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거 인생 2/ 나와 평생 고락을 같이한 나의 자전거는 나의 애마(愛馬)임에 틀림이 없다
청솔고개2021. 3. 22. 23:37
나의 자전거 인생 2
청솔고개
평생 자전거 안장을 말안장처럼 여기면서 생활한 나로서는 자전거에 얽힌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다리가 좀 길어져서 내 자전거가 마련됐다. 나의 애마(愛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통해서 비로소 자유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매년 방학만 되면 아버지가 솔가해서 우리 식구는 모두 시내 셋방의 문을 잠가놓고 이 십리 남짓 떨어진 고향 큰집에 가야했다. 나를 비롯해서 학교 근무하시는 아버지도 방학이니, 당시로서는 부모님이 이 때라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자식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수업에는 빠질 수 없어서 보충수업이 있는 날은 매일 자전거로 왕복 60리 길을 달렸다. 신작로 국도라고는 하지만 길은 아직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자갈길 투성이다. 한참 그 길을 달리고 나면 엉덩이와 낭심 부분이 얼얼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 마을이 멀리 보인다. 강을 가로지는 징검다리에 자전거를 살짝 걸쳐서 건넨다. 여름방학이면 이어서 바로 강물에 풍덩 들어간다. 자길 길로 뒤집어쓴 땀과 먼지를 헹궈내고 나면 개운해지고 모든 피로가 다 가신다. 이후부터는 우마차 한 대 겨우 다닐만한 농로 해서 고향 큰집까지 달린다.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소를 몰고 동무들과 같이 소 먹이러 산으로 가곤 했었다.
자전거 뒤의 짐실이는 고향 큰집에서 쌀, 잡곡, 채소 등을 실어 나르는 유용한 도구였다. 중고등 시절 6년을 그렇게 자전거로 시내 셋방과 고향큰집을 오갔다. 때로는 저녁 늦게 숲이 짙은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 악동들에게 둘러싸여 돈푼이나 물품을 빼앗긴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이렇게 자전거로 험로를 오가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력이 나니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돈이나 물품을 강탈당한 것도 처음 한 두 번은 불안하고 억울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나에게 배짱과 담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용기, 담력, 끈기의 팔 할은 그 때 만들어진 것 같다. 몸과 마음의 회복탄력성도 그때 형성된 것 같다.
나는 자전거 타면서 세 번 정도 가벼운 사고를 겪었었다. 35년 전, 퇴근하면서 교문에서 도로로 나오는데 오른 편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에 받쳐서 길가 도랑에 처박혔다. 순간 정신이 아뜩해졌다. 다행인 것은 약간 파인 도랑에는 가을이라서 바람에 쓸려온 크고 작은 낙엽들이 제법 쌓여있어서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정신을 차려 일어나서 오토바이 운전자 항의를 하자,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나의 일방적인 과실이라고 몰아붙인다. 그 바람에 오토바이가 많이 파손됐다고 하며 나한테 오히려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러면서 바로 파출소에 가서 따져보면 오토바이 손상된 것을 다 물어야 할 텐데 어떡할 거냐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정신이 없었다. 일어나보니 걸어지고 크게 뼈나 인대를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바지가 다 터져버리고 다리가 좀 화끈거릴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기 전이라서, 이럴 경우 무조건 약자 보호라는 교통사고 처리 원칙을 나는 잘 몰랐었다. 한마디 보상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그 서슬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충돌로 다 휘어져 끌 수도 없는 자전거를 억지로 끌고 집에 왔다. 다음 날 왼쪽 다리 전체가 검붉게 멍이 들기 시작했다. 갈수록 더 멍이 커지더니 일주일쯤 지나니 겨우 삭아지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인 길가 도랑 바로 옆에는 사과밭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내 키 두 배나 되게 둘러져 있었는데 거기까지 튕겨나갔다면 내가 크게 다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교통사고가 나면 보험으로 처리한다기보다 내가 먼저 목에 핏대올려가면서 고함치고 삿대질하면서 기선을 제압해야 당하지 않는다는 해결방식이 판을 칠 때였다.
또 한 번은 30년 전 쯤 일이다. 늦가을 김장철이어서 시장 통 옆 인도에서 차도까지 배추, 무, 각종 양념류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곳곳이 서 있는 트럭에서 분주히 김장감을 내리고 있어서 차도 오른쪽으로 조심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앞의 트럭 왼쪽 문이 확 열려졌다. 순간 나는 브레이크를 꽉 잡았지만 결국 그 문에 부딪치고 말았다. 차 안의 운전자가 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 첫추위가 나서 두툼한 방한복을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크게 다칠 뻔했다. 머리를 부딪쳤지만 후드 때문에 큰 충격은 없이 그냥 곤두박질했다. 크게 놀랐다. 그런데 이번에도 길가에 쌓아놓은 배추, 무 더미에 나뒹구는 바람에 크게 다치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와 평생 고락을 같이한 나의 자전거는 나의 애마(愛馬)임에 틀림이 없다. 202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