘 인생의 길처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서 애틋한 법이다. 오르내리는 길에는 이름 모를 아열대 식생이 이국적이고, 더구나 자부룩하게 길을 만들고 있는 순어리 대숲이 참 포근한 느낌이다. 나무 계단에 염소 똥 무더기가 보이더니 벼랑 끝에 방목인지 자생인지 염소 네 마리가 정답다. 우리 모두 한동안 염소 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후략) 2020.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