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나그네의 吉圓華를 향한 제3신, 후쿠오카 홈스테이 교류 방문기
청솔고개
나는 지금 “청솔고개, 나 드디어 일본열도에 상륙하다!” 고고(呱呱)의 성(聲)을 터뜨리고 있소.
입국 수속을 마치니 거의 10시가 되었소. 참으로 “여행은 인내를 연단(鍛鍊)한다.”는 말이 실감나오. 오이타껜 아마가세쵸 교육장 일행과 현지 여행사 가이드가 세 시간 전부터 우리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서 기다렸다는데 우선 그들의 철저함과 친절함에 혀가 내 둘릴 지경이오. 간단한 환영행사를 마치고 버스로 세계적인 온천지인 벳푸[別部]로 향했소. 나카츠, 우사시 등 이름도 생소한 마을을 지나 벳푸에 도착하니 낮 12시 30분. 도시 전체에 온천수가 솟아나와 허연 김이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곳이었소.
바닷가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안남미처럼 약가 꼬들꼬들한 밥에다가 싱거운 된장, 오뎅과 떡 같은 것을 넣은 일본 정식이라는 것을 먹어 보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먹어 볼 만하였소. 식사 후 원숭이 공원을 구경하였소. 수천마리 야생 원숭이들이 먼 산에서부터 고구마 급식 시간에 때맞추어 A, B, C 군(群)으로 나누어 내려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소. 그야말로 생존 경쟁 그 자체, 약하고 작은 원숭이들은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게 고작이었고 어쩌다가 굵은 고구마를 얻은 놈은 갖고 도망치기 바빴다오. 새끼원숭이를 안고 있는 어미가 서로 벌레를 잡아주면서 보살펴 주는 모습은 인간 가족이상의 정을 보여주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오.
이 온천 휴양도시의 인구는 고작 15만 명에 1년 연관광객이 1,400만명으로 서울시 인구를 능가한다니 그들의 관광사업의 부가가치를 짐작할 만하오. 이어서 9지옥 순례라는 노천온천 지역을 구경하였소. 지옥온천[地獄溫泉:지고꾸온센]이라하여 그냥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김이 솟구치는 온천지역을 군데군데 막아놓고 갖가지 이름을 붙여서 관광자원화 하는 그들의 관광경영 또한 감탄할 만하오.
방문단이 탄 버스는 곧장 삼나무 숲이 울창한 오이타껜[大分縣, 대분현] 아마가세쵸[天瀨町]로 향했소. 협곡 산길을 곡예하다시피 달려서 동계[東溪, 도까이]중학교, 오마[五馬]중학교로 나누어서 학생들은 민박(홈스테이)하도록 하고 인솔 교사와 학부모 팀들은 정청(町廳)에서 아마가세쵸[天瀨町] 정장(町長, 군수나 시장급)이 베푸는 저녁식사 겸 환영행사에 참석하였소. 이 자리에는 아마가세쵸[天瀨町]의 교육장, 정회 의장(町會議長) 등 원로 유지 20여분들이 점잔이들 자리하고 있어서 무척 근엄한 격식을 좋아한다는 일본인들의 습성을 알 수 있었소. 처음 보는 일본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어서 좀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말이 잘 안 통하니 먹는 방법도 무척 서툴렀소. 주류는 삿포르 맥주, 일본 정종, 일본 소주, 와인 등 골고루 준비되었는데 취향대로 마시라는 뜻 같았소. 순서대로 환영 의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고 술을 권커니 받거니 하면서 서투른 영어를 주워 삼키기도 하고 안 되면 한문으로 필담도 하여 한 두어 시간 대화를 하였었소. 전번에 이들이 방문하였을 때 지역의 문화회관에서 식사하면서 용기 내어 필담(筆談)으로 주고받았던 그 경험을 되살려 정말 저돌적(猪突的)이리 만큼 의사소통을 시도해 보았는데 그런대로 통하니 정말 신기할 뿐이었소.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23살의 총각으로 동계[東溪]중학교 영어교사인데 내가 몇 마디 영어를 하니까 영어교사인 줄 알고 무척 반색했었는데 전공이 한국어교사(a teacher of Korean)이며 전공이 한국어와 한국문학(Korean Language & literature)라고 하니 너무 뜻밖이었나 보오. 내가 한문을 써 대니까 그게 좀 이상한지 계속 질문을 해오길래,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어교사가 한문을 가르쳤다고 하니 좀 이해가 되는 듯 했소. 그래서 해외체험은 색다르다 하는가 보오. 일동 기념 촬영을 끝으로 일본에서 첫날 저녁 묵을 숙소로 향했소. 숙소는 정에 딸린 목조로 지은 연수원이었는데 일본 목조 가옥의 특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이 좋았소. 일본 삼나무[쓰기목]로 일본 분위기 물씬 풍기는 2층집이었소.
다시 주연이 베풀어져서 맥주에다가 소주 등을 섞어서 먹었더니만 온몸이 후끈거리며 달아오르는 것에 길 떠난 나그네의 여수(旅愁)를 잊기는커녕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이오. 그러나 이국에서는 떠오르는 온갖 세속적인 불안감이 많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소. 정신없이 다다미가 깔린 2층 침대로 가서 그냥 고꾸라지다시피 잠들어 버렸소. [2002. 1. 23. 아침] 2021.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