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산길로/‘하얀 별꽃’이라 이름 붙인 때죽나무 꽃잎이 길바닥에 떨어져서 허옇게 말라 있다

청솔고개 2020. 6. 4. 22:59

산길로

 

                                                                                            청솔고개

   산길로 접어든다. 초입의 대밭에는 이즈음에 볼거리가 하나 있다. 자고나면 날마다 두 서너 개씩 솟아나는 대순이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굵기가 아예 정해져 있다.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대순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떨어져 쌓인 댓잎 낙엽과 죽순 겉껍질 색깔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일단 눈에 띄기만 하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그 왕성한 성장의 기세가 강인한 생명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대순이 돋아 오르는 데에는 좀 비릿한 향이 퍼져 있다.

   그런데 오늘 이야깃거리 또 하나. 이 대밭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우리가 도착하자 인기척을 느끼고 마치 캥거루처럼 튀어 오르면서 산위로 달아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 산에서 고라니와의 만남은 세 번째다. 뿔이 없는 대신 송곳니가 길쭉하게 자라서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노루와의 차이다. 괜히 우리가 너무 일찍 와서 너의 단잠을 방해했는가 싶기도 하다. 올라가면서 '이놈'하고 다시 조우하는 행운을 기대해 봤지만 결국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게다.

   첫 오르막을 지난다. 걸음걸이에 약간 거북한 전조가 느껴진다. 바로 허리를 뒤로 한 번 젖히니 살짝 풀어진다. 역시 산을 오를 때는 윗몸을 꼿꼿이 세우고 허리와 엉덩이에 힘주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럴 때 스틱 길이를 뻗친 팔과 수평을 이루어야 한다. 주변 높낮이에 따라 스틱의 길이를 잘 조절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도 선선해서 오늘도 바위에서 한참 머물렀다. 여기서 동행과 같이 커피 한 잔 씩을 하는 게 최고의 낙이다. 훤히 내려다보이는 광활한 동녘들은 모내기가 다 끝났고 군데군데 외딴집이 있는 곳은 마치 크고 작은 섬처럼 보인다. 어떤 섬은 좀 크고 넓어서 나무가 숲을 이뤄 거무스름하게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자부룩한 소나무 숲이 푹신한 청록 방석들을 깔아놓은 것 같다. 그 포근한 결은 마치 남반구 어느 원시림의 이끼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푹 뛰어나가면 그냥 그 푹신한 방석에 안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그냥 앉아만 있어도 역병 창궐 같은 번잡한 세상사는 일은 다 잊어진다.

   대금을 즐기는 한 친구한테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한자락 불면 바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할 것 같다고. 나도 그도 둘 다 신선이 될 것만 같은 곳이다. 여기서는 어떤 곡이라도 좋다. 청아한 곡조가 이 산록으로 퍼져나가 뭇 생명들의 감성을 틀림없이 깨워나갈 것이다. 벌써 그런 말을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듣지 못 했다. 친구가  산행에는 두대바리라서 그렇다. 이제 대금이 안 되면 하모니카로도 좋을 것 같다.

   좀 있으니 햇살이 달아오른다. 아무리 선선한 이른 오전이라고 하지만 유월의 태양 아래다. 바위에서 내려오면서 갤쭉한 송화 망울을 만져보았다. 가루가 별로 안 만져진다. 바람에 풀풀 다 날아가 버렸는지. 오늘이 벌써 윤사월 치고도 한 가운데니까. 오른 쪽 숲속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아카시아 꽃이 아직 달려 있다. 바짝 마른 것도 있고 좀 시들시들한 것도 있다. 그 명도 길다.

   오늘은 산행은 이 산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거다.

   오솔길은 이른 아침이라 서늘하다. 간간히 엷은 햇살이 스며들어 얼룩덜룩 해 보이지만 거의다가 그늘이다. 그 그늘이 내 얼굴에도 지고, 발길 스쳐가는 오솔길에도 진다. 환한 달밤 길을 걷는 것 같아 아주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 된다.

   오솔길 옆으로는 떡갈나무, 오리나무, 진달래, 철쭉의 가지와 잎들이 한 치라도 더 길고 넓게 뻗으려고 남은 기운을 다 쏟아낸다. 생명들의 이런 다툼 때문에 내가 큰 덕을 본다.

   산의 주능선으로 뻗어난 임도(林道)도 이른 아침이라 그늘이다. 해가 한 발밖에 안 떠올라 보인다. 여기서부터 더욱 완만하고 평탄한 경사로로 따라 올라간다. 길에 백토를 깔아 놓아서 아주 편하다.

