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동해남부선 종점에 있는 부산 부전 시장의 꼼장어구이 먹으러 가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가 반색을 한다. 이번 탑승이 그 노선의 마지막 승차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아내가 황급히 모처럼 나들이를 위한 단장을 한다. 그런 아내를 살짝 폰에 담아본다. 몸단장하는 아내의 옆모습이 오늘따라 앳돼 보인다. 폰에 담긴 아내의 모습을 확대해 보니 세월이 묻어나 있고 정수리의 가운데는 응달 잔설이 아직 안 녹은 듯하다. 그렇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에는 참 드러내 보이기 싫어하는 아내의 소녀시절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
몇 해 전부터 동해남부선이 걷힌다면서 새로 나는 우회 철길 공사 하는 걸 지켜보았었다. 2022년 새해가 바뀌기 직전인 12.28.부터 새 노선으로 운행한다고 당국에서 대대적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새 노선은 고향 마을로 지나간다. 3년 째 이어지고 있는 전 지구촌의 감염병 사태와 더불어 이것 또한 천지가 개벽하고 상전이 벽해가 되는 일이다. 경천동지할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로 봐서는.
어린 시절 흐리거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20여리나 떨어진 성내에서 길게 여운을 남기면서 들려오던 기적소리에 어린 내 마음이 설레었었다. 때로는 무연히 슬픔에 잠기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내가 뭘 알고 느낀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길게 끄는 듯한 그 소리는 너무나 심묘했다. 때로는 마을에서 자주 보고 듣던 상여행렬의 소리처럼 처연했다. 그 소리는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에 올라 어디 멀리 떠나가려는 여행자의 꿈을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자라면서 문학 시간에 그런 정서나 감성을 이른바 이국정취, 낭만감성, 보헤미안이란 말로 다시 정의하는 걸 알았다.
나는 60년 전에 그 고향마을은 떠나왔다.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도 농지가 남아 있고 마을회관 터로 바뀐 옛 집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곳을 자주 지나친다. 그곳은 내 유소년 시절의 추억의 장이었다. 고조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들의 묘소가 있어서 묘제나 기제사 때에는 찾아뵙는다.
새 철길이 그러한 우리 고향 마을로 지나간다니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고향 마을에 역이 생기지 않는 사실을 알고는 좀 아쉬웠다. 코스모스 흩날리는 나의 고향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나가는 노래 가사와 같은 일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초등 4년 때 철길이 있는 마을로 전학 갔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차의 운행 시간에 맞추어서 들녘에서 일하다가 참을 먹기도 하고 저녁보리쌀을 씻으러 우물가로 모여 들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기차 소리는 주민들의 시계 알람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기찻길은 나에게 끝없이 이어짐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영원의 시간 같았다.
나는 거기서 친구들이 공사장이나 운동장에서 주운 못, 철사 같은 걸 모아서 레일 위에 얹어 놓고 기차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놀이를 배웠다. 우리는 철길에 귀를 대고 는 어디쯤 기차가 오고 있는지 감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드디어 기차가 지나간다. 순식간에 굉음과 진동이 천지를 흔들고 나면 그 쇠붙이들은 아주 납작하게 늘여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변신되는지 늘 궁금했었다. 급해서 그걸 바로 만지면 뜨거울 정도였다. 그것으로 어디에다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쇠붙이들의 그러한 변신은 그 자체로 즐거운 놀잇감이었고 실험이었고 기대였다. 허연 김을 숨 가쁘게 내뿜으면서 거침없이 내달리는 증기기관차의 맨 앞 칸 이마마다 차종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우리는 그 차 이름 소리쳐서 외쳐보았다. “미카**”라는 이름은 아직도 기억난다. 아주 가끔은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너가는 위험천만한 놀이를 즐겼다. 그 때의 놀이들이 참 단순해서 금방 시들해질 때가 많았다. 긴긴 봄날 한나절 보내는 것도 너무 심심해서 몸살 날 것만 같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철교를 건너보는 것이다. 다 건널 때까지는 생존 게임처럼 짜릿한 즐거움이 있다. 사내다움을 과시하는 담력 내기였다.
아내는 오늘 동행에 들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몸단장하다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내가 아내 자전거 점검을 했더니 뒤 타이어가 펑크 난 것처럼 바람이 하나도 없다. 자전거로 역까지 가는 것은 바로 포기했다. 호출한 택시가 바로 온다. 참 다행이다. 역전 입구에 내리니 10분 정도 남았다. 나는 뒤뚱뒤뚱 하면서 빨리 걸으려고 애썼다. 2번 홈 입구에 도착하니 5분 남았다. 위에서부터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든다. 잠시 계단 밑에서 바람을 피했다. 벌써 많은 탑승객들이 바람을 맞으면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길 건너 역사의 동쪽 부분이 새파란 겨울 하늘 아래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역사의 나이 만큼이나 오래된 향나무가 겨울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철로 옆에 선 아내의 모습도 담고 우리 둘의 모습도 담아 두었다.
그 때 동대구에서 출발하여 부전역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그 기차의 앞부분을 담아 두었다. 기차 운행에 필요한 공구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55년 전부터 이 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 모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있다. 떠나가는 것에 대한 허망함이 있다. 55년 동안의 이 동해남부선 기차에 얽힌 기억이 픽픽, 혹은 느릿느릿, 기차 속도로 떠오른다.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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