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유럽 여행기록 제4일
청솔고개
새벽 5시에 기상. 여행 중에는 늘 식사 시작 두 시간 전에 깨야 안심이 된다. 호텔 객실이 천이백 여개 된다는 말 그대로 미로 같기도 하고 달팽이 속 같기도 한 내부 통로를 이용하는 게 참 어렵다. 모두들 식사하러 왔다 갔다 하는 데 헤맨다. 호텔 아침 식사는 늘 멀리 떠나는 여행자의 설렘이 있다.
9시에 출발했다. 날이 어제와는 달리 아주 청명한 대신 좀 쌀쌀하다. 긴 소매 티셔츠나 남방셔츠가 필요하다. 길가 민들레꽃밭의 민들레가 더욱 샛노랗다. 네바 강의 물빛은 그냥 청록 빛으로 넘실댄다. 먼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찾았다. 이 요새는 네바 강의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있는 토끼 섬에 축조한 요새로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군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서 건설했다. 요새를 짓기 전까지는 일대가 습지여서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으므로 이 요새는 이 도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요새를 둘러싼 두꺼운 화강암 성벽은 1706년부터 약 35년간 걸려 완성된 것이다. 1733년에는 요새의 중앙에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페트로)와 바울(파울로)을 기념하는 목조교회가 세워졌는데, 여기서 페트로파블롭스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요새 중앙에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이 있는데 여기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이 도시의 랜드 마크 역할을 하는 121.8미터의 첨탑이 보인다. 이어서 조폐국 파사드 건물을 지난다. 두상을 이상하게 작게 만들어 놓은 이 도시의 건설자 표트르대제의 아들 표트르 2세의 청동 좌상이 보인다. 모두들 여기서 인증샷한다. 네바강변의 이오아노프스키라고 불리는 돌로 된 다리를 건너서 마주치는 곳은 네바 문이다. 요새 문을 통해서 들어가 보니 그 광대한 규모, 광활한 광장, 길옆에는 또다시 정겹고 낭만적인 네바 강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문은 ‘죽음의 문’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이곳에 수용된 정치범에게 처형 직전에 이 문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네바 강을 한 번 보여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리 난간 두꺼운 돌기둥에 앉아서 다정한 포즈를 취해 본다. 바로 뒤로 보이는 네바강변에 세워진 성벽의 두께는 8미터에서 12미터로 육중하고 견고하다. 적에게 포위되더라도 이 성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기 제조창, 식량창고, 성당 등 기본 생활시설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멀리 우리 뒤로 겨울궁전, 에르미타주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근처 붉은 색을 띤 나리시킨스키 요새를 뒤로하고 나오니 샛노란 민들레꽃들이 탐스럽게 자란 풀밭을 수놓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도 있다. 우리 팀의 부인 몇몇들은 여기서도 화사한 포즈를 잡는다.
10시 좀 지나 드디어 햇살에 환히 빛나는 네바 강의 화려하고 예술적인 트로이츠키 다리(삼위일체교)를 건너 에르미타주로 향한다. 네바 강의 물빛과 그 뒤 뭉게구름 사이로 봄 햇살에 빛나는 가로등들이 참 이국적이다. 가이드는 박물관 가기 전에 근처 궁전광장에서 45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어제가 일요일이라서 길게 줄을 서야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침을 놓는다. 나는 멀리 아까 보았던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의 황금빛 첨탑을 배경으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물 빛, 구름 색, 하늘과 햇살의 광휘를 응시한다. 정말 아름답다. 이를 닮아 더욱 아름다워진 우리들, 모두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찬탄하고 이 한 순간을 영원처럼 담고 기록해 놓는다. 오늘의 중심 여행 중심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일명 겨울궁전이라 불리는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다. 여기에 참 많은 기대를 품고 떠나왔다. 입장시간이 안 맞아서 박물관 옆 궁전광장을 먼저 찾았다. 근처에는 차가 벌써 많이 주차해 있다. 가이드는 오늘 어제 휴관이어서 무척 복잡할 거라고 했다.