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딸에게/장대 메고 밧줄 들고 뒷동산에달 따러 가자

청솔고개 2020. 9. 27. 10:07

딸에게

                                   청솔고개

오늘밤에는

우리의 오두막에도 새도록 큰비가 내리고

이런 여름밤에는

아비는 어린 시절 어른들이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떠오른단다

동네어귀 당수나무 아래에서

용이 되려고 하다가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이무기가 된 이야기며

그 이무기는 끝내 하늘로 날지 못하고 땅 끝 어디에서 땅 불을 일으키며

온통 들녘을 불태워 온다는 무서운 이야기며

밤이 새도록 골목 어귀를 돌아다니며 반딧불 신호삼아 하모니카를 불어대던

악동들의 발장단 맞춰 떠돌아다니던 모습하며

그 밤 나는 삼베 적삼이 흥건히 젖도록 못된 꿈만 꾸었단다

 

허나

지금 곤히 잠든 너에게는 다만 옥황상제를 떠나서 길 잃은 선녀와 길동무 되어 얘기하고

숲 속 황금의 성에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왕자님을 그리워하는 꿈만 꾸려무나

딸아, 이것만 네게 소중할 뿐

 

밤새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고 빗물이 천정을 쓰며 방에 흥건히

고인다 해도 울지 마라 이 아비가 너를 꼬옥 안아 주마

새록새록 잠만 자렴

기차가 들녘을 지나가더라도 놀라지 말아라 잠깨지 말아라

밤하늘에 아기별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놀라지 마려무나

딸아, 이따금처럼 니 아비 어미가 큰소리치며 얘기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놀란 토끼눈을 하지 말아라

 

아부지 왜 그러느냐고 묻지를 말아라

네가 크면 알 날이 있으리니

그땐 너의 다 자란 마음에도

어른들은 다 그런다더라고

니 젖은 눈망울 도톰한 입술 똥똥한 뽈을 어이할거나

 

이 풍진 세상에

딸아, 울지를 마라

이러다가도 언젠가는 새벽은 오리니 먼동은 트리니

그때는

옥수수 밭을 지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이슬 맞으며 이슬 맞으며

우리 함께 선녀 만나러 가자

장대 메고 밧줄 들고 뒷동산에

달 따러 가자

 

딸아, 해거름이면

아비가 어린 시절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쌍무지개도 있으리니

어영차 어영차

밧줄을 동여매고

서산 언덕에 오르자꾸나

[1987. 9. 27. 새벽, 두돌맞이 딸에게 아비가]

                                                     2020.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