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몽상, 언뜻 스쳐가던 이름 모를 얼굴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청솔고개
여름엔 헤세가, 겨울엔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의 정신 여행의 동반자…….
내 청년 시절, 나는 정말 고적한 삶을 영위했었다.
이런 데에는 내 성격도 그랬고, 가슴앓이 병으로 인한 나의 생활 반경의 편협함도,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도 일조한 셈이다. 유별나게 대학 1,2년 동안에 더 심했던 것 같다. 겨울방학이든 여름방학이든 고향 집에서 칩거하면서 날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느긋한 마음으로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 먹고 오전은 주로 소설, 철학 류 등을 읽고 오후 되면 그냥 근처 공원으로 유적지로 산책 가는 게 일과처럼 되었었다.
여름에는 그때 막 발견한 헤르만 헤세를 찾아서 강둑과 풀밭을 헤매곤 했었다. 헤세의 강물, 헤세의 바람 소리, 헤세의 초원, 헤세의 구름, 아아! 헤세의 집시 여인, 그 꽃과 같은 향기. 어디에 있을까. 이 모든 게. 정말 찾고 싶었다.
헤세의 낚시는 또 어떠했는가. 그의 인물이 낚시 가서 바람과 꽃과 구름과 하늘을 벗 삼아 사랑, 고독, 절망, 꿈, 이 세계를 노래할 땐 삶과 우주의 진리가 샘 쏟듯 흘러나옴을 느꼈었다. 그래서 나도 그처럼 대나무 낚시를 준비해서 강으로 호수로 전전했었지. 또한 헤세의 시와 산문집, 시집, 단편집을 끼고 언덕 위 초원을 이부자리 삼아 풀 더미를 베개 삼아 흐르는 강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흘러가는 구름덩이를 내 꿈의 날갯짓삼아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러왔던가.
헤세의 노래, 헤세의 숨소리가 곧 들릴 것만도 같았었다. 헤세의 모든 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헤세로 인하여 나는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문장마저 무척 시적이었다. 그로 인하여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과 느낌과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세상을 시적으로 보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나의 세계관을 바꾸도록 하였다.
“말소리 한 자락, 발걸음 하나, 미소 한 떨기, 웃음 한 울림이 모두 그의 아름다운 시적 영감에 의해서 재해석 된다.”고 누구한테나, 특히 강의 시간에 나의 아이들한테 틈만 나면 역설했었다.
겨울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내 동무였다. 고독한 동반자였다. 나의 그림자였다. 그를 따라 나도 몽상가가 되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내 이상이었고 내 로망이었었다. ‘백야’에 나오는 사람들과 한 장면은 참 가난해서 창백하고 심하게 가슴앓이 하는 남자 대학생과 눈 먼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난한 어린 처녀로 이제는 어렴풋이 기억된다. 두 사람의 길고도 긴 대화는 거의 4,5쪽에 이어졌었지. 그 순수한 영혼들의 대화에 나는 숨을 멈추곤 했었지.
그래서 나도 그런 순수함을 밤마다 꿈꿨었다. 그 처녀들의 이름은 대체로 ‘~샤’로 끝났다. 나도 언젠가는 운명적으로 이런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와 조우할 것을 동경하였었지. 나도 그래서 밤이 되어 어둠이 나리면 긴 외투 자락을 끌면서 강둑과 다리 위 난간을 어슬렁거렸었지. 그런 운명을 만날 수 있으려니 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꿈꾸면서. 나는 그때 얼마나 깊숙이 몽환의 세계에 빠져들었던지. 밤거리 창문에 비치는 내 창백하고 얄팍한 얼굴의 실루엣이나 그림자는 영락없는 진눈개비는 내리는 러시아 백야의 페테르부르크 겨울 강가, 음울한 그 청년의 모습을 닮았다고 착각했었지. 그래서 난 시내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황했었지. 어디 가서 그처럼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처녀의 눈망울이, 선하디 선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갈구했었지. 그런데 그 후 결코 그런 처녀는 만날 수 없었다. 이 일을 어떡하랴. 그래서 난 그런 처녀를 내 마음 속에서 창조하리라고 생각하면서 혼돈과 불안의 20대 후반을 지냈었지. 그러면서 마주치는 얼굴마다 그런 이미지를 덧씌워 보았지.
