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대여섯 달 전부터 오른쪽 무릎이 갑자기 아팠다. 그때 죽마고우 고향 친구 셋과 같이한 산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따라 붙인 후유증 같기도 하다. 그 한 달 전에는 어깨의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8년 전 찍은 MRI 사진 기록과 어깨와 목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척추관협착증과 연계된 경추의 노화와 이상에 의한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일단 약을 먹어보라고 한다. 이 또한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예상 그대로였다. ‘노화(老化)’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과정이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견지하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다.
그 후 나는 산행이 아닌 일상에서 등산용 지팡이를 짚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면서 불과 4,5년 전 아버지께서 뒤뚱거리고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걸음걸이를 하시면서도 끝까지 지팡이를 거부하시던 모습이 내게 겹쳐진다. 그 후 아버지도 현실을 받아들이시고 결국 지팡이를 짚으셨다. 당신도 이제는 중환자실, 일인 실, 요양병원을 번갈아 가면서 병상을 차지하고 있으시는 생존의 막바지 단계까지 이르신 것이다. 어쩔 것인가. 이러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자연의 이법(理法)’을 누구나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법이라고 하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다룬 교재로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의 '명상록'에서의 한 낱말이 생각난다. 거기서 깊은 삶의 고뇌와 냉철한 지성을 겸비한 최고 권력자이자 철학자인 그가 삶의 한 현상을 이법이란 용어로 풀어나간 것을 보고 내가 아주 경도되면서 인상 깊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나의 척추관협작증 증세가 최악의 상태로 진행된 것 같다. 단 10미터를 편안한 걸음으로 걸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최악이다. 내 몸의 상태가 꼭 6,7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아니 그때보다 더 못한 것 같다. 나는 그래도 그 마음만은 아직 남아서 수백 번도 더 걸었을 정들이고 익숙해진 산행 코스를 평소 같으면 30분 거리를 무려 한 시간 넘도록 꾸역꾸역 걸어도 보았다. 도중에 열 번도 더 허리 고쳐가면서 쉬어가면서 용을 심하게 쓰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목욕을 한 듯하고 그러한 땀 냄새를 맡고 산 모기들의 기승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불편한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천천히 갈 뿐이다”라고 하는 어떤 장애자의 외침을 내 마음속에 새기곤 해본다. 이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어떤 호소이자 강변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 이 카피라이터 같은 문구를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크게 위로로 삼는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천천히 가면 30분에는 어쨌든 도달할 수는 있는 것이다. 요즘 아파트 구내에서 외출한다고 이동할 때나 친한 친구, 이런 저런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내 배낭에는 항상 등산용 스틱이 꽂혀져 있다. 갑자기 발작적으로 하초에 감각이 무디어지고 몸의 중심이 흔들리게 되면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아버지처럼 그냥 히빌레히빌레 뒤뚱뒤뚱하면서도 강행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져 머리라도 부딪치거나 팔을 잘 못 짚어 깨어지거나 부러지면 그 땐 일상에서 더 이상의 대책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나 주변의 선배, 어르신들과의 만남에서도 내가 십년 전부터 안 좋던 허리가 더욱 악화돼서 지금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주변의 체험담 하나씩을 꺼내면서 내게 전폭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병은 자랑하라고 했던가.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내 필생의 업이었던 남미자유여행 이행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기우는 것 같아서 의기소침해 진다. 퇴직 직후 단행했어야 한다는 회한이 더욱 깊어진다. 그해 여름 끝자락에 퇴직하고 난 뒤 어머니의 위독한 용태와 돌아가심, 이후 아버지의 입퇴원 반복에서 이제 요양병원, 종합병원을 일 년 두 세 차례 왕복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까지 겹쳤으니 더욱 멀어진 느낌이 든다.
남미자유여행은 내 생의 존재의 이유였다. 나의 최고 신념 같은 것이었다. 내 정신의 초 절망을 초월할 수 있는 마지막 치유의 길이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부여해서 남미자유여행의 자료를 습득하고 방송에 몰입해왔던가. 나는 속으로 내가 안데스 산록에서나 파타고니아 황원에서 홀로 걸어가다가 길에서 생을 마감하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주변에서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남미여행 타령하느냐 하면서 타박을 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예로부터 명장은 전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걸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고, 마라톤의 런너스 하이에 빠진 마라토너들은 울트라 코스를 밤새 달리다가 그냥 길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하는 걸 소원하는 사람도 주변에 보았다.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은 일찍이 자신이 그렇게 죽으면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노라는 약속을 벌써 60대부터 했다고 세상을 향해 자랑스럽게 말한다.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목숨 걸고 도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벌써 우리나라 알피니스트 여러 명이 도전 중 사고를 당하여 불귀의 객이 된 사례도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 사실을 사고(事故)로 통칭하지만 가신 분들은 가시는 그 순간에는 어쩌면 속으로 스스로를 거룩한 대지와 자연의 성전에 바쳐진 존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우리들이 그렇게 죽어간 그들을 어떻게 그리 쉽게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과연 바보라서 그랬던가. 아직 시신을 찾아오지 못한 경우도 몇이나 있지 않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는 헌법의 행복 추구권과 상통한다. 물론 그 신념이 지나치게 편향되어서 공공의 이익에 반하면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신념대로 추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스스로의 신념에 충실한 것이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또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되물어본다.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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