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노르웨이 가는 길 (1/3)/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 노르웨이의 이름 없는 이 협곡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아쉬움을 남긴다

청솔고개 2020. 5. 25. 22:13

노르웨이 가는 길 (1/3)

                                                                                                  청솔고개

   여객선 터미널에서 우리가 타고 갈 ‘DFDS’로고가 선명히 그려진 크루즈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반, DFDS SEAWAYS 크루즈에 탑승. 길이 169m, 넓이 28.2m, 승객 수 2,026명, 룸 수 637개, 450대의 차량 탑재 가능, 레스토랑, 면세점, 바,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등을 갖추고 있다. 여행의 막바지라 아쉬움과 안도감이 같이 생긴다. 이 여객선을 밤새도록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하게 된다. 크루즈의 규모나 부대시설은 보기에 이전에 승선해 본 실자라인 이상인 것 같다. 다시 크루즈 여행이다. 여행의 낭만에 대한 나의 기대가 부풀어 간다.

   배가 출발하자 코펜하겐의 건물과 부두, 해안과 섬들이 멀어져 간다. 잔뜩 흐린 날씨로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벌써 어둠 속처럼 풍경이 묻혀간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뱃전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내가 다시 찾을 가능성 0인 이 뱃길을 지켜본다. 젊은 시절에는 이처럼 밤배가 항해를 시작해서 고동이 울리고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으면 설렘과 흥분, 절망적이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상반된 그 무엇, 야릇한 기분이 솟구치는데, 이제는 마음이 오히려 가라앉는다. 침실에서 쉬었다가 선실로, 갑판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녀본다. 어둠이 사위를 벽처럼 막는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 문득 카지노 코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해서 찾아 갔더니 늦었다고 입장을 안 시킨다. 아쉽다. 전번 실자라인에서는 호기롭게 달려들어서 잠시라도 즐겨보았는데 여기서는 그만 기회를 놓쳐버렸다. [여행 7일~8일 째, 2016. 5. 20.(금) 15:00 ~ 5. 21.(토) 08:30, DFDS SEAWAYS선상에서 덴마크 코펜하겐 출발 ~ 노르웨이 오슬로 도착]

   이제 돌아가는 날 하루 제외하면 여기서 보낼 날은 나흘 남았다. 여행 후반에 접어든다. 아주 작은 오두막집 같은 선상 침실에서 그냥 자고 일어났다. 배안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코펜하겐(쾨벤하운)에서 오슬로까지 17시간 항해 후 맞이하는 아침이다. 배 위에서의 아침 식사는 그 나름 독특한 분위기로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아침 식사부터 와인으로 반주 한 잔씩 해서 불콰한 얼굴이다. 여기는 서로 국적 같은 것도 알 필요 없는 전 세계인이 열린 공간이다. 함께 블랙퍼스트 해결하는 식당은 글로발화 그 자체다. 하룻밤 걸친 짧은 시간이나마 크루즈 선상 생활을 즐겨본다. 긴 기다림 끝에 DFDS크루즈 여객선에서 10시 다 돼서 내렸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노르웨이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소설이 떠오른다. 인간성의 본질과 그 상실의 실상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흥미진진한 필치로 파헤쳐서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그 노르웨이에 내가 발을 디딘 것이다.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5월 하순이지만 위도가 높아서 그런가 싶다. 노르웨이라는 말에는 어원으로 보아 ‘북쪽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 담겨 있다. 국토의 80%가 삼림, 호수, 강으로 되어 있어 어디 가더라도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인구 밀도가 낮아 국민 한 사람이 차지하는 자연의 크기는 대단하다. 이 나라는 19세기말까지도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자연히 절약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1905년 스웨덴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발전하고 있던 중 1960년대 북해 유전 발견 행운으로 국민 소득이 세계 몇 번째 간다. 1인당 국민소득은 높지만 그 만큼 물가도 높아서 실제 국민들의 체감 생활은 오히려 소박하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오슬로 피오르의 안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10시 30분 쯤,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시청사를 찾았다. 1층의 대형 홀에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2000년에 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곳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나머지는 모두 스톡홀름에서 시상식이 열리는데 평화상만은 매년 12월 10일 여기서 시상한다. 붉은 벽돌로 쌓은 좌우 대칭형 건물은 오슬로의 피요르를 바라보고 있으며 건물 전면에는 오슬로의 상징인 백조상 분수가 있다. 오슬로 시의 신화와 역사 등을 주제한 부조가 늘어서 있는 입구와 회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된 홀이 나온다. 내부는 무척 화려하며 특히 세계적 화가 뭉크의 작품 ‘Life’가 걸려 있는 뭉크의 방이 유명한데 시민들은 여기서 결혼 서약을 한다고 한다.

