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喪失)과 소유(所有)
청솔고개
다음은 2016년 5월 18일 아침 러시아 북유럽 여행 5일 째 생긴 일.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출발.
오늘은 어제 오후에 보기로 했다가 시간이 늦어 못 본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몇 군데 명소를 보고 바로 배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여행 중 치명적 실수를 해 버렸다. 물병 마개를 제대로 막지 않고 그냥 무심코 가방을 눕혀 놓고 식사하고 왔더니 노트북에 물이 스며들어가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 노트북 속에 그동안 내가 저장한 필수적인 자료가 모두 망가질까봐 정신이 아뜩했다. 오늘 여행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다. 주변에 급히 도움을 청했더니 여기는 그런 가전제품 수리하는 곳이 없고, 있다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하도 답답해서 동행한 동영상 전문 사진작가 C님한테 이야기했더니 일단 자꾸 말려 주라는 것이다. 자연 건조가 되면 괜찮아 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차창 너머 낯선 시가지 보는 것보다 노트북을 끌어안고 그냥 말린다고 난리다. 어쩔거나 그야말로 ‘엎질러진 물’인데. 벌써 노트북 화면이 뜨끈뜨끈해온다. 여기 내 자료가 모두 멸실되면 희망이 하나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탈린 시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9시 반 지나서 탈링크 쾌속선 승선. 핀란드 헬싱키 행. 선실은 깨끗하고 깔끔하다. 핀란드만을 미끄러지듯 떠간다. 선실 버거킹 커피 점에서 에스프레소 두 잔, 라테 한 잔 시켜서 동행과 담소 화락하면서 노트북 사태에 대한 과도한 신경을 끊으려 해본다. 그 사이에 그만 헬싱키에 도착. 그 동안에도 노트북이 더욱 뜨거워진다.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다. 마음이 무겁다. 노트북의 다른 자료를 다 못쓰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헬싱키 도착하니 12시 반쯤.
또 하나, 여행 후, 치명적인 사고.
러시아 북유럽 여행을 다 마친 후, 며칠 뒤라 여독도 가시고 해서 좀 느긋해졌다. 내 스마트 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천천히 훑어보면서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구상하면서 여정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초점이 안 맞아 흐리게 나온 사진 한 장이 보인다. 그것만 삭제한다는 게 그만 그 폴더의 사진과 동영상을 모두 다 날려버리었다. 아뿔사!. 이런 실수는 평생하지 않았는데. 당초에는 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폰의 저장용량이 넘치면 노트북에 백업하려고 했는데, 앞서 타린 시 호텔 아침 식사 때 물을 덮어써서 노트북도 망가진 상태여서 백업하지도 못했다. 인터넷 저장 공간인 클라우드에 운 좋게 저장한 것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게 다 멸실된 것이다. 바로 나만의 아노미, 카오스 상태도래, 절대 절망 상황.
답답하면 아이를 찾는다. 아이를 앞세워 폰 자료 복원에 대해서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한 군데 가격이 적절한 데 있었다. 전체 비용이 20만원 내외. 7만원 착수금 요청. 다른 데는 90만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었는데, 일단 비용이 적당한 것 같았다. 90만원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가격을 치르고 서라도 그 기록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평생 두 번 다시는 갈 수 없는 그곳이니까.
집 앞 폰 대리점에 가서 전에 사용하던 폰에 유심도 옮기고 마무리 작업도 했다. 나중에 속에 들어 있는 개인 정보 등을 지우거나 이관한 후 주었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웠더라도 결국 모두가 복원되니 꼭 보려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래서 그 안의 자료는 절대로 작업 중 유출되거나 도용되니 않아야 한다고 다짐을 요구했더니, “지금 어느 세월인데 그런 걸 유출하느냐, 그러다가는 업체가 먼저 법에 크게 저촉된다.”는 말에 좀 안도가 되었다.
