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유 3/아버지의 사범학교 졸업장, 육군대장 백선엽(白善燁) 명의의 육군하사명예 제대증서, 문교부장관 명의 교원자격증, ‘八○○환을 給함’으로 기록된 최초 임지를 지정한 교원..
청솔고개2021. 3. 19. 07:11
진정한 소유 3
청솔고개
또 큰방에 들러서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자료 중 이 생애 기록장만큼은 매우 소중하니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아버지도 틀림없이 이와 같은 생각이실 것이다. 제일 두꺼운 대학노트, 기업에서 업무용 수첩에 기록돼 있는 기록의 한쪽을 살짝 들춰보았다. 종서로 써 내려간 필체가 아주 정갈하고 반듯하다. 이것에 아버지의 평소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 당신의 삶을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나 하는 것을 체감한다. 그래서 보관 상태를 확인도 할 겸 한 번씩 들춰본다. 그 때마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다른 것들은 또 어쩌랴 하는 생각이 들면 아득해진다.
서쪽 방에는 또 소중한 자료가 있다. 아버지의 사범학교 졸업장, 육군대장 백선엽(白善燁) 명의의 육군하사명예 제대증서, 문교부장관 명의 교원자격증, ‘八○○환을 給함’으로 기록된 최초 임지를 지정한 교원발령장 등은 모두 ‘檀紀 四二八四 年’식으로 단군기원 연호로 표기돼 있었다. 그밖에 아버지전 생애의 정체성을 입증할 수 있는 누렇게 찌든 용지로 보존된 여러 가지 자격증, 신분증, 증명서 등도 보인다. 모두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잉크의 색깔이 다 바래져서 잘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희미하다. ‘전공사상(戰功死傷) 당시 소속, 5사 35연. 전공사상(戰功死傷) 연월일, 1951. 2. 8. 사상(死傷) 장소, 횡성. 전공사상(戰功死傷) 원인 및 원상 병명, 좌상지총상후유증’ 등으로 기록돼 있는 아버지의 전공사상확인증이 새로 눈에 띤다. 국가보훈처 등 관계 기관에서 그동안 아버지께 보내온 ‘국가 유공자의 집’, ‘6.25 70주년 감사 메달’, ‘내 가슴 속에 빛나는 불멸의 영웅(1950~2020)’ 등도 모아져 있다. 다른 기록도 차곡차곡 보관돼 있다.
다시 서쪽 아버지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옮겨본다. 매년 현충일 추념식 초정 때 입고 오라고 당국에서 지급한 짙은 감색 조끼가 벽에 걸려 있다. 황금색 실로 ‘6.25국가유공자’와 별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함께 쓸 모자도 걸려 있다. 아버지가 언젠가 나 보고 이 복식으로 차려입으시면서 사진을 한 장 잘 찍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참전과 전상으로 인한 명예제대의 영예를 기념으로 남기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몇 장을 폰으로 찍어드렸는데 만족할 만한 작품이 안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사진관에 가서 제대로 된 아버지의 6.25국가유공자 조끼와 모자를 착용한 인물 사진을 찍어 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께서 이 사진으로 언젠가는 필요할 당신의 영정사진으로 삼으시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6.25한국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참전과 싸우다가 전상으로 명예제대하신 것을 해가 지날수록 국가에서 선양(宣揚) 고무(鼓舞)하는 분위기와 관련해서 그 소감을 여쭈어 보면 이렇게 단호한 평가를 하시곤 한다. “6.25동란(動亂)은 같은 형제간에,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돼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었는데... 그런 싸움에 내가 참가한 건데 그게 뭐 큰 자랑거리는 아니지. 하늘 밑에 그런 참극(慘劇)이 또 어디 있겠나?”고 하신다. 내가 예상한 답변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버지의 답변은 의당(宜當) 사선을 넘나들면서 용감한 진격, 처참한 후퇴, 혁혁한 전공 등 실전 참가에 대한 다소 비장한 무용담(武勇談)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그거 아니었다. 당신의 깊은 자긍심과 영예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전쟁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다 동족 상잔이란 극단적인 비극성만 강조하셨다. 참 뜻밖이었다. 2021.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