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거 인생 1/ 달리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우울감도 자전거 바퀴의 부드러운 미끄러짐이 주는 쾌적함, 귓가를 가볍게 스치는 바람결에 묻히고 날아가 버린다
청솔고개2021. 3. 21. 01:20
나의 자전거 인생 1
청솔고개
내가 자전거 페달에 발바닥을 딛고 홀로타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만 59년이 된다. 나의 자전거는 나의 그림자, 나의 영혼, 나의 소중한 동반자다. 시내에서 나의 자전거 타기 원칙은 이렇다. 심한 비바람, 눈보라의 날씨가 아니면 자전거로 이동한다. 태워드려야 할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거나 실어야 할 무겁고 부피가 큰 짐이 없으면 자전거로 이동한다. 자전거 이동의 가장 큰 매력은 주차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맘때쯤 나는 자전거 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너무나 타고 싶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나는 다리가 짧아 아버지의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걸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 또래 아이들이 어른 자전거 타는 방식을 따라 나도 연습해 보았다. 안장에 엉덩이를 올리지 않고 자전거의 가로 프레임과 체인 사이로 발을 넣어 삐딱한 자세로 연습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또래들은 이런 방식을 '자전거 안가리 타기'라고 했다. 남이 보기에는 좀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그런 모습으로나마 주행할 때마다 바퀴가 굴러가면서 주는 속도감과 재미는 세상의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생애 처음 주행 성공한 순간, 이런 자세로 멋지게 미끄러지듯 타지던 그 순간의 짜릿한 성취감은 잊을 수가 없었다. 약간 높은 언덕길에서 아래로 페달에 발만 얹어서 중심을 잡고 있어도 기분 좋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쾌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주위의 친구들은 위험하니 타지 말라고 한다. 순발력이나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차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로 타는 것이 너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타지 않는 것이 좋겠다면서 간곡히 만류한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대체로 이렇다. “최근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배기가스 배출 덩어리인 자동차보다 무공해 자전거 타기가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자전거 도로도 많이 개설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운동효과가 뛰어나다. 실내 자전거 운동기구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 세기를 조절해가면서 밟는데 길에서는 약간의 경사만 있으면 저절로 하체를 비롯한 전신 운동이 된다. 특히 자전거 타기는 수영과 같은 원리로 체중이 실리지 않아서 무릎관절을 보전할 수 있으며 노경이 될수록 필요한 허벅지 근육 유지에도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나는 항상 조심한다. 타기 전에 블레이크나 핸들, 후크 등을 잘 점검, 정비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60년 가까이 자전거를 탔는데 다쳐서 병원 간 적 한 번 없었다.” 이렇게 조목조목 해명하면 상대방은 “그래도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하고 말끝을 흐린다.
자전거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몇 년 간 걸쳐서 돌아보았다니, 유라시아 몇 개국을 여행했다느니 하는 별난 여행 작가들의 여행기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이에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여기에는 여행에 대한 그들만의 철학과 고집이 보인다. 세상에서 진정한 여행은 가장 느리게 이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도 여행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방식대로라면 도보여행이 최고의 여행이고, 다음은 자전거, 배, 자동차, 기차, 비행기 여행의 순서다. 물론 여행의 상황과 목적에 따라 이런 순으로 획일적으로 못박을 수는 없지만 도보여행과 자전거 여행이 진정한 여행 정신, 여행 철학을 구현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금부터 십 수 년 전 현직에 있을 때 나는 매일 왕복 100킬로미터를 자동차로 통근한 적이 있었다. 정부의 5부제 자동차 운행 정책의 의해 일주일에 하루는 차를 운행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장거리 통근하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버스로, 기차로 갈아타고 출근해 보았는데 편도 40분 거리가 심지어 2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나는 궁여지책으로 차의 시트 두 열을 접어서 트렁크와 연결한 공간에 자전거를 싣고 근처 10여리 쯤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내려서 갈아타고 출근을 하곤 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사방이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멋진 곳이었는데, 매일 차로 바쁘게 지나칠 때는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 주변 환경의 매력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었다. 오로지 안전 운행, 출근 시간 엄수에만 몰두하게 돼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출근하게 되니 그날은 주변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들리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 길가 작은 꽃의 피고 짐, 물안개의 퍼짐과 새벽이슬 맺힘과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보이고 들렸다. 처음에는 너무나 불편했던 그런 방식의 출근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자전거 타고 출근 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달리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우울감도 자전거 바퀴의 부드러운 미끄러짐이 주는 쾌적함, 귓가를 가볍게 스치는 바람결에 묻히고 날아가 버린다. 2021.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