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1. 28.
오전은 푹 쉬었다. 호텔 룸에서 여느 때처럼 브런치하고 1시 30분쯤 아이가 미리 갔다 온 ‘나나마사지샵’에 가서 1시간 반 동안 마사지 받았다. 아주 소박한 시설이지만 오히려 실속이 있다. 여기 마사지사 고용은 손님이 오면 바로 폰으로 콜해서 불러오는 프리랜서 제도이다. 이런 데가 이른바 로칼마사지샵인 것 같다.
아내는 그새 근처 골목 어귀 채소 가게에 가서 필요한 걸 사서 호텔 룸 냉장고에 보관해 놓는다. 아내의 준비성은 너무 철저해서 내가 어안이 벙벙할 정도.
우리는 Bolt앱으로 다시 택시 불러서 삥강 근처 찻집을 찾았다. 치앙마이 여행 온 어떤 블로거가 극찬한 곳이라서 제법 기대하고 가 본다. 가는 길은 평범한 시골길이다. 근처에 이르러서 골목골목을 요리조리 돌아서 가니 이 지역 외곽지 주민들의 삶의 속살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강변에 붙어있는 커피숍 이름은 ‘Hohm Lamoon Cafe’인데, 카페는 잘 안 보인다. 근처를 좀 돌다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택시 운전자도 그 카페가 호텔 안에 있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택시비가 98바트 나왔다. 2바트는 팁쪼로 운전자에게 돌려주었다.
바로 옆에 있는 강은 암만 봐도 정겨울 정도로 아담하다. 카페 중심으로 주변에 조성된 울창한 열대 수목과 관엽식물들이 멋있었다. 열대의 정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도심의 사원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나무도 있다. 코끼리 살갗 같은 거목 위에는 큰 벌이나 나비같이 작은 새들이 빨간 꽃의 꿀을 빠는지 아주 요란스레 재잘대고 있었다. 강에는 작은 배가 몇 안 돼 보이는 방문객을 태우고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가 앉은 카페의 좌석은 야외 테라스식으로 설치돼 있다. 멋지고 낭만적이다. 그 옆에는 숲속에 묻힌 듯 아늑한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호텔 2층 베란다에는 서양인 투숙객들이 난간에 다리를 걸치면서 쉬고 있다. 그들은 무언가 대화에 열중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풀장 앞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는 몇몇 투숙객들이 드러누워서 흘러가는 고요히 흘러가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한다. 삥강 물 위에 낙조가 어린다.
아주 아담한 강변 찻집이다. 테라스 찻집 자리에서 보는 삥강폭도 너무 넓지 않다. 위압적이지 않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듯하다. 아내가 마음에 무척 들어 해서 더욱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찻집에서는 젊은이 둘이서 열심히 서빙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라테와 카푸치노를 시켰다. 커피를 앞 놓고 여기까지 온 게 감회가 깊은 듯 여행과 지난날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일종의 여행에 대한 소감과 평가 나눔이다. 엊그제 아이와의 해프닝이 잘 봉합(縫合)된 것 같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이런 여행의 기회를 통해 가족 간 역동 및 이해의 정도를 높이는 성과도 있었다는 긍정적인 결과까지 창출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보아 놓았던 채소 가게 찾아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그 위치가 가늠이 안 된다. 아내가 그 가게의 채소가 크고 싱싱해서 무척 좋아 보였다면서 호기롭게 찾아보았지만 결국 놓친 셈이다. 이제 오는 길이다.
10분 이상 골목을 걸었다. 길에는 벌써 어둠사리가 내려앉으려고 하지만 서녘 하늘은 오히려 훤한 놀이 한창이다. 골목길 옆 집집마다 울타리에 노랗고 붉고 새하얀 열대 꽃들이 화려하다. 그 꽃 이름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느끼면 된다. 그 꽃들은 난데없이 이 한적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이 골목길 담벼락에서 피어올라 열대의 정열을 불태운다. 문득 오래 전 인도네시아 바탐 섬 골목길에 피어오른 불타는 듯한 꽃이 떠오른다. 골목길도 놀과 꽃그늘에 오히려 훤해진다. 날은 저물어 갈 길이 바쁜데 담벼락의 그 꽃들이 자꾸 내 눈길과 발길을 잡아 끈다.
늦어질 것 같아서 택시를 잡아도 전혀 잡히지 않는다. 너무 외곽지라서 그런 것 같다. 골목을 돌고 돌아 한참 걸어 나왔다. 대로변에 와서 이번엔 Grab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니 잘 잡아진다. 오늘 두 번 택시 잡는 미션을 모두 성공해서 다행이다. 성취감이 생긴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 야시장에 들렀다. '수키'라는 태국 음식을 맛봐야 한다고 해서 거의 한 시간 반을 기다려서 먹었다. 무난한 중국 음식 같은 맛이다. 밤길이라 어두워서 인도도 잘 구분이 안되는 울퉁불퉁한 길로 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걸음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나로서는 늘 조심이 된다. 이쪽이 어둡다보니 해자(垓字) 건너 왼쪽 올드시티가 조명으로 훤하다. 조명 아래 보아도 붉은 벽돌로 짠 성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마치 이가 빠진 것 같다.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필경 우리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을 터다. 아이가 이제 마음의 힘이 다소 충전된 듯하다. 다행이다. 아이가 우리 방에 와서 아내가 배달해 온 망고 주스 마시면서 한국에서 보던 드라마 내용이 궁금해서 다운받아 보려는데 인터넷 속도가 나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대신 아이가 일러준 대로 agoda 여행앱을 통해서 1.31. 도이수텝과 왓우몽 투어, 2.2. 도이안티논 국립공원 투어 예약을 마쳤다. 처음에는 도이안티논 투어는 1.30.자로 잘못 적용해서 취소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처리된다. 이런 기회가 앞으로 나 혼자 여행하는데 절대적으로 유용할 것 같다. 정말 멋진 여행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이제는 걱정이 안 된다. 남미든, 아프리카든, 어디든. 결국 위기(危機)가 기회(機會), 그래서 ‘위기회(危機會)’란 신조합성어가 성립되는가 보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의 동행 부재(不在)는 위기였지만 내가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다 보니 이런 기회는 자연스레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오늘을 잘 기록하여야 내 마음이 안정이 된다. 평생을 얼마나 나와 잘 버텨준, 내 일급 동행인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잘 보살펴야 한다. 마치 내 발바닥과 무릎을 잘 섬겨야 하는 것처럼. 그런데 마우스가 또 말썽이다. 뭐가 문제인지 암만 봐도 모르겠다. 그 대신 터치패드 하는 방식을 알아냈다. 터치패드로 전환해서 아주 어색하게 겨우 몇 자 적어보고 잤다.
여생이 다할 날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늘 “NOW N HERE”를 가슴에 새기자. 한꺼번에 욕심스레 모든 거, 너무 많은 걸 거머쥐고,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자. 그것이, 설령 내 고귀한 숨결이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혹여 초로(草露) 같이 말라버리고 바람 같이 날아가 버릴 그 어떤 생명소(生命素) 같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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