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이제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이런 회상의 매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잠기게 된다. 호계역까지의 구간은 운행이 폐쇄된다고 벌써 공지됐다. 이 사실을 알고 너무나 아쉬워 며칠 전 아내한테 이 구간의 마지막 승차를 제안했었고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차에 오르자 말자 내 폰에다 사라지는 풍광과 그 느낌을 잡아보려고 무던히 애써보았다.
나의 청소년 시절과는 또 다르게 이 철길에 대한 절실한 기억이 있다. 41년 전 아내와 혼인하고 1박2일 신혼여행을 부산 해운대 갔다가 돌아왔던 코스가 바로 여기다. 꿈결 같은 하룻밤 신혼여행을 마치고 먼저 처가에 가게 돼 있었다. 그 당시는 처가 사람들은 새신랑이 처가에 오면 장난친다고 묶는다든지 신랑의 발바닥을 친다든지 하는 신랑다루기 풍습이 남아 있었다. 나는 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꾀를 낸 것이다. 혹 성질 급해 욱하기 잘하는 내가 그 다룸을 유들유들하게 넘기지 못하고 발끈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기도 했다. 일부러 완행 타고 늦게 도착하자는 나의 제안을 아내가 들어주었다. 참 고마웠다. 그때는 해운대역에서 중앙선 종착역까지 세 시간 족히 걸렸다.
우리는 혼인 첫날의 소중함을 지키고자 당시로는 고급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난 다음, 해운대 백사장에 나와서 좀 거닐다가 기념 촬영도 좀 하고난 뒤 횟집에 가서 식사하면서 소주도 한 잔씩 했다. 나는 낮부터 긴장해서 많이 피곤했었는데 몇 잔 안 마신 술을 못 이겨서 잠이 막 쏟아지는 걸 억지로 참았었다. 그때 곤혹스런 표정을 아내는 두고두고 놀려댔던 게 생각난다. 우리는 그 다음날 용두산 공원, 동백섬을 둘러보고 느긋이 저녁까지 먹고 지금 지나고 있는 신해운대 역에서 출발하였다. 그 때 해운대역은 바다에서 역사가 바로 훤히 보이는 아주 멋진 자그마한 역이었는데 지금은 거대한 건축구조물로 가려져 백사장이 어딘지 바다가 어딘지 역에서는 전혀 가늠이 안 된다. 그날 처가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지났다. 예상대로 그 늦은 시간에 누가 우리를 다룬다고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작전이 성공했다고 쾌재를 불렀지만 그래도 평생 한 번밖에 없을 통과의례 같은 새신랑 다룸을 당해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살짝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장난은 새 식구에 대한 친밀감 형성을 위한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부전역 종점에 도착했다. 포항역에서 부전역까지 동해남부선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런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번에 부전역에서 영덕 역까지를 동해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미리 발표된 공사예정 지도 표지에서 확인했다. 앞으로 이 동해선이 강릉인가까지 모두 연결되면 정말 멋진 환상의 코스가 탄생할 것이다. 이어서 속초, 고성, 북한의 원산 이북까지 연결돼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그러면 중앙선 종착역에서 모스크바까지라도 내쳐 갈 수 있을 수 있을 텐데, 과연 내 생전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 기대는 해본다.
나는 긴 시간 앉아 있어서 뻣뻣해진 하초를 뒤뚱거리며 단골 꼼장어구이집에 들어갔다.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다. 종착역에서만 추운 게 아니라 따스한 남녘에도 동짓달 설한풍은 어김이 없었다. 그동안 척추수술을 앞두고 아내와 약속한 게 있어서 철저한 금주를 실천했는데 오늘은 아내의 암묵적 동의하에 그 꼭지를 살짝 열어보았다. 그래도 둘이서 한 병 다 마시지 못하고 두어 잔 정도는 남겨 두었다. 연탄불에 초벌구이한 꼼장어구이의 맛은 이 도시와 거리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맛이라고 늘 생각했다.
부전시장에 들어갔다. 엄청난 인파다. 나는 벌써 다리 저림의 극한신호가 감지된다. 아내한테 억지로 딸려가듯 걷다가 그냥 주저앉을 데만 찾았다. 마침 너덧 개 통나무 의자로 된 쉼터가 보인다. 정말 반갑다. 나는 만사 휴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술 한기에 겹쳐서 추위가 몰려온다. 나처럼 걷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몇몇 또래가 옆에 앉았다가는 또 일어서 가기를 반복한다. 나는 내 앞으로 오가는 곶감 파는 수레에서 곶감 한 봉지를 샀다.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어머니 묘소에 올릴 제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아내가 왔다. 플랫폼으로 향했다. 북행 출발 시간이 1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입구의 찻집에 들어서 나의 얼고 굳어진 관절과 척추를 푹 녹였다. 이제 살만하다. 나는 아내에게 한 시간 넘도록 이 철길에 얽힌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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