   11시 다 되어서 오슬로의 칼요한슨 거리를 찾았다. 시의 가장 중심부에서 노르웨이 왕궁까지 이어진 1.5km의 길을 말하며 고풍스러운 느낌과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들, 시청사, 국회의사당,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회를 즐기는 그랜드호텔 등이 모여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카페가 줄지어 있다. 여기 벤치에서 앉아서 쉬는 여유를 가졌다. 여기는 물가가 가히 살인적이란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생활비를 한 푼 아끼기 위해서라도 남녀의 동거가 자연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대학생들의 기숙사 입사 등에서도 그렇게 성의 개방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어떤 여행 기록에 보니 머리 커트 한 번 하는데 거의 1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시내에 위치해 있는 평범한 식당에서 맥주에 홍합 요리로 간단하게 먹었는데도 3~4만원 치렀다고 한다. [여행 8일 째, 2016. 5. 21.(토) 10:00 ~ 11:00,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 칼 요한슨 거리 답사]

    오전 11시 다 되어서 1,300년경 건설된 중세 요새인 오슬로 아케르후스성을 찾았다. 오슬로항의 동쪽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오슬로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중세 건물이라고 한다. 쉬엄쉬엄 걸어서 답사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멋있는 제복을 입은 위병 둘이 짝을 지어 교대하러 가는 것 같았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오슬로 항구와 시내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시가와 연결된 항구 옆 바다는 오슬로 시내의 피요르이고, 여기서 그 피요르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말끔히 단장한 요트들이 한가롭게 떠 있다. [여행 8일 째, 2016. 5. 21.(토) 11:00~12:00 오슬로 아케르후스 성 ~ 시내 거리 답사]

   1시 쯤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을 찾았다. 노르웨이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 1869~1943)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 작품 200여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20세기 초 비겔란은 자신의 일생 동안 영혼을 바쳐 조각한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13년 동안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었는데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 사실성, 예술성이 감동으로 다가 온다. 애석하게도 작가는 이 공원이 완성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인데 121명의 벌거벗은 남녀가 엉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서로 먼저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한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입구의 쭉 뻗은 가로수 길에서 시작하여 인공 호수 위의 다리 위의 조각, 인간의 일생을 그린 분수 조각, 그 외 어린이, 가족, 부부 등의 다양한 역동이 850m에 걸쳐 조각되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는 다른 데와는 달리 ‘올라가지 마세요!’하는 문구도 없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 위로 타고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보였다. [여행 8일 째, 2016. 5. 21.(토) 12:30~13:30 노르웨이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감상]

   오후 2시 좀 지나 드디어 노르웨이의 자연 경관을 그대로 맘껏 만끽할 수 있는 오슬로~릴리함메르~오따~비데세터마을 루트로 진입했다. 내 생애 가장 길고 험난하고 특이한 체험 6시간이었다. 버스는 끝도 없이 이어진 초지와 호수를 지난다. 수양버들이 부드러이 피어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끝없이 들어간다. 날씨가 약간 흐려서 구름이 서녘하늘을 덮고 있다. 그 틈새로 비치는 햇살이 호수에 내리 꽂혀 북유럽 특유의 외롭고 고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는 끝없이 펼쳐지는 이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카메라로는 찰칵찰칵, 순간을 기록하고, 메모지에는 퍼뜩 떠오르는 상념의 키워드를 주워 담는다. 서광으로 내리 꽂히는 북유럽 역광은 빛의 향연이고 자연의 예술이다. 이 순간은 이국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금방 저 빛을 타고 날개 단 천사가 하강하는 것 아닌가 싶다.

   1994년, 꽤 오래전 이곳 릴리함메르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는데 멀리서는 마치 검은 색, 청록색 구둣주걱처럼 보이는 점프대가 있다. 그 아래로 다가가 보았다. 어쩐지 과거의 명성과 영광과는 달리 쓸쓸하고 휑뎅그렁하다. 노르웨이에서 3만 인구의 도시이면 제법 큰 축에 속한단다. 문득 우리의 강원도 산골 평창 동계올림픽 마을이 생각난다. 이곳은 그래서 꼭 우리나라 강원도 골짜기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좀 다른 점은 들과 호수가 더 넓고 많다는 점이다. 오따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갔는데 이 낯선 시골 마을이 너무나도 정겹다. 이 마을에서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하였을 때 다 죽고 8명만 생존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 말로 8이란 뜻을 지닌 오따(Otta)라는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멀리는 5월 하순인데도 아직 지난겨울의 잔설이 희끗희끗 역광 속에서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쌀쌀함이 느껴지는 바람결에는 북국 만년설 내음이 섞여있는 듯하다.

