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을숙도에서/극락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처럼 황천은 흐르고 천년을 지킨 늙은 사공이 듣는 갈잎이 속살거리는 소리

청솔고개 2021. 2. 3. 23:32

을숙도에서

 

청솔고개

 

언제였던가 언제였던가

전설처럼 아득한 내 한 시절

황금 날개가 고독하게

퍼덕이는 내 유년기

딸기 농사 흉년이었던 그 해 유월

 

바람처럼 왔다가

티끌같이 흩어진

한 조각 기억에

세월로 흐르는

강물은 시방 이리도 하염없이

갈 길을 가야하고

 

나는 또다시 오를 수 없는 벼랑을 대하듯

이렇게 강변에 서야 했었다

갈바람 한아름 가슴에 안으며

속죄하는 심사로

조심스레 울음 울어

얼음보다 차운 눈물 비칠까 봐

 

꽁지 없는 잿빛 도요새는

황홀한 서녘으로

남국의 샛노란

유채꽃 벌판으로

또는 진홍의 동맥

그 붉은 정화(精火)로 피어나는 곳으로

가없이 날아가는데

 

어디에선가로부터

참담히 밀려난 외로운

사람들의 기인 행렬

한숨과 같은 안식과

덧없는 위안을 위해

그 강변은 예비 되었고

결코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낙동(洛東)의 끝

극락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처럼

황천은 흐르고

천년을 지킨 늙은 사공이 듣는

갈잎이 속살거리는 소리

 

어깨 함께하여

동행하는 자 없이

나는 바람처럼

언제나 홀로이러니

좋아라

[1981. 2. 3]

202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