   드디어 왼쪽으로는 이런 저런 사연이 얽어져 있는 바위와 능선이 그대로 조망된다. 지나면서 아이가 이 산의 참 좋은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유월의 산하가 발아래 장대하게 펼쳐진다. 산의 전체 규모에 비해 여기 협곡은 아주 호쾌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능선에 붙어 있는 이름 있는 바위, 이름 모르는 바위, 이름 없는 바위가 마치 원석에 박혀있는 수정 같다. 화려한 듯, 아기자기 한 듯한 산세를 더해준다.

   드디어 정상. 다시 남녘을 조망한다. 나의 안태(安胎) 고향 마을, 외로이 자리잡은 '외말'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양 옆으로 벌어진 소나무 사이로 고향 마을을 담아 본다.

   낯익어 정다운 고개와 마을, 뒷뫼와 앞뫼, 숨뫼,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산도 찾아본다. 안태 고향집 터도 희미하게 보인다.

   그 시절이라면 이제부터 발가벗고 송사리 떼 쫓아가면서 멱 감을 때다. 스르르 미끄러져 땅버들 엉긴 뿌리 밑으로 숨던 ¹무자지를 겁 없이 내쫓던 내 유년의 맞도랑은 새로 난 길에 메워지고 시멘트 도랑에 가려져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뒤쪽으로 우리들의 유년에 최고의 놀이터였던 마을 정미소 자리가 있었는데 어딘지 잘 모르겠다.

   그 시절의 우리 마을 정미소 풍경이다. 그 최신 기계 문물을 접하고는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주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양철 판으로 인 지붕과 벽 틈으로 정미소 안이 언제나 훤히 들여다보인다. 기름때가 반질반질한 국방색 작업복의 정미소 주인은 시동 걸 때마다 몇 마력짜리라고 자랑질 한다. 대형 트럭만한 바퀴를 돌려 엔진 시동을 건다. 굉음이 인다. “탁탁캑캑”하고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반복된다. 그래서 정미소 엔진을 우리는 “탁타캐이”라 불렀다. 벨트에는 도정하면서 묻은 기름덩이가 떡칠해져 있다. 먼지도 뿌옇게 내려앉아 있다. 그 안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먼지 천지다. 엔진의 불완전 연소로 배기구에는 항상 검은 연기 푹푹 솟아나온다. 그 주변은 기름에 전 시커먼 도랑물이 항상 넘쳐흐른다. 주변은 기름 냄새가 등천을 한다.

   많은 어른들은 날마다 정미소에 모여서 상표도 안 붙어 있어 공업용인도 모르는 40도 넘는 독주에 취해 헤헤거리신다. 기분은 최고조다. 폭음을 일삼으면서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하고 이유도 없이 세상을 저주하곤 한다. 어른들끼리 사흘을 멀다하고 싸움질이시다. 쉰 살도 못 되어 눈이 멀어지는 분도 생겼다. 명줄이 끊어지시는 분이 속출한다. 내 친구들의 종조할아버지나 큰아버지뻘 되는 마을 사람들의 요절 부고는 이어졌었다. 마을의 그 또래 어른의 태반이 그렇게 일찍 가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어떤 지관은 우리 고향 마을의 터가 워낙 안 좋아서 그렇다고 진단을 내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참새처럼 재잘대며 정미소 주변을 서성이면서 유년의 세월을 마감하였다. 유년의 키를 키워나갔다. 이제 그 터도 어딘지 잘 모른다. 기억에 희미하다.

   이윽고 나는 깊은 고향의 상념에서 깨어난다. 잠시 ‘하염없이 물끄러미’ 최면에 들어 있다가 빠져 나온다. 발길을 돌려 내려온다.

   오늘은 녹음의 커튼이 층층이 드리워진 폭포에서 쉬었다. 등 넝쿨, 다래넝쿨이 사위를 가린다. 발아래는 고비 다발의 천지다. 여기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식생이다. 바로 판타지 영화의 배경이다. 갑자기 서늘하다. 그 동안 소(沼)에는 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피라미 떼도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잘 안 보인다.

   내려오는 길 곳곳에 내가 ‘하얀 별꽃’이라 이름 붙인 때죽나무 꽃잎이 길바닥에 떨어져서 허옇게 말라 있다. 향이 역하다고 하는데 난 괜찮다. 밤꽃향이 솔솔 날리기에 고개를 쳐들었더니 밤나무 끝에서 기세 좋게 삐죽삐죽 솟아나 있다. 밤꽃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질 것이다.

                                                                                            2020. 6. 3.

[주(注)]

두대바리 : '둔재(鈍才)'의 토박이 말

¹무자지 : '무자치'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