나중에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같았지만, 내 눈에 선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스웨덴, 특히 노르웨이의 그 절경 복원에 대한 나의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내가 직접 그 순간에, 그 장면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고는 그 기분 속에 오롯이 다시는 들어가 볼 수는 절대 없을 것 같은 신념 같은 것이다. 평생 병증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는 자료와 기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 진정 무소유 정신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폰 자료 복원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현재 완전 복원 된 건 50장정도, 1차로 조각난 파일이 500장정도 보이는데 한 단계 더 깊이 작업해서 1,000장정도 하려면 추가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그 중 8~90%는 복구 가능하다고 한다. 빠른 시일 내 최선을 다해 복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휴일에도 당직을 붙여서 작업한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작업 마무리 약속 날짜. 담당 기사가 다시 연락해 왔다. 작업이 복잡해서 내일 저녁 무렵이나 아니면 그 다음날 쯤 사진을 돌려줄 수 있다고 한다. 점점 늦어지니 초조해 진다. 마무리되면 내가 내일 직접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작업 비용은 또 확인해 보아야 한다고 한다.
내 마음 속에는 내가 직접 담은 노르웨이의 베르겐 설원을 뛰노는 사슴 같은, 우리 동행들의 포즈와 그 꿈결 같은 배경들, 빙하에서 눈이 녹아 산위에서 여름 홍수처럼 콸콸 쏟아지는 물길들, 그 물길이 모여서 그 아래 이루는 폭포가 눈에 어른거릴 뿐이다. 자료 멸실에 대한 아쉬움과 애석함, 이어서 내 정보를 소홀히 하고 급히 처리한 나의 소행에 대한 자괴감, 자책감으로 괴롭다. 답답한 나머지 호소할 데라고는 또 아이다. 귀찮아함직도 한 나의 긴 메시지로 푸념을 쏟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작업 마무리 당일 오후, 복원 업소를 찾아갔다. ‘***복구연구소’ 사무실도 제법 넓고 직원들도 젊은 축이며 전문성도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의구심은 좀 사라진다. 내 USB에 다 옮기는데 30분도 더 걸렸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한숨은 놓은 셈.
지금, 그 여행이 끝난 뒤 꼭 4년이 지났다.
그 때 느낀 여행에 대한 나의 신념이다.
“모든 여행길은 나에게는 지중(至重)한 것이다. 여행길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절대적 일회성(一回性)이다. 그래서 그 기록도 절대적인 것이다.”
그 신념에 대한 나의 인식의 변화이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에 헤어나지 못한 나머지, 풍경과 현장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써 정작 이 순간, 내가 놓치고 마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도출한 결론이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 지금 바깥을 부는 바람은 어떠한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어떠한가. 나의 기분은 어떠한가.’ 하고 명상한다. 나를 그 여행길 가운데 둔다. 지금은, 나는 여행길 위의 그 한 순간순간을, 나의 오감을 모두 집중해서 나름대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조금씩 바뀌어가는 나의 여행 방식이다.”
어떤 여행가는 도인(道人)처럼 말한다. 여행길에서 지상(地上)에서 더 없이 아름다운 풍광, 더 없는 탐미(耽味), 최상의 기분까지 다 향유(享有)하려 하는 것도, 소유(所有)하려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 욕심이 여행 자체를 더욱 피곤하게 할 뿐이라고 조언한다. 이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꼭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면 어떠랴? 지나친 현장성과 즉물성(即物性)만을 고집하면 그것이 바로 번뇌(煩惱)의 단초다. 여행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하는데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소유(所有)의 벽(癖)은 결국 마음의 분란만 자초하게 된다.
이제 겪고 보니, 내가 여행길에서 남긴 사진과 동영상이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았다. 저장된 자료가 흘러나가 버려도 무심해짐을 알았다. 결코 관심과 열정이 식어져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그 길 위에서 한 순간 섬광처럼 번뜩이는 감흥, 감동, 감성이면 된다. 어떤 형태,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 중 하나라도 건져서 간직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비로소 나는 여행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유로워짐을 깨닫는다.
2020.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