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더 기다려야 하니 근처를 시간 때우기 식으로 어슬렁거린다. 모처럼 여유 있게 산책한다. 궁전광장, 엄청난 광장 한가운데에는 높이 47.5미터에 달하는 알렉산드로프 전승기념비 기둥이 서 있다. 이는 조국전쟁이라고 불리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1843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부조를 자세히 보니 정교한 전쟁 관련 조각이다. 그 뒤 오른편의 구 참모본부 건물의 아치에는 정교한 조각이 장식돼 있었다. 입구에서 그까지 가는데 한참 걸린 것 같다. 이 광장은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찬탄하기보다는 러시아의 근대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황제 니콜라이2세는 1905년 여기서 임금 인상을 청원하러 온 20만 명의 시위 노동자에게 발포하여 천여 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앗은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의 현장으로 이로써 제정러시아의 몰락을 앞당기게 된다.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혁명의 진원지가 된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무척 쌀쌀하다. 모두들 약간 파리해진 인상으로 힘들어한다. 여기서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입장 순서가 된다고 안내해서 일단 모였는데 또다시 20분 지연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유 시간 가지라면서 기다리게 한다. 처음 가이드가 입장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말을 전제했지만 이러니 모두들 슬슬 인내심의 바닥을 보인다. 급기야 우리 팀의 친구 하나가 분통을 터뜨린다. 그래서 나도 같이 그 분통에 힘을 실어줬다. 아내는 제발 그런 식으로 하지마라고 나보고 비난하는 투다. 우리보다 훨씬 늦게 온 중국여행객이나 서양인들은 모두 바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장하는데 우리는 거의 2시간 이상 그대로다. 이들은 모두 크루즈 여행객이라서 그렇다나. 쉽게 말하면 고급 여행객이고 우리는 헐값에 온 싸구려 여행객이란 뜻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런 점을 감안해서 적절히 시간 안배를 해줬어야 했는데 모이라 다라 하니 뿔이 난 거다. 거기다가 또 하나 더, 가이드가 어제부터 박물관 입장 복장에 대해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요구한다. 그래서 모두들 바람에 외투나 점퍼 모두 두고 최대한 가벼운 차림을 했는데 날이 개면서 갑자기 샌날이 되어서 덜덜 떤다. 그러다 보니 긴 여행 중에 이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 싶어 불안한 마음도 가중된다. 그래서 더욱 부아가 솟구친 것이다. 이러다 여행 중에 독한 감기라도 심하게 걸리겠다고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모두들 더욱 많이 짜증나고 불쾌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드디어 에르미타주 박물관!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입장했다. 모든 여행지에서의 박물관, 미술관 관람은 정말 제대로 보려면 미리 공부하고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냥 주마간산을 둘러볼 수밖에 없다.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다. 이 이름의 어원은 프랑스 말 ‘에르미타시(은둔지)’에 왔다고 가이드북에 기록돼 있다. 박물관은 5개의 건물로 돼 있다. 1층은 주로 러시아,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문화 유물이 전시돼 있고 2층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리타의 성모’ 등 서유럽의 유명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3층은 마티스, 고갱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300만 점 이상에 달하는 소장품 중 일부가 현재 100여개 방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한 작품에 1분 정도 본다 해도 8년이 걸린다고 한다. 가이드가 특히 강조하고 미술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렘브란트 그림을 실물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걸작들을 차분히 음미 감상할 시간도 없이 무슨 운동경기에서 신속히 이동하는 기분으로 미술관을 둘러본다. 사진 찍을 시간도 별로 없다. 뭐가 뭔지 혼동된다.
