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유월의 단상 2/그림 속의 솟을대문 앞에서 문득 긴 머리 묶은 산처녀가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한 환영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지금 생생히 기억된다

청솔고개 2020. 6. 12. 18:22

유월의 단상 2

                                                                                             청솔고개

   사람이 나이를 좀 먹게 되면 이제 먹을 게 떨어져서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게 된다. 나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은 별로 없고 주로 한참 철 지난 거다. 남한테는 시시콜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유월이면 또 떠오르는 또 하나 생각, 이야기.

   유월 염천 아래 산딸기 따먹으면서 봉화 청량산 가던 길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그해 1월 초에 군에서 제대하고 3월 초에 복직, 근무 중이었다. 그 근무지가 청량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지였다.

   3월 2일, 새 학교에서 부임인사를 하는데, 갓 제대해서 머리카락이 체 자라지도 않은 나를 보고 ‘밤송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머리카락은 한창 다투어 나는 중인데 먼저 난 머리카락 하나라도 살려서 전체 두발의 부피를 풍성하게 하고 싶어서 그냥 두었더니 그 뾰족뾰족하고 까칠까칠한 모양이 흡사 밤송이를 연상하는 듯싶었다. 그런 나의 헤어스타일이 좀 우스꽝스러웠겠지. 나는 그 별명이 싫지는 않았다. 갓 제대한 군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돼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해도 6월에 접어 들었다. 학교는 농번기라 가정실습을 하였다. 일요일 포함해서 4일인가 정도 휴가를 얻은 셈이다. 그래도 각 부서별로 필수 근무 교사 1명은 출근해야 한대서 우리 부서는 제비뽑기해서 정했는데 운 좋게 나는 빠지게 되었다.

   나는 바로 이때다 싶었다. 그 동안 군에 매인 몸에서 비로소 여행의 자유를 제대로 맛볼 기회라 생각하고 3박 4일 도보여행 계획을 세웠다.

   첫날, 인근 청량산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수에게 청량산이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 달라고 했다. 내려서 길을 물으니 한 시간 이상은 걸어야 된다고 했다. 나는 내가 꿈꾸고 있는 게 도보여행이니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청량산 쪽으로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6월의 한낮이라 산골길도 좀 더웠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멀리 청량산인지도 모르는 산머리에 흰 구름에 걸려 있었다. 가는 길은 온통 6월의 녹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길가는 산딸기 천지였다. 옅은 주황색의 윤기가 나는 새콤달콤한 야생의 맛 산딸기. 그 20리길……. 이렇게 이름 짓고 싶다. 나는 군용 알루미늄수통에 간데족족 토실토실하며 말랑말랑한 그 열매를 채취하여 꼭꼭 채워 놓기 바빴다. 한 손으로는 따서 수통에 넣고, 한 손으로 따서 입에 넣고. 행운유수의 나그네 길은 꿈길 같았다. ‘이게 도보여행의 묘미로구나. 이게 자유 여행의 멋이로구나. 이게 홀로 떠나는 여유와 즐거움이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날 오후 늦게 청량산 자락에 도착했었다.

   저녁에 혼자서 산에서 야영을 했다. 순서는 이랬다. 어둡기 전에 먼저 당시 유행하던 A텐트를 친다. 물통으로 물을 길어서 쌀 씻어 코펠에 안쳐 놓는다. 내가 가장 아끼는 최신 석유 놋쇠버너를 알코올을 조금 부어 예열한다. 충분히 예열되었다고 판단되면 버너 기름통 옆 펌프 밸브를 반복해서 눌러서 압을 높인다. 그 압에 의해서 석유가 분무 상태로 돼 뿜어 오른다. 바늘구멍만한 노즐에는 파랗게 된, 압이 센, 완전연소에 가까운 불꽃이 솟아오른다. 그 위에 약간 분 쌀이 담겨진 코펠을 얹으면 밥 짓기 끝. 다음은 반찬 차례, 꽁치통조림을 뜯어서 시래기 넣고 찌개를 끓인다. 그야말로 나는 ‘홀로, 호젓한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숟가락이 미처 준비 안 돼 있었다. 바로 옆 재실에 가서 빌리기로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솟을대문 안으로 무작정 들어가 본다. 긴 머리 묶은 산처녀가 숟가락 빌려준다. 전해주고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말도 건네기 전에 수줍은 듯 황급히 몸을 숨긴다.

   한 순간이었지만 해거름에 산록에서의 그 잔영이 지금도 나의 뇌리에는 한 장의 수묵화처럼 남아 있다.

   밤이 깊어 간다. 내가 혼자 잠든 사이에 외계의 그 어떤 존재가 엄습해서 나만 남겨두고 애써 장만해서 참 아끼는 텐트니, 버너등 내 여행 장비를 홀랑 걷어 가면 난 그 다음 어떤 신세가 될까.  혼자 야영할 때마다 이런 불안감이 세게 엄습하곤 한다. 지금 여기서는 가끔 멀리 저편에서 우짖는 부엉이 소리가 깊은 밤 깊은 산골의 고요함을 더해 준다. 잠이 오지 않아 텐트 밖으로 나온다. 텐트 지붕에는 벌써 이슬이 촉촉하다. 좀 춥다. 다시 들어와 랜턴의 불을 끄고 잠을 청해 본다. 산골 뭇 중생들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 그냥 잠이 든다.

   아침이다. 아, 무사하다. 다 그대로다. 다만 텐트에는 이슬이 비 온 것처럼 축축하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나서 어제 빌린 숟가락 돌려주려고 재실 대문 안을 향해 인기척을 했다. 어제 그 산처녀가 나왔다. 내가 숟가락 빌려준 고마움에 대한 갚음으로 건빵 한 봉지를 건네준 기억만 아렴풋이 남아 있다.

   이제 여행 장비를 수습해서 다시 둘째 날 도보여행 출발을 할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퇴계 선생의 ‘청량산 육륙봉~’을 주유천하(周遊天下) 하듯이, 호기롭게 둘러보고서.

   한참 먼 뒷날에, 나는 어느 유명한 한국화가의 ‘청량산 **재실’ 이란 부제가 붙은 수묵화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그림 오른 쪽에는  내가 그날밤 그 아래 야영하면서 묵었던 아름드리 고목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왼쪽으로는 재실의 전경과 솟을 대문, 담 등이 고스란히 사진처럼 박혀져 있었다.

   그 순간, 그림 속의 솟을대문 앞에서 문득 긴 머리 묶은 산처녀가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한 환영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지금 생생히 기억된다.                                                                                                                                                                                                           2020.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