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홈스테이 교류 방문기, 제3일 전편, "알프스의 산록은 아니지만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방랑했던 또 하나의 골드문트가 되어보니 이렇게 이제 내 머리에도 저 산자락처럼 눈발이 희끗희끗 내려앉기 시작하오."
청솔고개
새벽 4시, 술이 깨이면서 잠도 깨이고 그래서 이렇게 당신 길원화로 향하는 장문의 기행 서한을 쓰게 되는가 보오. 모두들 잠든 바람에 옆의 화장실 불빛에 의지해서 일본 방문 첫날을 기록할 수 있었소. 7시까지 세수, 샤워를 하고 식사 후 동계중학교로 출발하였소. 그곳 학교장으로부터 간단한 학교 소개를 받은 후 복도를 지나면서 학교를 둘러보았소. 시설이 새롭다기보다는 무척 근검절약하고 실속 위주의 학교 운영을 엿볼 수 있었소. 11시에 학교에서 베푸는 환영 행사에 앞서 아마가세쵸의 풍광을 보기 위해서 산길을 달리기를 30여분, 첩첩산길을 지나 고원지대에 있는 장미농원을 방문하였소. 드넓은 고원에 도달하니 먼 산 가까운 산록에는 희끗희끗 눈발이 묻어 있소. 알프스의 산록은 아니지만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방랑했던 또 하나의 골드문트가 되어보니 이렇게 이제 내 머리에도 저 산자락처럼 눈발이 희끗희끗 내려앉기 시작하오. 스위스에서 알프스 준령을 넘어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길. 군데군데 농가와 목장이 있는 풍경과도 너무나 흡사한 삼나무 숲의 고장은 정말 나에게 색다른 상상력과 문학적 열정 같은 것을 되살려 주는 것 같소
귀로에 아마가세쵸 온천가를 둘러보았소. 즐비한 목조 온전장에는 허연 김이 거품처럼 연신 토해지고 있으며 온천수가 너무 많아서 3할 정도만 쓰고 7할은 그냥 버려진다나. 그래서 계곡의 물은 전부가 노천 온천이라는 안내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이 겨울에 어떤 남자가 계곡에서 발가벗고 노천욕을 즐기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소.
그러나 나에게는 일본의 겨울하면 雪國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1899-1972' 최초의 일본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가 떠오르오.(이하 “.....”엠파스에서 검색하여 전재함)
“‘도쿄에서 신간선을 타고 나카타현 남동부로 한 시간 삼십분 남짓을 달리다보면 길이 1만 미터의(약 이십오 리)의 아주긴 터널 속으로 기차가 잠긴다. 그리고 몇 분의 암흑이 지나고, 동굴이 끝나는 지점부터 전혀 낯설게 펼쳐지는 눈 덮인 마을. 드넓게 솟은 게 치코 산맥 밑에 작가가 설국이라 표현한 오지야 마을이 나온다. 도쿄에 살던 젊은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세 번에 걸쳐 이 곳 설국을 찾았고 그때의 경험이 설국을 탄생시켰다.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다다른 작가는 눈 덮인 마을 풍경에 취하여 에치코 유자와 역에 무작정 내린다. 그리고 그곳 시모슈큐 거리에 있는 다카한 여관에서 짐을 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여관 창문 밖에는 소설처럼 눈이 일련의 반을 내리고 있었고 눈 내리는 거리를 비치고 있는 거울 속엔 한 여자의 얼굴이 스쳤다. 사모슈큐 거리에서 야스나리는 소설 속 고마코를 닮은 실제 게이샤를 만났고 또한 삼나무 숲과 오지야마을과 눈 덮인 에치코 유자와산을 배경으로 한 편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눈이 내린 고장의 분위기는 작품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청순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서정에 바탕을 둔 거울 같은 서정의 세계가 서양의 드라마 형식에 부합되어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고정된 성격을 지니지 않고, 순간순간 움직이는 변화하는 감정과 생명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작품의 주제도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나는 여기서 가장 일본적인 것, 즉 전통적인 숙박시설로 일본식 정원이 딸린 료칸[旅館]. 온천, 게이샤[妓生], 스기 나무숲에 내리 덮인 눈 더미니 하는 것들이 풍겨 주는 분위기를 나타내었다고 하는 그 작가의 마음과 작품의 내면을 한 번 떠올려 보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잘 드러내면 국제사회에서도 우리의 문학이 더욱 인정을 받을까 하는 생각에 젖어 보았소. 나는 <雪國>의 니가타 현은 아니고 더구나 게이샤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지만 일본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가 바로 이 <雪國>의 서두, 창백한 표정의 주인공 시마무라(島村), 고마코(驅子), 요오코(葉子), 유키오(行男) 등의 희미한 옛 그림자 같은 모습이오. 오래 전 내가 갓 청년 시절에 아버지께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작가의 전집을 구입해서 집에 비치해 놓은 덕에 일찍이 가까이 할 수 있었소.
1968년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10여 년간 써온 중편소설인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었소. 주인공 시마무라는 마음속에 담고 있는 어린 게이샤인 고마코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니이가다현(新瀉縣)의 온천지대를 찾아오오. 이곳에 머물며 고마코의 순결함을 느끼게 되는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순정을 받게 되오. 고마코는 춤선생의 아들인 유키오와 약혼한 사이었는데 고마코의 부정과는 달리 병든 유키오는 고마코를 마음에 둔 채 숨을 거두게 되오. 1년이 지난 후 다시 니이가다현을 찾은 시마무라는 유키오의 무덤에서 요오코를 발견하고 강한 인상을 느끼게 되오. 등장인물들 간의 얽힌 감정들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인간의 슬픈 숙명과 잔잔하게 흐르며 때로는 파도치는 사랑을 작품 속에 투영시켜 거울처럼 자신을 들여다보게 됨으로써 이 작품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 근 30년 전에 읽은 작품의 강한 인상이 오늘 이 순간에야 다시 떠올려 지오. 게이샤 고마코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잔영 창백한 청년 시마무라의 얼굴에 겹쳐지는 그 인상 깊은 장면, 이 온천행 열차의 차창에 어리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오. [2002. 1. 24. 목] 202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