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유 2/ 손에 잡히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소유라는 생각이 든다
청솔고개2021. 3. 14. 16:38
진정한 소유 2
청솔고개
옥상이자 급조된 이층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으로는 아내가 처녀 시절에 한 땀 한 땀 공들어 새긴 자수 작품 액자가 새까만 때가 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의 혼인 이후부터 처소에 늘 함께했던 소중한 기념물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퇴출된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산속 눈밭에 사슴 가족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대형 자수다. 아주 눈에 익은 그림이다. 그 옆에는 더 작은 자수 액자가 또 하나 놓여 있다. 큰 차양의 모자를 쓰고 있어서 엄마인지 누나인지 얼굴은 안 보이는 한 여자가 어린 소년과 다정스레 나란히 풀밭에 걸터앉아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다. 언덕 왼쪽에는 빨간 지붕을 한 집 한 채가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다. 바다에는 돛단배 한 척이 떠가고 있는 그림이다. 이 자수는 아주 말끔히 보관돼 있다.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꿈꾸게 했던 소중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가족 중 누구의 작품일 텐데 잘 모르겠다. 액자 밑에는 손잡이가 부러진 캐리어가 보인다. 뭔가 수납하기 위해서 옮겨 놓은 것이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옆에는 첫째의 대학 시절 사진동아리에서 촬영한 것을 전시했던 것이라고 알고 있는 흑백 사진 액자가 보인다. 어느 오일장 시장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 작품도 액자에 담겨진 채로 눈에 띤다. 아이가 언젠가 내게 그 작품성에 대해서 물어왔던 것이 기억된다.
동쪽 벽면에는 유치원복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찍은 여자 아이 사진액자가 놓여 있다. 처음에는 이 아이가 누구인지, 이 사진이 왜 여기 있는지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의 20년도 더 전에 이집 방 두 칸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불화로 모든 살림은 셋집에 내팽개쳐버리고 그냥 몸만 빠져나가 버리고 남은 것들이다. 아버지가 재작년 여름에 이곳을 정리하다가 반듯한 액자가 눈에 띄니 차마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전시하듯 해 놓은 듯하다. 그 여자아이의 유치원 졸업 앨범, 아이 부모의 학창시절 졸업앨범, 결혼 및 신혼여행 인듯한 사진 앨범, 과학, 위인전 아동도서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 젊은 부부가 오죽했으면 야반도주하듯이 떠나고 아이의 어린 시절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것을 다 버리고 헤어졌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버지는 그 집의 어린 딸이 자라서 나중에라도 혹 자신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생각나서 찾으러 오면 돌려줄 심산으로 보관하신 것 같다. 남의 인생이 담긴 사진 하나도 내다버리거나 허투루 할 수 없다는 게 아버지 세대의 통념인 것 같다.
이 집은 조만간 전반적인 수리에 들어야 할 것 같다. 그 기간 동안에는 다시 추려서 버릴 것은 버리고 소중한 자료들은 잠시 피신시켜 놓았다가 다시 이집으로 옮겨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이집도 어떤 이유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사라질 것이다. 그 시점에서 이 자료들의 처지와 운명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아득하고 답답해진다.
문득 박물관이나 고분 등에서 자주 보았던 껴묻거리, 이른바 부장품(副葬品)이 떠오른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생전에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후에는 결코 다 가져갈 수 없으니 결국 무덤에 함께 가져가서 그 곁에 묻는 심중이 이해가 된다. 극단적인 예로 순장제도(殉葬制度)가 있다. 노비나 마소도 같이 묻히는 거다. 잡으면 놓기 싫어하는 인간 본능 혹은 욕망의 전형이다. “움켜쥐지 말아라. 모든 걸 내려놓아라. 내 눈 감으면 다 놓고 가야한다. 아무리 금은보화라도 이고 가랴? 지고 가랴?”하고 자주 들었던 어른들의 푸념이자 잠언(箴言)이 있다. 이제는 내가 그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할 하니 당시 그 어른들의 심경이 좀 이해된다.
다시 마당이다. 화단 가장자리에는 열 개도 넘는 단지 속에는 스탠 식기, 사기그릇, 수저 등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아버지가 집안 정리하시다가 당신의 아내께서 평생 사용하던 거라 쉽게 버리지 못하고 멋진 아이디어라 자찬하면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독 하나에는 언제 담아진 것인지도 모르는 말라붙은 된장도 가득 채워져 있다. 아버지가 가끔 돌덩이처럼 굳어진 그 된장을 떼어내다 시피해서 음식 맛을 낸다고 넣어서 잡수시는 것을 보았다. 위생상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도 자꾸 드시는 것 같아서 나중에는 만류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아깝기도 하거니와 더욱이 역시 어머니가 남기신 것이니까 그러시겠다고 이해하면서. 그 옆, 옥상 올라가는 계단 밑에는 어머니께서 신으시던 신발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모아져 있다. 역시 아버지께서 이건 네 어머니 쓰던 것이니 버리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시던 게 생각난다. 그 안쪽으로는 아버지 타시던 녹이 쓴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이제 부속품이 다 떨어져나가고 튜브는 다 삭아 바람이 다 빠진 채 푹 죽어 있다. 이걸 보고 있으면 어떤 한 시간이 정지된 듯 같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가까운 시내는 한번 씩 자전거 타고 살살 다니면 될 것 같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셨다. 아마 스스로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다.
내려와서 빈집 같은 큰방, 남쪽, 서쪽 방을 둘러보았다. 방마다 아버지의 숨결과 체취가 너무나 강하게 남아 있다. 여기도 벽화작업을 하셨다. 붉고, 검은 테이프를 찢어서 무슨 상황을 그려낸 것인데, 자세히 보니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에 왜적을 무찌르는 해전을 지휘하는 장면 같다. 어찌 보면 고무테이프를 사용했으니 아버지만의 새로운 표현 기법 같다.
요즘, 가끔 죽고 난 뒤의 걱정에 대해서 아내와 생각을 나눠본다. 걱정이라기보다 남은 과제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미해결 과제를 세심하게 점검하고 최대한 해결해야 한다. 그게 존재의 이유다. 내가 생존해 있을 때 우주도, 시간도, 영원도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은 개인이 각각 소우주다. 나라고 하는 소우주가 사라지면 우주 전체가 사라진다.”
자식이니, 후손이니, 제사니 하는 기존 전통적인 가치에 매몰되는 우리의 행태는 유한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더욱 부질없고 덧없이 느껴진다. 결국 살아생전의 인생 미해결과제를 점검하고 손에 잡히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소유라는 생각이 든다. 2021.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