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오늘은 58년 전 내 나이 13살 때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해에 당신께 우리 큰집 가계에만 증손이 넷이나 있었다. 그 맏증손이 바로 나다. 증조할아버지의 연세를 계산해보면 불과 예순 여덟에 맏증손인 나를 보신 셈이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사철 허연 무명 주적삼을 입으시고 꼬장한 자세로 여섯 살 어린 첫째 동생은 업고 나는 걸리면서 동네 당수나무가 있는 쉼터를 오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증손들을 거두어 주시면서 아직은 새색시인 맏손부의 일손을 도와주신 셈이다. 지금 나의 처지와 비교해 볼 때, 두 세대도 더 지난 세월이라 하지만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증조할아버지의 그 때 연세와 현재 나의 나이 차이가 10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묘소 올라가는 길은 얼어붙은 듯하다. 그래서 전번처럼 미끄러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신경 쓰인다. 가로로 깊이 파인 배수로를 지날 때면 여전히 신경이 곤두선다. 아내가 준비해 준 제수 외 홍삼음료, 두유도 같이 진설했다. 제관은 늘 이렇게 3인 내외로 단출하기 짝이 없어 증조할아버지께 약간은 죄송하다. 눈에 선한 증조부님의 용자(容姿)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순서에 따라 준비해간 국한문 병서 축문을 읽어내려 갔다. 4대째 이어지는 혈연의 연대성이 끈끈하고 면면하게 느껴진다.
維歲次 壬寅 十一月 辛巳朔 初七日 丁亥
曾孫○○ 敢昭告于
顯曾祖考處士府君
顯曾祖妣孺人 利川徐氏 歲序遷易
顯曾祖考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感慕
謹以玄酌 庶羞恭伸 奠獻 尙
饗
때는 바야흐로 壬寅년2022년 辛巳월十一월 丁亥일初七일을 맞이하여,
曾孫子 ○○은 삼가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께 감히 밝히 고하나이다.
利川徐氏증조할머니와 더불어 증조할아버지의 은덕을 높이 기리옵니다. 歲月이 흘러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58주년 忌日이 다시 돌아왔사옵니다.
이제 먼 그날을 맞아 증조할아버지의 큰 恩德을 마음에 느끼어서 사모하는 마음 가눌 길 없사옵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簡素한 飮食을 차려 恭遜히 올리오니,
부디 降臨하셔서 두루 歆饗하시옵소서. 2022. 12. 1.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조부님에 대한 기억, 그 4대에 이어진 연대기(年代記) 3 (2) | 2022.12.03 |
---|---|
증조부님에 대한 기억, 그 4대에 이어진 연대기(年代記) 2 (0) | 2022.12.02 |
다시 유월 4, 내 생애의 어느 하루 1985. 6. 9. 일, 2 (0) | 2022.06.17 |
다시 유월 3, 내 생애의 어느 하루 1985. 6. 7. 금, 1985. 6. 9. 일, 1 (0) | 2022.06.16 |
홀로 살아보니 2/ 세 끼 챙겨먹으며 (0) | 2022.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