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3

나의 ‘인연’4/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더 이상 이어나갈 ‘인연’이 아니라고

나의 ‘인연’4/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청솔고개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4 -[나의 ‘인연’4]로 2020. 7. 13.의 [나의 ‘인연’3]에 이어진 글임 [1980.8.3. 일. 비.] 이날 기록의 뒤에 남겨져 있는 부분이 그 아이에 대한 기록으로서 정말 마지막이다. 나의 기록을 찾아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기록과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다. 고뇌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단재의 민족사관에도 기웃거려보고 금강경도 들여다보고, j와 함께 여행과 술에 빠져보기도 하고, k 친구에게 편지도 띄어 보았다. 그러나 그 후 내린 결론은 마찬가지다. [내 비록 모든 外部와의 접촉을 은연 중 회피하지만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내 비록 여행을 떠나려하지만 그 역시 현실도피가 ..

마음의 밭 2020.10.13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2-[나의 ‘인연’2]로 2020.5.17.의 [나의 ‘인연’1]에 이어진 글임/'그 가을과 겨울 그리고 바람 부는 봄을 보냈읍니다'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2 -[나의 ‘인연’2]로 2020.5.17.의 [나의 ‘인연’1]에 이어진 글임 청솔고개 이제 그 아이와 편지나 대화, 만남이 단절된 이유를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왜 더 이상 소통이 안 되었을까. 지금 찬찬히 생각해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거기에는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간절함 절실함이 있었다. 그 어떤 아픔, 외로움, 치미는 그리움의 실체는 또 무엇이었는가. 1980년도 7월 초, 아이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의 행간을 읽어보았다. 그 후 아이와의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 된, 단 한 번의 만남과 동시에 이루어진 결별에 대한 과정이 일기에 소상히 남아 있다. 다음은 그 때의 나의 복잡한 심중이 그려진 나의 일기 중 일부이다. 거의 횡설수설, 정서와 의식의 분열 현상 같다..

나의 ‘인연’1 /그 아이도 어느 하늘 아래서 지금 나처럼 세월의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나의 ‘인연’1 청솔고개 블로그에 올릴 나의 노래 ‘詩人의 노래’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40년도 더 전, 내게 한 아픔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애제자 k가 나한테 보낸 편지가 눈에 띄었다. 그 와 관련된 내 일기의 기록도 찾아보았다. 내가 국립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새내기 국어교사로 초임 발령을 받은 곳은 같은 도에 속한 곳이지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대학 소재지에서는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내 고향에서는 직통 교통편이 없는 곳이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무척 서툴고 외로웠다. 더군다나 교사 발령 2년 째, 난 군 입대 영장을 받고 6월 말 입대할 예정이었다. 물론 입대를 앞두고 담임은 맡지 않았다. 그 때 내가 교과를 담당했던 고 1생들에게는 난 열혈 청년교사였다. 나는 세련된 것이란 전혀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