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후쿠오카 홈스테이 교류 방문기, 제2신/ 페리호 객실은 천태만상의 인간군들의 모습이 삶의 한 축소판 같았소

청솔고개 2021. 1. 12. 03:17

후쿠오카 홈스테이 교류 방문기, 제2신

                                              청솔고개

   잠 들다가 객실이 너무 흔들리고 더워서 갑판위로 올라갔더니만 천기 분간할 수 없는 칠흑의 밤은 지나가고 새벽이 밝아 오고 있소. 한밤의 현해탄[玄海灘, 일본식 용어, 우리말은 대한해협(大韓海峽)이지만 나는 왠지 현해탄이 좋소)의 호호막막(浩浩漠漠)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래도 잠들지 않고 멀미하면 여행 전체의 일정에 무리가 있다 싶어서 아쉬움을 접어두고 잠들 수밖에 없었는데 간밤에 그 현해탄을 거침없이 넘어버렸다고 하니 그 칠흑의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내내 미련으로 남소. 정말 나는 이렇게 눈요기, 귀요기, 볼 것, 들을 것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인가 보오. 그래 언제 다시 내가 이 길을 오갈 것인가 하면 새로 보는 것. 그리고 이 시간에 이 일행들과 이 학생들과 보는 것은 마지막이려니 이게 바로 인생의 일회성(一回性)이 주는 비극이요 절망감이 아니겠소.

   현해탄! 그 비운의 현장이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그 위엄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검은 바다 위를 관부 연락선 한 대가 순항하고 있었소.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그 때까지의 정적을 일순간에 깨버리는 요란한 물살 가르는 소리가 있었으니, 젊은 남녀 한 쌍이 서로를 꼭 껴안은 채 그 물살 속으로 그대로 뛰어 들었던 것이오. 우리 시대 최초의 투신 정사(情死)였으며, 우리 시대 최고 지식인의 별이 둘이나 지는 순간이었소.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두 연인 윤심덕과 김우진은 그렇게 사라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소.

   숱한 문인, 예술인이 이 현해탄을 넘나들면서 한일 역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부대끼면서 느꼈을 그들의 고뇌와 열정을 생각해 보오. 현해탄. 그 검디검은 바다 여울이 바로 발밑에 깊이를 알 수 없이 흘러가오.

   밖에는 곧 새벽이오. 3등간이라지만 그래도 부관(釜關), 즉 부산과 하관(시모노세키) 페리호 객실은 천태만상의 인간군들의 모습이 삶의 한 축소판 같았소. 예전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관부연락선이라고 했소. 코를 골면서 세상모르게 잠에 떨어진 모습, 밤새 화투놀이로 낮밤이 구분 안 되는 인간군상, 그러나 부관 페리호는 그 옛날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거친 검은 여울을 헤집고 흘러가오. 이런 곳에서는 당신과의 동행에의 염원이 더욱 간절하오.

   새벽인데 대안에 불빛이 명멸하는 것을 보니 여기가 바로 도착지인 시모노세키인가 보오. 시모노세키는 일본 혼슈 최남단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큐슈와 연결하는 연륙교가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아 여기가 바로 일본이로구나, 섬나라 일본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소.

   항구에 도착하는데 예인선이 큰 역할을 하오. 도착일시 23:08:30경 출발해서 18시간 대 장정. 입국 수속을 마치니 10시 가까이 되었소. 그래도 새벽에 먹은 아침 밥 덕분에 허기는 면한 듯하오. 부두의 모습은 듣던 대로 청결과 질서.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선창가의 지저분함은 없소.

           [2002. 2. 23. 수.]                                                     2021.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