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거 인생 4
청솔고개
내 자전거와 접촉한 운전자를 보내주고 바로 친구와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늘따라 봄볕이 참 좋아서 시내를 빠져나왔다. 근처 공원 산책하러 가는데 2,30미터를 걸으면 심하게 다리가 저려온다. 잘 걷지를 못하고 자전거를 잡고 잠시 서있거나 아니면 근처 벤치에 앉아 쉬었다. 보통 오후가 되면 오전에 몸이 충분히 예열되어서 다리 저림이 덜 한데 오늘은 유독 심하게 느껴졌다. 아까 사고 직후 바로 병원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쉽게 결정한 것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다. 30분 정도 걷는데 대 여섯 번은 쉬었다. 하는 수 없이 더 걷지 못하고 친구와 헤어져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내 마음은 사고의 충격이 제대로 온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저녁에 기분 전환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샤워도 하고 스트레칭도 해 봤지만 평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일단 오늘 밤 지나보기로 했다. 계속 그러면 운전자에게 연락하기로 하고 불안한 하룻밤을 넘겼다.
다음 날도 아침부터 스트레칭을 서두르면서 평소의 상태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좋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늘어지게 푹 쉬었다. 저녁에 아이에게 전화가 와서 내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접촉사고와 다리 저림이 인관관계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져보았다. 아이는 “확실한 통증이 나타나지 않으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사고로 생긴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하고 말해 주었다. “하루 더 천천히 충분히 스트레칭 하고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 한다. 나는 ‘결국 아이가 내가 그렇게 곤혹스럽게 생각하던 문제의 불확실성을 이렇게 끊어주는구나. 고맙게도. 혼자서 이 문제에 대처하려했다면 얼마나 찜찜했을까?’
다음 날 오전부터 나는 그 동안 해오던 대여섯 가지 스트레칭을 다시 반복했다. 주로 몸의 균형 회복과 척추기립근 강화를 위한 운동이었다. 아이 말대로 ‘천천히, 충분히, 정확히’ 해 보았다. 오후에는 내 몸의 상태를 시험하기 위해서 이런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산행 강행이란 무리수를 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에 이 코스를 답파(踏破)하려면 적어도 서너 번, 많게는 10번 정도 허리 젖힘 등 스트레칭을 달고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한 번의 스트레칭도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1시간 더 보탠 3시간 산행을 소화한 것이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아이 말대로 실시한, 오늘 오전의 ‘천천히, 충분히, 정확히, 제대로’ 스트레칭이 이런 효과를 가져 온다는 말인가. 내 관절이나 근육이 척추관을 지나가는 신경을 눌러 붙게 해서 생기는 증상인데, 비록 0.1밀리미터의 차이로도 증상의 발현이 있고 없음을 좌우한다고 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날도 푹 쉬고 난 뒤, 아이와 산행을 했을 때도 똑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내 몸의 변화를 아이한테 자랑삼아 이야기 했더니 아무리 그렇게 했더라도 전보다 30분이나 더 늘어난 산행 코스를 걸었는데 한 번도 허리 젖힘 같은 스트레칭 한 번 안하는 나를 보고 아이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평소 몸이 불편해서 거동까지 힘들어 했던 환자가 우연히 제법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고 방송에서 버젓이 자랑하는 걸 보았다. 그런데 이런 믿지 못할 상황에 대한 담당 의사의 평가는 “그 동안 꾸준히 치료를 한 결과가 우연하게 지금 나타났을 것일 수도 있고, 정말 환자가 믿는 바대로 사고의 충격이 절묘하게 불편한 부위를 건드려서 더 좋아졌다는, 선한 영향력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어느 쪽일까? 암만 생각해도 심한 다리 저림에 대비한 제대로의 스트레칭을 하루 세 번 반복한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 듯 엊그제 왕복 70분 정도 자전거 탄 게 이러한 작용을 가져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이상 걸리는 산행 들머리까지 자전거 타기로서 충분한 예열이 된 결과가 아닐까?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추억’에서 다음같이 말했다. “자전거는 우리를 삶의 길로, 그러니까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거기서 다시 성년기로 부드럽게 안내해 주었다.~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의 내부에는 경쾌한 다리의 놀림으로 표현되는 자유함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대로 이건 나의 자전거 인생으로 인한 보상 같기도 하다. 자전거 타기를 통해서 비록 자유의 확립이니 우울증 견뎌내기 등에서 보듯이 다분히 철학적 심리학적 적용 같기는 하지만.
며칠 전의 세 번째 자전거 사고는 정말 극적이어서 나의 자전거 인생에 어떤 영감을 주는 것 같다. 20년 전 둘째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통학한다고 아이에게 사주었던 이 자전거의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2대에 걸쳐 충성하는 애마(愛馬)라는 생각을 더욱 떨칠 수가 없다. 2021.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