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청솔고개
길을 가다가도 눈을 감다가도
혹은 외로운 울음을 삼키기 전에
나는 다만 너를 생각한다
나는 너에게 천사와 같이 흰 옷 입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도
너의 영혼에게 버림받기 싫은 운명으로
다정스런 길벗이 되고 싶다
나의 이 지치고 어설픈 모습에 맞는
너만의 소중한 자태를 지켜 주렴
나의 이 눈물겨운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한 떨기 마른 들꽃이라도 되어 주려무나
우리는 서로 잊어지는 얼굴이 되기 싫은 까닭에
너는 검게 맺힌 먹물이 바래도록
밤마다 나의 모습을 그리도 목마르게
그리곤 하나
오늘도 난 아득히 멀어져가는 하늘과 땅 사이를
바라보면서
점점이 얼룩진 너의 얼굴을 읽어 본다
밤새 마른 통곡을 하얗게 바랜 너의 욕망스러운
볼에서 아직도 붉게 맺힌 살내 나는 숨결을 느끼고는
내 마음의 심연에서는
소용돌이치는 아이처럼
철없는 이 서러운 고통을 이길 수 없다
이토록 서로의 얼굴을
마음으로 밤마다 새워가며 주고받아도
차지 않은 까닭은
나는 너에게서 영원히 잊어지고 싶지 않은
욕념에서인가
길을 가다가도 눈을 감다가도
혹은 외로운 울음 삼키기 전에도
나는 다만 너를 생각했다
[1977. 9.27. 추석 새벽녘에 진중 초소에서 노래함]
2020.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