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지난 2016년도부터 내가 참여해온 학업중단숙려제 상담활동이 올해부터 없어졌다. 교육당국의 이유 있는 정책과 방침에 따른 조처라고 생각하지만 무척 아쉽다. 특히 10여명까지 확보된 청소년 전문상담 인력의 활용처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지역의 학생 및 청소년 교육력 제고와 정신건강 증진 차원에서 참으로 다대한 손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지역 위 센터에서 열린 마지막 평가회에서 이런 조처를 통보하던 담당자가 앞서 너무 아쉬운 듯 진행하면서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고 상담원들이 오히려 더 위로의 말을 전해야 했다.
우리 상담원들은 위 센터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같이 나눠 먹고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전해주는 몇 가지 선물을 받아들고 황황히 나왔다. 모두들 너무 아쉬운 나머지 다시 찻집에 모였다. 앞으로 이런 만남의 조직과 역량을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역량재활용의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새로운 모임을 결성해보자는 데까지 합의했다.
지난 12월 2일, 그날의 이 해산이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서 나의 생애깁기에는 이렇게 소상히 기워져 있었다.
도시락 식사 후 돌아가면서 마지막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제일 오랜 10년 기간으로 활동한 이**님이 해 주었다. 초창기 학생상담자원봉사활동으로 출발한 기간까지 다 합하면 15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때는 상담원의 역량강화와 사기진작을 위해 2박3일 스키장 워크숍까지 했다고 한다. 이 상담원은 정말 만감이 교차할 것만 같았다.
다음은 내 차례다. 모두들 나의 일지 제출 방식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지는 용어 그대로 매일 쓰는 게 맞고 평생 교직체험으로 공문서를 포함한 기록에서 불확실한 건 관련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 오탈자 등을 허용하지 않는 나의 성격 등을 그 배경으로 설명했다. 나의 6년 뉴스타트 사업 참가 동기는 내가 재직 중 교실에서 패싸움으로 자퇴한 내가 담임했던 김** 군때문임을 알려주었더니 모두들 감동적인 스토리라면서 공감해 주었다. 모두들 진정 그런 표정이다. 어쨌든 이런 호응과 관심이 정말 고맙고 기분 좋다. 이제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정신적인 예우를 받을 것인가 하고.
아울러 이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은 어쨌든 저 출산에 따른 학령인구의 감소로 그만큼 우리 사회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증좌일 수도 있어서 굳이 부정적인 측면으로도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를 나의 70년대 야학봉사화동과의 인연으로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잘 살게 되니 야학 입학 인구의 감소로 야학이 소멸된 역사와 연계해서 언급했다. 이런 해석은 내가 생각해도 개연성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져서 스스로 기분이 좋았다. 그 때 많은 집안의 여자아이들이 중학교도 입학하지 못하고 있다가 야학 문을 두드렸는데 1972~1974년 동안 내가 관련한 그 야학도 1985년 쯤 완전히 폐교되었었다. 관련된 많은 인사들은 사회봉사직능의 장학재단을 조직해서 그 자취를 보존한 사실도 있다. 지금은 그런 청소년 대상 야학은 거의 사라졌다는 통계가 있다. 대신 특수한 가정형편으로 성장 시 한글을 잘 깨치지 못한 80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한글문해학교 같은 교육기관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내 회고정서에 심취한 나머지 내 말이 좀 길어진 것 같았다. 노경에 이를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충고를 무색하게 한 것 같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모르는 체 사라지기에는 이 모임에 대한 정이 너무 많이 든 것 같아서 주차장에 나가 보았더니 이**님이 아는 체 하며 모두들 이대로는 헤어지기 서운하다면서 차 한 잔 한다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나도 불감청고소원 격이라 기꺼이 응했다. 약속한 찻집을 찾는데 시내로 잘못 들어가 버려서 좀 지체 됐지만 결국 찾아서 합석했다. 찻값이라도 내가 내고 싶었는데 다 같이 낸다고 해서 김**님한테 맡겼더니 결국 찻값은 그 김**님이, 케이크 값은 이름도 아직 잘 모르는 다른 상담원이 냈다. 한 시간 정도 있으면서 그 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특히 척추관협착증 증세를 솔직하고 소상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니 내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고 편해진다. 이제는 어디가도 나를 오픈하는 습성이 익어져간다. 몸에 배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촌각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먼저 바빠 서울 외손자, 손녀 보러 간다고 하고 먼저 일어섰다. 그래도 이**님이 다음 한 번씩 모임에 연락하면 같이 할 거냐 하는 제안에도 반색하고 호응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젊고 좋은 사람들과 친구 맺을 수 있을까요? 나는 절대 손해 보는 게 아니니 제발 여태껏 모든 이의 고마움에 대한 갚음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전까지는 순전히 내담자들을 위해 애썼지만, 이제부터는 솔직히 우리들끼리의 대화에도 나는 충분한 힐링이 됩니다.”하고 진정성 어린 너스레 아닌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물론 나는 나의 내담자를 위해서 몰입할 때는 내담자를 위한다기보다 오히려 나를 위한 마음의 케어와 힐링이 더 많이 됨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업의 철수 때문에 내가 상담을 더 지속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내게 생기는 건 많은 아쉬움과 상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의 해체는 나의 늙어감이 가져다주는 상실감을 한층 더 크게 한다.
문득 내 방의 책꽂이에 지난 6년 동안 내담자와 주고받은 상담의 흔적이 연도별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음이 떠오른다. 6년 전 최초의 내담자는 가정에서 미운 털이 박혀 휴대폰도 압수당하고 학교는 안 오고해서 그 아이와는 연락할 길이 막막했었다. 일단 내가 무작정 뛰어들어 보았다. 담임교사와의 접촉 끝에 학교 주변을 맴돌던 내담자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어 실가지 같은 인연으로 상담이 시작돼 좋은 결과를 얻었었다. 또 어떤 내담자는 하루에 약속을 5번 변경했었다. 마지막 약속 시간에 맞춰 승용차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상담 장으로 가 보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이제 이런 기억의 기록으로만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를 둘러싼 모임의 해체를 맞을 것인가. 조직의 해체는 관계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러면 참 자유롭긴 하지만 또한 더러 고독하고 무기력해질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우리의 늙어 감은 늙음이나 낡음이 아니고 익음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늙음을 위로하는 한낱 수사에 지나지는 않는 것인지. 2022.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