오후에 아쉬운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지막 시간, 거리에는 이국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기념물, 건축물이 그냥 휙휙 지나가 버린다. 참 아쉽다. 그래서 그냥 막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여기가 거기 같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와 네바 강 다리, 다리의 장식물, 누군지 알 수도 없이 거리 곳곳에 세워진 청동 인물조각상들, 멀리 화창한 5월의 봄 하늘에는 뭉게구름마저 퍼져있고 따스한 햇살은 나그네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이제 넵스키 대로를 거쳐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어야 한다. 버스 타고 시내 투어를 한다. 먼저 파리의 개선문과는 정 반대 개념이랄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개선문, 아이러니컬하게도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아치형이다. 녹색 기둥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 해 전쟁은 정말 역사적이어서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표제음악의 대표인 교향곡 ‘1812년’ 속의 대포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다. 내려서 답사해 보지 못해서 내내 아쉽다. 어제 내렸던 이삭 성당 앞을 지나간다. 그 근처에 청동기마상이 부드럽게 다듬어진 바위위에 앞발을 들고 뒷발에만 의지한 체 서 있다. 이것은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가 이 말을 타고 오른손으로 네바 강 가리키는 모습이다. 앞발이 들린 높이는 황제의 권위를 뜻하며, 말의 뒷발이 뱀을 밞고 있는데 이는 악을 물리치는 정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푸시킨의 대표작 중 하나이 대서사시 ‘청동의 기사’는 바로 이곳의 청동 기마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만 하루 남짓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오후에 홀홀히 또 길을 재촉한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 에스토니아 타린 시로 간다. 어제 이곳이 비가 뿌려서 북국다운 침울한 기분을 한껏 느껴서 마치 많은 작가들이 즐겨 일삼던 그 단골 날씨 배경을 제대로 맛보았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오늘은 정녕 봄 날씨 그대로다. 모두들 에르미타주 박물관 쇼크로 심신이 피곤한지 잠에 빠져든다. 나의 여행 수첩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4일째, 17:10, 지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으로 난 끝없이 이어진 길을 또한 끝없이 달리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들의 조국 러시아. 대지에 지금 5월의 해살은 내리 쬐고 나는 몽환적 기분에 젖어 대지의 정령을 쫓아 가는도다. 이 자연,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천혜의 그 땅, 또 다른 버지니아. 거기서 사로잡혔던 그 때의 느낌이 다시 솟구친다. 부럽다 못해 거의 치명적이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대지의 풍요함이여! 푸시킨의 고향, 그 백야의 아득한 광휘, 이 순간을 난 영원히 기억하리로다. 이렇게 떠나가면 오늘 저녁엔 에스토니아 초고속 페리호 타는 곳에 닿으려나. 또 다시 부서지는 역광의 구름너울.”
그대로다. 내가 난 난생 처음 이 북유럽,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탈린 길, 일망무제 지평선이 키 큰 나무로 가려진 대 평원을 쉼 없이 달린다. 맑고 푸른 하늘에 더욱 화사한 솜털구름, 찬연한 햇살, 풍성한 수양버들나무 숲, 끝없이 이어지는 민들레꽃밭, 유채꽃밭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멀리 마을에는 깨끗하게 꾸며진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으며 몇 군데는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오후 6시 쯤, 성벽이 길게 늘여져 있고 망루가 보인다. 이제 대평원은 끝나고 도시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러고도 1시간 여 더 달려 드디어 러시아 에스토니아 국경에 이르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나라로 육로로 유로라인 버스로 7시간 정도 걸린다고 소개돼 있다. 북으로는 핀란드, 동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라트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발트 3국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불과 8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 두 도시는 2시간 남짓 걸리는 쾌속 페리로 연결된다. 구소련의 해체로 생성된 이 나라는 그 역사적인 유산으로 러시아인의 인구 비중이 25%나 돼 상당히 높다. 러시아어가 에스토니아의 제2언어이다. 에스토니아는 지정학적으로 강력하고 호전적인 독일,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 등 이웃 나라에 둘러싸인 까닭에 지난 800년 가운데 겨우 30년 동안 독립해 있었다고 한다.
드디어 탈린 시에 도착했다. 핀란드 만을 끼고 헬싱키와 마주보고 있는 수도 탈린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다. 우리의 시골 도시 같이 정겹게 느껴지는 풍광이다. 이름이 ‘SUSI’라는 호텔에 들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이 그냥 소박한 숙소다. 1층 숙소에서 바깥마당이 그냥 보이는 부담 없이 정겨운 주변 풍광이다. [2016. 5. 17. 화. 흐리다가 갬.] 2021.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