   오후 6시 다 되어서 롬(LOM)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노르웨이에서 몇 개 남지 않은 목조교회인 롬 스타브 교회를 잠깐 둘러보았다. 온통 초원, 호수, 구름, 산 밖에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가 무척 낯설어 보였다. 바이킹시대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그 시대를 연상케 하는 문양들을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기묘하게 변해가는, 하늘의 구름 빛과 호수의 물빛의 어우러짐을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을 포착해 나갔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단조롭고 재미없는 길일지 몰라도 나는 이런 길이 내 여심(旅心)을 북돋워주는 가장 멋진 길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자꾸자꾸 산 위로 고도를 높여서 우리나라 강원도 미시령이나 한계령 같은 길로 차가 올라간다. 5월의 만년설이 길옆에 더 많이 보인다. 산위는 온통 하얗다. 눈을 돌려 사방 아무데나 둘러보아도 사각 프레임에 넣으면 작품 사진이 되고 카메라 앵글에 넣으면 엽서가 될 것만 같은 탐나는 풍광이다. 문득 20년도 더 전, 늦가을 눈 덮인 알프스 산록 마을을 지나 말라서 서걱거리던 미루나무 낙엽이 흩날리던, 끝없이 이어진 호수를 달리던 생각이 난다. 당시 유럽여행 간다고 바로 구입해서 사용법도 잘 모르던 백만 원을 호가하던 수동식 니콘 카메라로 달리던 차창에서 막 셔터를 눌러댔었다. 나중에 인화해서 보니 어설픈 내 사진 솜씨 걱정과는 달리 한 장 한 장이 마치 엽서와도 같이 멋졌다. 그런 잊지 못할 아름다움이 명품 사진처럼 한 장 한 장에 담겨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탈리아 반도의 아펜니이노 산맥이나 고도(古都) 피렌체 의 늦가을 풍광이 여기에 겹쳐진다.

   드디어 저녁 8시도 훨씬 지나 스트린(Stryn)주의 조그마한 피요르 속 마을 비데세터에 있는 산장형 호텔인 비데세터 호텔(VIDESETER HOTEL)에 차도 사람도 지친 듯 오른다. 산골짜기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이곳은 유럽의 전설이나 동화에서 나올 법한 은밀한 곳이다. 밑에서는 호텔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러 다른 나라 여행하면서 숙소가 이런 곳은 처음이다. 600미터 산중턱에 자리한 이 호텔은 우리나라의 펜션 같은 분위기다. 나는 속으로 환호작약했다. 호텔 룸도 그냥 원목으로 채워진 산장 급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계단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오래되었지만 내부 장식도 고전적이고 앤티크하다.

   모두들 대여섯 시간 버스에 너무 지쳐 주변도 살필 겨를도 없이 그냥 식사를 한다. 8시도 한참 지난 너무 늦은 식사였지만 소박한 식사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한다. 식당 오른쪽 멀리 산마루에 보이는 만년설이 아직 백야의 밝은 기운에 빛나고 있다. 이런 정경을 보면서 천천히 즐기는 만찬은 내 생애 최고의 식사였다. 원목으로 된 식탁에는 이 호텔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소박한 음식이 차려져 있고 나는 난생 처음 이런 산장에서 늦은 저녁, 만찬을 즐긴다.  호텔 식당의 백열등 조명이 더욱 포근해지면서 9시가 다 되었는데도 먼 산 위 번득이면서 빛나는 만년설을 볼 수 있다니……. 이게 바로 내가 그렇게도 찾던 꿈의 여행지가 아니었던가. 모여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노르웨이 산록의 산장의 밤을 맞는다. 밤이 깊어간다. 아무래도 이번 여정은 여기서부터 절정 단계에 접어드는 것 같다. 10시 지나니 와이 파이가 터진다. 카톡으로 딸과 아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제 할아버지에 대한 안부도 물었다. 늘 아버지의 용태에 대한 걱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 노르웨이의 이름 없는 이 협곡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아쉬움을 남긴다. [여행 8일 째, 2016. 5. 21.(토) 14:00~20:30 노르웨이 오슬로~릴리함메르~오따~비데세터마을에서 묵음]    202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