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아름다웠던 여행에 대한 추억만큼 값진 것이 있을까/한낮 남국(南國)의 적도에서 직사로 내리쬐는 양광(陽光)에 그지없이 새빨갛고 샛노래서 오히려 현란한 광휘(光輝)를 더욱 뽐내는 꽃과 잎..

청솔고개 2021. 1. 10. 01:05

아름다웠던 여행에 대한 추억만큼 값진 것이 있을까

                                                                                    청솔고개

   2001년 겨울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여행길이 생각난다.

   1999년도 여름, 행선지를 국내 어디라고 둘러대고 몰래 북경 여행하고 왔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치른 대가가 바로 우리들의 국외 가족 여행 1호, 태국 행이었고 제2호가 바로 이 세 나라 행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원성에 대한 입막음으로 시작했었고, 나중에는 이렇게 집을 온통 며칠 동안 비워버리고 솔가(率家)해서 떠나는 것도 얼마나 멋진 일이냐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반 강요하듯이 같이 떠나자고 했었다. 우리 집 새 식구인 복실이와 순돌이는 애견호텔에 위탁하였었는데 갔다 와서 보니 스트레스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미 동부-캐나다, 뉴질랜드-호주,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등 행선지만 들어도 가슴이 마구 뛰는 멋진 여정을 꿈꾸고 있다.

   인도네시아 바탐섬 호텔에서의 1박2일. 그 꿈같은 하룻밤을 떠올려 본다. 싱가포르도 좋았지만 바다 건너 이곳 바탐섬 휴양지는 내가 겪은 꿈의 여행지다.

   야자수 그늘이 더욱 짙어 ‘남남 남십자성(南十字星)’이라는 가사가 되뇌어지는 곳. 그 남십자성이 어디쯤인가. 여긴 남지나해(南支那海) 어느 해변, 정취 어린 그 순간들. 우리 가족 네 식구는 모두 아름답고 즐거움, 기대감에 넘치는 얼굴들이었지.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상기된 모두들, 한낮 남국(南國)의 적도에서 직사로 내리쬐는 양광(陽光)에 그지없이 새빨갛고 샛노래서 오히려 현란한 광휘(光輝)를 더욱 뽐내는 꽃과 잎들의 성찬(盛饌), 석양녘에는 더욱 신비롭고 황홀한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모하는 빛과 색의 잔치. 우리 부자는 풀장에 들어가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잘 차려 입은 아내와 나는 야자열매가 뒹구는 남지나해변(南支那海邊) 산책도 하였었다. 흑갈색의 방갈로는 마치 큰 삿갓을 엎어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남국의 정취를 뽐내고 있었지.

   이런 강렬한 광선에 노출되면 누구라고 다소간은 타히티의 고갱이나 고흐와 같은 광적인 상상력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는 강렬한 최면이고 한 낮의 대자연 사이키 조명이랄까?

   여행은 그 시작부터 알 수 없는 들뜸과 분리 불안을 동반한다. 그래서 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각종 불안 심리를 끌어낸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특히 조(躁)와 울(鬱)의 감정 기복(起伏)이 내겐 무척 심하다. 물론 그 당시는 괴롭고 힘 든다. 그러나 홈 타운에 도착한 후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그 당시의 이러한 불균형한 감정마저도 즐겨 추억한다. 여행은 그러니까 내 모든 것을 지극히 사랑하게 하는 힘을 준다. 내게 몰두하도록 한다. 나를 돌아보도록 한다.

   이러한 여행에 대한 독특한 나의 인식은 오래 전부터 내게 존재했었나 보다. 이제 돌이켜보니 더욱 그 감정의 실체를 분명히 알 수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가 살아오면서 내 유년의 절망과 혼돈과 불안을 그대로 껴안고 가는 나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그 푸르고 아름다운 원시경,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 유년의 평화경에 대한 갈망이 남다른가 보다. 나는 여행을 통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이런 갈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었다. 곧 나만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다. 평생을 두고 따라다녔던 그 불면과 절망의 나날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다시금 도지곤 한다. 이런 고통을 애써 외면하다가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어쩌다가 때로는 용케 이들을 비켜나가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다시 만난다. 그러니 이들을 미화하고 포장하고 때로는 도피하기도 하고 온몸을 감싸 안고 달아나 보기도 하지만 또다시 이러한 망념(妄念)에 사로잡힐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惡靈)’의 상태가 바로 이런 걸까? 신이 있다면, 불타(佛陀)가 존재한다면 내게 이런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젊은 날의 숱한 절망과 방황의 기록들, 솔직히 이제부터는 여기서 좀 벗어나고 싶기도 한데…….

   허나 이런 떠올리기가 지극히 싫은 감정은 여행 중에 더욱 심하게 앓는 열병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나는 그 열병을 더 깊이 사랑한다. 여행은 이렇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게 바로 여행의 매력이다.

   첫 국외 여행길 서울-샌프란시스코 기내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나오는 남녀주인공의 그 불안한 사랑의 심리 같은 것, 로마-소렌토 국도를 오가면서 나폴리 바닷가, 이름과 이미지에서 느낌직한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풍정으로 지핀 나의 아득한 원초적인 절망의 불꽃은 지중해의 노을로 진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기를 결심했었다. 아내와도 동행하기를 서로 언약했다.

   이렇게 달리면서, 또는 걸으면서, 아내와의 달리기 시작한지 오늘이 나는 22일째 아내는 25일째 이제 ‘나는 달린다’ 저자처럼 이제 달리는 순간순간의 명상(瞑想), 무아(無我)의 경지를 체득하고 있는 걸까?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볍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삶의 무게도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두 팔과 두 다리의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흔들림, 불쾌하고 거북하였던 허리주변의 새로운 상쾌함을 즐긴다.

   달리면서 혹은 걸으면서 휙휙 지나가는 눈 밖의 풍경은 이국의 가로(街路)를 달리면서 내다보이는 창밖의 풍광이다. 나는 처음 모하비-애리조나 사막 여행을 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그 달 표면 같은 풍경에 전율(戰慄)을 느끼었다. 밤새 카지노 코인 소리에 철렁거리던 가슴 쓸어안으면서, 충혈 된 눈을 비비면서 졸음을 참아가면서 이러한 이국풍취에 눈을 뗄 수 없었고 계속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기억이 새롭다.[2009년 겨울]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