겨울 오후는 낮이 짧아서 산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나는 언덕을 오른다. 아까부터 저 멀리 혼자 갈색의 외투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여인이 걷고 있었다. 다가가서 어설픈 인연이라도 만들어 볼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고 그 여인에게 다가간다. 그 여인도 모르고 이리로 온다. 우리는 만난다. 짐짓 놀란다. 사슴 같은 큰 눈망울을 굴리면서 엷은 미소를 띤다. 어쩐지 그 여인은 힘든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다. 그 여인은 동그란 얼굴에 약간 널찍한 이마를 하고 있다. 이 겨울날 오후 여기 바람 부는 언덕에서 그대와 나의 만남은 틀림없는 운명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은 늘 내 마음 속에서 소설의 스토리로만, 한 장면으로만 남겨지고 실행되지는 못했다. 멀리 바라보이는 그 여인은 틀림없이 갈래머리거나 단발머리고 엷은 미소를 띤 창백한 표정이며, 심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대학 2년 때 아주 친한 한 친구와 같이 동해안 아주 북쪽 바닷가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해 10월 유신 선포 후 학교는 휴교하고 멍한 상태에서 가장 친해서 정서가 맞는 한 친구와의 동행이었다. 늦가을이었다. 텐트를 빌려서 설악산까지 가지는 당찬 계획까지 세웠었다. 그런데 우리의 여정은 결국 경비 부족, 기후 불순 등의 이유로 강릉 경포대 역사에서 하룻밤 자고 난 후 반환점으로 삼아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전날 오후, 강릉 해안이었다.
곧 비가 올 듯 흐린 바닷가 가게에 기념품을 파는 처녀가 있었다. 쓸쓸한 바닷가를 찾은 사람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았다. 처녀가 처음 봐도 한 눈에 아리따운 모습이었다. 갑자기 내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입을 뗀 것은 겨우 물건 값 물어 보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낯선 사람, 특히 여인하고 대화하는 게 서툴렀었다. 부드러운 낯빛에 엷은 미소, 좀 인상적적으로 남은 억양의 강릉 말씨에 그만 내 가슴은 떨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연히 흘러 보내 버리다니 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은 체로.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에 나오는 금강산 장안사 여사(旅舍)에 등장하는 처녀를 두고 작가는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나타샤’이미지를 부여한 게 생각난다. 여행 중 스쳐가는 많은 여인들은 이렇게 또 다른 이미지나 의미로 다가오는 거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강릉에서 첫차를 잡기 위해서 경포대에서 강릉까지 철길을 그냥 걸어갔던 참담한 기억이 새롭다. 늦가을 찬 기운과 새벽안개는 우리를 더욱 괴롭혔다.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 강릉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벌써 우리가 탈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벌써 떠나가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지마자 그냥 놓쳐 버린 거다. 엉겁결에 우리는 그 다음 석탄과 목재를 실은 화물차에 딸린 객차에 올랐었다. 객차는 고작 2량이었다.
맙소사, 어쩌나. 이 열차, 동해안 거치면서 많은 역은 다 정차해서 화물을 내리고 싣고 한다. 심지어 2시간 정차하는 역도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내려서 강원도 동해안과 경북 내륙을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특별한 여행길을 체험이었다. 목적지까지 오는데 거의 1박 2일 넘게 걸렸다. 그 험난난 여정이 지금은 값진 젊은 날의 체험으로 각인돼 있다. 지금도 첫추위로 벌벌 떨던 그기억이 생생하다.
오르내리면서 순간 언뜻 스친 몇몇 얼굴들의 영상과 당시 힘들 게 삶을 꾸려가는 민초들의 군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헤세와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토록 내 정신과 인생사, 문학적 편력의 양대 산맥으로 남아 있다.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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