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2편
청솔고개
43년 전, 나의 20대 후반에 이 가을날들을 지나면서 난 무엇을 희구하고 생각하며 느꼈을까. 무엇을 하면서 그 많은 날들을 보냈을까. 불현듯 그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맘속으로 추억하던 끝에 그 때 기록을 뒤져보았다.
그 때, 입대한 지 만 1년 남짓 되던 시기였다. 중동부전선 진중에서의 생활은 고독과 갈망의 나날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진중 기록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치열하였었는데, 보안 규정상 전역하면서 마지막 날 저녁에 부대 배출대 페치카에 태워버렸다. 내 딴에는 전역에 지장이 있을까봐 선제 조치한 것이었다. 나의 3년 동안의 그 소중한 기록의 폐기와 상실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쓰라림이었다. 아직도 그 상실감이 남아 있다. 그래도 그때 어쩌다 나의 심중을 단편적으로 표출한 몇 편의 노래가 남아있어서 참 반가웠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부대 창고 구석에서 랜턴 불빛을 가려가면서 밤새워 썼던 나의 생애 깁기, 편지, 노래, 소설 구상 등이었다. 전선의 고지, 훈련장, 막사, 초소에서, 참 많은 걸 생각하고 느끼고 또 그것을 미친 듯이 기록했었다. 그때의 상념과 정념의 진수는 마음 터놓고 몇 장이고 숱하게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다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내는 편지는 대체로 아주 두툼했었다. 그 서신 기록을 지금 되살릴 수 없음이 한스럽다.
다음은 그 중 살아남은 노래 몇 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내 노래는 감정 과잉이었다. 물론 이건 나를 버티기 위한 카타리시스 행위였지만 혹 남이 대했을 때는 나의 그러한 과잉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
사랑은
청솔고개
사랑은 어디메서
메밀꽃내음 싸한 언덕 너머
구천보다 깊은 너의 가슴
혹은 이슬 맺힌 달맞이꽃 품
아
우리는 모두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사랑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을까
그대
깊은 심연엔 유황불 그 뜨거운 사랑의
혈맥이 흐르고
운명의 슬픈 울음이 터져 나오고
울음은
갈바람에 실려
노도에 실려
내게 사랑은 오는가
별에서
그 깜빡이는 곳에서
사랑은
긴 밤 호올로 지새운 이의
센 머리카락에서 나풀거리며 흩날림에서
오는가
갈바람에 날리며
재잘거리는 들새는
고독을 몰라
[1977. 9. 7. 오후 진중 호변에서]
기도
청솔고개
생의 가장 절박한
이 시간
신이여 당신의 옷자락에 매달려
하소하고 싶군요
술 취해 더욱 또렷한 인식
묵도하고 싶은 이 마음
신이여 헤아려 주소서
한없이
위로 받고 싶은 이 심사
신이여
한생 살아 마치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한가요
이 풍진 세상
만나서
쓰레기더미처럼
실려 가는 가엾은 인초
밤새워 노래 부르고
쓰고 또 써도 恨은 남아
[1977년 가을 진중에서]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