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하루하루 겨울이 깊어간다

청솔고개 2022. 1. 1. 23:30

                                                                                                                    청솔고개

  북창으로 내다보니 소금강산 솔숲이 자부룩한 산머리에도 겨울이 내린다. 하늘의 햇살 가운데 분명히 보이는 겨울의 기운이 있다. 산속의 겨울 솔숲을 보면 내 중2 겨울방학, 엄혹했던 시절이 회상된다. 긴긴 겨울 방학 나날이 내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망상과 악몽 때문에 잠 한숨 제대로 이루지 못해 밤새 흥건히 땀 흘리다가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자면 많이 자는 것이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소죽 쑤러 나가시면 나도 깨야 하는 것이었다. 한 순간 순간 죽을 맛이었다. 금방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그런 기분에서는 정말 헤어나고 싶었다. 생존이 달린 일이었다.

  견디다 못해 이런 기분을 얼핏 어른들한테 말했더니 “니가 집에서 그냥 빈둥빈둥 노니 너무 편해서 그런 갑다. 무슨 일이나 해 보든지, 산에 가서 깔비나 좀 끌든지 나무도 하고…….” 하고 내뱉으신다. 그래서 난생처음 갈비 끌러 지게다리가 질질 끌리는 몸에 맞지 않은 머슴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털레털레 가보았던 기억이 있다. 까꾸리도 물론 챙겨서 지게에 얹었다. 산기슭에 이르자 힘들어서 그냥 지게에 등을 대고 누워보았다. 솔숲 사이로 겨울 특유의 파아란 하늘이 날카로운 새금파리처럼 내비친다. 하늘은 이렇게 수정처럼 파랗게 흐르고 있고 솔잎은 생명력 넘치게 살아서 내 코로 솔 향을 풍긴다. 언뜻 생각하니 50년이든 60년이든 내게 남은 내 생애가 너무 길어보였다. “어떻게 내 앞으로 남은 세월을 감당하지?” 하는 생각만하면 그냥 아득한 절망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나무를 시작해 본다. 몇 발짝 안가서 발로 뭔가를 툭툭 차니 무슨 뼉다귀 같은 게 속이 다 썩어 톱밥처럼 흘러내린다. 그 속은 다 삭아서 흙인지 재인지 모를 지경이다. 속이 얽어진다. 흘러내린다. 사람이 죽어서 흙에 묻히면 꼭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무스름한 까디가 널브러진다. 주어 담는다.

  솔잎 사이로 겨울 멧새가 푸드득 하고 날아오른다. 까꾸리로 끌어 담은 깔비를 바소구리에 차곡차곡 쌓는 일은 숙달된 기술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쌓은 것과는 달리 나는 그냥 풀어져 흐트러진 모습이다. 어느덧 바소구리가 반쯤 찼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깔비가 따스한 햇살에 반짝인다. 솔잎 새로 쓰며드는 겨울 햇살로 부드러운 연두색으로 엷어진 솔잎 색깔과 깔비 사이로 파고드는 겨울 햇볕의 그 다스함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지게 바에 좁은 어깨를 끼워서 일어나 본다. 지게 작대기를 짚어본다. 중심이 안 잡히고 뒤뚱뒤뚱하다가 겨우 일어선다. 비틀비틀한다. 어떤 때는 그냥 뒤로 자빠져서 깔비를 새로 담을 때도 있었다.

  그 겨울 초입이다. 매년 겨울만 되면 내 소년 초입에 있었던 그 일들이 회상이 된다. 내 평생 앓아오던 마음의 병이다. 그러면서 마음의 병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제 55년이 지났다. 그 때 생긴 내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나는 6년 전 다시 나섰다. 만약 그 때 나의 마음을 위무해주고 잡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어 한 마디 따스하고 힘이되는 말이라도 전해주었더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본다. "네 탓이 아니다."라고.

  보통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이 내 마음 안에 있지만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괴로워한다. 평생 마음 아파서 마음공부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맸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평생 마음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만나면 내 마음 아픈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이게 바로 내가 6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위기 직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도와주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마음의 평화(平和), 평정(平靜)이 행복이다."  "몰입이 행복이다."  202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