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모스크바의 거리/우리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 키예프역[끼옙스까야메트로]까지 환승해서 갔다

청솔고개 2020. 5. 18. 00:11

모스크바의 거리

                                                              청솔고개

 

오월은 봄 여행의 최적기다.

따스한 봄 햇살에 기분 좋게 불어오는 5월의 바람, 가는 데마다 우거진 녹음.

모든 게 풍요롭고 기분이 좋은 계절이다.

나는 퇴직 후 비로소 자유롭게 가장 여행다운 5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처음이다.

5월 여행이 너무나 신기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로소 자유인임을 깨달았다.

 

4년 전, 꼭 이맘때다.

2016년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각국의 주요 여행지를 방문했었다.

잘 알려진 여행 명소에 대한 감상과 기록, 정보와 사진은 나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남겨 놓았을 테니,

나는 주로 나만의 여행지에 대한 거리와 배경, 자연 풍광에 대해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느낌,

즉 여정(旅情) 중심으로 기록을 남기려고 애썼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그 순간 순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거리

 

새벽에 일어나서 아들과 딸에게 내 노트북에서 카톡으로 소식을 전했다.

딸한테는 사진도 몇 장 보냈다.

노트북을 잘 가져왔다 싶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걱정이 되는 아버지의 용태도 전화 드려보고 잘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이틀에 한 번씩 전화하겠단다.

자식들이 그래도 고맙다.

내가 없는 시기에 이렇게 도와주겠다니.

이제 자식들도 커서 제 구실을 하는가 보다.

 

오늘은 스승의 날, 이역에서 맞이하는 5.15, 스승의 날.

아득한 느낌이 벌써 든다.

이제는 더 이상 내게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곳에서의 소식이 좀 기다려진다.

제대복직 후 부임한 곳에서 겨우 두해 근무했던 곳의 제자 하나에게서부터는 어김없이 축하 메시지가 온다.

이제부터는 그냥 무작위로 보내는 축하메시지라도 소중히 여겨진다.

 

날씨는 제법 선선하다.

쌀쌀하다고나 할까.

모스크바 외곽지의 호텔에서 시내로 이어진 이 거리에도 수양버들의 부드러운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 사이 군데군데로 탑처럼 생긴 건물이 언뜻언뜻 보인다.

모든 건물들은 아주 여유가 있어 보이고 격조가 느껴진다.

이 도시의 건축적 예술미를 조금은 실감할 것 같다.

이렇게 모스크바의 이른 아침 거리를 스케치해 본다.

 

오월 중순의 모스크바는 곳곳마다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 튤립이 지천을 이루고 있다.

발레를 보고난 뒤 잠시 짬을 내어 튤립 꽃밭을 배경으로 화사한 포즈를 취한다.

꽃 뒤의 고풍스럽고 격조 있는 석조 건물들이 꽃보다 더 멋지다.

일행들이 사진 촬영을 위한 최상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들 있다.

 

여기서 국립모스크바 대학 가는 길가는 숲과 나무의 퍼레이드다.

차가 톨스토이 석상 옆으로 지나간다.

고골리 등 세계적인 러시아 작가들의 동상도 보인다.

차는 노보데비치 호숫가 공원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톨스토이 석상은 내려서 직접 봐야 하는데 그냥 먼발치에서 스쳐가니 참 아쉽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근처에는 묘지가 조성돼 있는데 우리나라 현충원 같은 곳이다.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 고골 등 러시아의 유명인들이 여기에 묻혀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선생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이분은 1930년대 김좌진 장군과 같이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걸었다.

공산주의자이지만 북한에서도 권력의 경쟁상대가 돼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구소련에서는 국가연금까지 받으면서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백추선생을 알게 된 것도 여행의 행운이다.

 

이윽고 모스크바의 고층 건물만 모아놓은 모스크바 시티가 보인다.

최고의 건물들이지만 최근 러시아의 경제 위기로 건물의 공실률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끝없는 숲길로 조성된 진입로 지나 멀리 국립모스크바 대학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그 앞에 서니 그 규모와 위용, 예술성과 역사성이 돋보인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다는 220m의 참새 언덕에 오른다.

마침 모스크바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와서 쉬고 있다.

청년들의 건강한 젊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모스크바 강 건너 올림픽 경기장이 저녁 기운 속에 아련히 보인다.

 

여기서 지하철을 타러 숲속으로 난 지름길을 한참 걷는다.

도심에 참 잘 가까워진 숲길은 무척 인상 깊다.

드디어 지하철 입구, 여기는 참새언덕 역.

우리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 키예프역[끼옙스까야메트로]까지 환승해서 갔다.

[2016. 5. 15. 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2일째.  모스크바의 거리 풍광을 중심으로 기록함.]   

                                                                            2020.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