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다시 혼자 걷다, 그 첫날 이야기/ 산행 들머리서부터 하초에 힘이 확 빠지는 느낌이 들고 고관절 근처는 불붙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청솔고개 2021. 6. 22. 14:21

다시 혼자 걷다, 그 첫날 이야기

 

                                                                                                    청솔고개

   고향 친구 하나와 점심 식사 후 찻집에서 쌓인 이야기 나누다가 허리 저림도 심해서 바로 집에 왔다. 순간순간 그냥 이렇게 보내는 게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늘 이런 나의 행동과 인식에 대해서 일이나 생각 중독(홀릭) 상태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래도 오늘은 정말 그동안 중단했던 산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한 심경에 놓인다. 집에 와서 무작정 자전거로 출발했다.

   그동안 백신 접종 때문에 열흘 남짓 산행을 쉬었는데 오늘은 큰 용기 내서 출발했다. 자꾸만 굳어질 것 같고 내려앉을 것 같기도 하고 신경이 압착돼 끊어질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 내 척추에 대한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여서일 것이다. 산행 들머리서부터 하초에 힘이 확 빠지는 느낌이 들고 고관절 근처는 불붙는 듯한 화끈거리는 느낌이 든다. 십여 미터씩 가다가 천천히 허리 젖힘을 반복했다. 온 몸이 땀범벅이 된다. 얼마 남지 않는 골짜기 물에 얼굴도 씻고 머리도 축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카락 물을 대강 훔치고 다시 물에 푹 적셔서 헹구고 난 뒤 짜서 목에 걸쳤다. 목덜미가 서늘한 게 땀내가 덜 풍기니 달려들던 산모기 기세도 약해진다. 그냥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서늘한 기운 때문인지 ‘앵’ 하면서 물러난다. 희한하다. 일단 기분이 좋다. 오늘 산행, 이전 같으면 30분이면 오를 낙우송 숲에 대여섯 번 쉼과 열두 번 가까이 허리 젖힘 끝에 도달했다. 그래도 걸을 수 있는 게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몇 달 전 억지로 걷다가 다리와 허리가 모두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이 길을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망연해 했던 게 생각난다. 그 때 내려오던 이 다정한 오솔 길이 자꾸 뒤돌아보아진다는 내 고통의 고백이 새삼 떠오른다. 그러고도 봄 지나고 이제 한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때까지 자주 이렇게 걷을 수 있는 즐거움이 이어진 데 대해 감사하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조금이라도 걷는 게 혈당조절에 좋다고 생각에서 이렇게 혼자 산행할 때가 자유로우니 맘껏 이행해 보기로 했는데 오늘 드디어 해냈다. 그 느낌은 예상보다 더 좋다. 집에서 준비해온 저녁 도시락으로 빵과 두유를 꺼내서 어둑어둑한 숲 속에서 혼자 먹는 기분은 야릇했다. 나만의 어떤 비밀의 시간과 공간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 산길은 혼자 호젓이 가니, 마치 대궐을 통째로 전세라도 낸 듯, 마음 놓고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온 숲은 습기로 가득 차 있다. 몸과 마음에 좋은 기운은 이럴 때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스트레칭도 차분히 하고 마지막으로 백팔을 셌다. 오늘은 아무래도 날씨나 시간을 봐서 바위 위에 올라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 구경하는 것은 포기했다. 들에 모가 많이 자라서 그 색깔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욕심을 줄였다. 산비탈 길이 살짝 더 오르막이라도 이제는 잘 걸을 수 있다. 산등성 길을 해 가볍게 걸었다. 이 순간이 나의 최고의 기분 상태다. 얼굴과 옷은 땀과 계곡 물에 머리 감고 닦지 못한 물기로 범벅이 됐다. 나의 생존은 오로지 산행, 걷기라는 결론을 재확인했다. 거기에 내 노경 인생의 해답이 있다. 이제 출발 때보다 비가 제법 많이 흩뿌린다. 약간 차가운 느낌도 든다. 그래도 좋은 기온과 행보하는 내 몸의 열기로 그 모든 것을 덥힐 수 있어서 좋다. 아래로 다 내려오니 날이 어둑어둑하다. 온몸이 땀에 절였다. 온 몸에서 땀내와 소금 내가 난다. 또 산 모기들이 앵앵 거린다. 그래도 오늘의 이 시도는 성공적이다. 아래는 7시가 지났지만 훤하다. 비안개의 필터로 이곳은 오래된 수묵화의 선경이 된다. 그 그림에서 서녘하늘은 더욱 신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풍광을 몇 장을 담아 놓았다. 저녁 식사도 일찍 해결했으니 느긋하게 자전거로 집에 도착했다. 뭔가 뿌듯함이 밀려온다. 왠지 오늘 저녁은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2021년 초여름 어느 날]    2021.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