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슬픈 미소'/ 아내는 활짝 웃는다, 외롭고도 슬프리만치 흐드러지게 피어나 어떤 사연 많은 혼령들로 여겨졌던, 하얀 이팝꽃너울처럼
청솔고개2021. 5. 25. 22:54
다시 '슬픈 미소'
청솔고개
오늘 아침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담장의 줄장미를 보니 불현듯 40년 전 5월의 봄이 생각난다. 새빨간 줄 장미 꽃 더미가 아침 햇살에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걸 보니, 다시 조용필님의 ‘슬픈 미소’가 떠오른다. “돌아서면 잊혀 질까 세월가면 잊을 수 있을까 슬픔은 흘러흘러 가슴을 적시네 장미꽃 피는 날엔 돌아오마던 당신…….”. 조용필님은 장미꽃 피는 날에 돌아오마 하고 했던 당신을 잊지 못해, 그 깊고도 서늘한 슬픈 미소를 떠올리면서 이 노래를 열창했겠지, 하면서 나는 속으로 되뇌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젊은 시절 한때, 내게 무슨 슬픔과 한이 그리 많았던가. 그 한과 슬픔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한 세대도 지난 지금 여전히 그러해서 내 가슴에는 진홍 장미꽃 색보다 더 진한 절망감 같은 것이 불쑥 불쑥 솟구친다. 이런 기분이 때로는 몇 날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뭐를 보아도, 뭐를 들어도 모두 절대절망 인식과 연관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른바 나의 내부에 그나마 조금씩 작동하던 기분 다스리기 장치가 아주 탈이 난 것 같다. 마음의 자정작용(自淨作用), 회복탄력성(回復彈力性)이 약해지는 것 같다. 이게 이른 바 마음의 늙음이라는 것인가. 다른 말로 ‘노인성 우울증’ 같은 것. 슬픈 일이다. 이래서 그런 장미꽃 같이 환한 미소가 그런 큰 슬픔을 머금고 있는가. 조용필님은 개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무슨 내면적인 비극이 있어서 또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그대 나의 사랑’에게 하소연하고 있는가. 궁금하다거나 신비하다기보다 그의 노래에 더욱 큰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나의 평생 화두. ‘나는 왜 슬픈 미소를 띠는가. 나는 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가. 나는 왜 겉으로는 가장 희극적인 사나이 코스프레 하면서 내면의 가장 비극적인 삶의 인식을 품고 있는가.’ 지금에야 생각하니 그 이유는 나라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겪게 되는 본질적인 고독 때문인 것 같다. 이건 그냥 가져가야 하고, 데려가야 하는 것이다. 마치 나의 그림자나, 나의 마음처럼.
때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지난 40년 간 아내의 그 참한 미소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아내의 그 미소를 배반하기 싫어서인가. 아내에게 내재된, 나와 같은 또 다른, 나도 모를 근원적인의 슬픔 때문인가. 현실적인 이유로 그 시절 4년이나 기다렸지만 우리의 2세 소식이 없어서 그랬던가. 혼인 후 당연히 있어야 할 귀여운 아가가 배태(胚胎)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삶의 본질이, 그 속성 자체가 비극적이라서 그런가. 그 실체를 너무나 일찍, 젊은 나이에 눈치채버려서 그런가. 누구나 아는 불편한 진실인 삶의 절대적, 절망, 넘어 설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본질적 고통이 비밀을 알아버리고 죽을 때까지 동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가.
나의 이러한 복잡한 속내와는 달리 아내는 연신 예순 후반에 얻은 이 일 자리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루하루 아내의 얼굴에는 방글방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일이 있다는 것, 잠 깨어나면 어디 일할 데를 갈 수 있다는 것에 그리 행복해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차례 변곡점을 그릴 만큼 복잡다단한 마음의 그래프의 실상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의 이 요양병원은 시내와 뚝 떨어진 산 밑에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카시아 꽃이 지천이었는데 계절은 벌써 철 이른 밤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는 낌새다. 그래서 아내는 이 곳 자연환경이 좋다고 만족해하는 말을 한다. 그때마다 나도 호응해주었다. 물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는 24시간 근무의 고단함은 익히 하는 그 말 속에 다 함축돼있음을 우리는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내는 또 이야기 한다. “엊저녁에도 ㅅ어르신 때문에 밤새 네 번이나 깼어요. 소변 쏟기도 하고, 쓰레기통에 누기도 해서 이걸 처리한다고요. 그래서 새벽 되면 내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지만 아침에 퇴근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마음 내서 봉지커피 한 잔이라도 타 드리면 ‘고맙습니다.’하고 노경의 주름진 얼굴에 천진한 미소라도 지어주시는 그 어르신을 마주하면 참 보람되다는 생각보다 내 속에서는 뭔가 뜨겁고 뭉클한 게 치밀어 오르게 되고 모든 짜증, 불편함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걸 어떡하지요?” 이러면서 아내는 활짝 웃는다. 마치 얼마 전 길가에 외롭고도 슬프리만치 흐드러지게 피어나 어떤 사연 많은 혼령들로 여겨졌던, 하얀 이팝꽃 너울처럼. 그러면서 아내도 내가 앞으로 이 어르신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걸 하루에도 수차례 떠올려본다고. 2021.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