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편지/길을 가다가도 눈을 감다가도

청솔고개 2020. 9. 25. 17:31

편지

                                           청솔고개

 

길을 가다가도 눈을 감다가도

혹은 외로운 울음을 삼키기 전에

나는 다만 너를 생각한다

 

나는 너에게 천사와 같이 흰 옷 입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도

너의 영혼에게 버림받기 싫은 운명으로

다정스런 길벗이 되고 싶다

 

나의 이 지치고 어설픈 모습에 맞는

너만의 소중한 자태를 지켜 주렴

나의 이 눈물겨운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한 떨기 마른 들꽃이라도 되어 주려무나

 

우리는 서로 잊어지는 얼굴이 되기 싫은 까닭에

너는 검게 맺힌 먹물이 바래도록

밤마다 나의 모습을 그리도 목마르게

그리곤 하나

 

오늘도 난 아득히 멀어져가는 하늘과 땅 사이를

바라보면서

점점이 얼룩진 너의 얼굴을 읽어 본다

밤새 마른 통곡을 하얗게 바랜 너의 욕망스러운

볼에서 아직도 붉게 맺힌 살내 나는 숨결을 느끼고는

내 마음의 심연에서는

소용돌이치는 아이처럼

철없는 이 서러운 고통을 이길 수 없다

 

이토록 서로의 얼굴을

마음으로 밤마다 새워가며 주고받아도

차지 않은 까닭은

나는 너에게서 영원히 잊어지고 싶지 않은

욕념에서인가

 

길을 가다가도 눈을 감다가도

혹은 외로운 울음 삼키기 전에도

나는 다만 너를 생각했다

[1977. 9.27. 추석 새벽녘에 진중 초소에서 노래함]

                                                                    2020.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