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가을날의 동화 5, 회의와 고뇌/이제 영원한 침묵(沈默)을 희구(希求)하고 있다

청솔고개 2020. 9. 17. 11:26

가을날의 동화 5, 회의와 고뇌

                                   청솔고개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난날의 감성이나 감동이 자꾸 사라진다.

이 때문에 자꾸 불행해지는 느낌이 든다.

치열한 삶의 의미가 희미해져 간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는 다르다.

좋은 마음이 다 상실되어 가는 것이다.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회의와 고뇌가 없는 삶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멸실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특히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여행이나 가족이나 일상에 대해서 지금까지 지녀왔던 감흥이 자꾸 줄어들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지난 날 내 마음의 행로를 다시 들여다본다.

 

다음은 내 젊은 시절 가을 날 한 때, 그 어지러운 마음에 대하여, 아주 치열하고 어찌보면 자의식 과잉 기록이다.

들여다보기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가 가여워진다. 그래도 그때로 한번 돌아가고 싶다. 그리워진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나에게서 점차 사라져 가는 삶의 근원적인 회의와 고뇌, 결별의 슬픔, 사라져가는 것, 계절의 바뀜에 대한 그리움 같은 순수 감성, 감동의 유지를 갈망해 본다.

이 계절에는 끊임없이.

 

1979. 9. 8. 토. 흐림.

잿빛으로 연하게 흐린 초가을, 토요일 오후다.

나름대로 고통스럽고 힘겹게, 따라서 처절하게 생활하면서도 역시 허망함을 숨길 수 없다.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동공(洞空)이 있다.

이를 떨칠 수 없음은?

청춘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지난여름은 그 계절 열기와 함께 내면의 열기로 심하게 앓은 것 같다.

 

일상의 그 본질과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이 너무나 허망해서 버린 자식처럼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려는가!

 

지금 가을의 문턱.

심한 열병을 앓은 환자처럼 창백해진 얼굴을 거울에서 들여다본다.

부쩍 초췌해진 옆모습을 비춰본다…….

 

지금, 여기, 깊고 어두운 동굴 안에, 내 의식이 가두어졌다. 선방(禪房)에 존재하고 있다.

전설처럼 되어버린 사랑의 스토리를 더듬어 본다.

한밤에 기왓장을 두드리는 낙시(落柿)의 둔탁한 소리로 내 실상과 존재를 확인해 본다.

 

비극이다.

엄청난 비극이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육신에 대한 학대.

절망과 불안을 동반한다.

 

목이 아프고 몸이 뜨겁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내가 추구하려는 그 음울하고 외로운 일련의 작업은 이 가을에는 생명을 접어두고라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래야만 내 가난한 영혼이 울지 않고 위로 받는다.

 

흔하고 값싼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말은 사막에서처럼 목마른 갈증을 채울 수 없는 가난한 어릿광대의 덧없는 변명이다.

 

가난해서 더 초라한 사랑이라도 해 보아야 할까 보냐.

이 가을과 겨울에는. 육체에의 유혹을 과감히 이겨내야 한다.

욕망의 늪에서는 모든 것은 영원한 도로(徒勞)이다.

이제는 끝맺음을 할 때다.

한 대상에의 환상(幻像)에 몰입(沒入)하던가.

그래서 영원을 추구하던가.

아니면, 그 미망(迷妄)으로부터 벗어나든가.

모든 것을 결별(訣別)하든가.

아니면 해후(邂逅)하여 새로 시작하든가.

미완(未完)의 어정쩡한 상태에서 벗어나자.

 

갓 열아홉 아이에게 갖는 소박한 슬픔과 그 아아기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숱한 절망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불타는 듯한 고뇌에 지쳐버린 아이의 절규를 외면할 만한 용기는 없다.

대(對) 사회, 친구, 신앙(信仰)......

모든 것에 부대끼는 삶의 현장에서 홀로 맞닥뜨린 한 아이의 괴로움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 아이는 이제 영원한 침묵(沈默)을 희구(希求)하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것마저도 후회(後悔)한다는 엄청난 얘기에 내가 무엇으로 응답해야 하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무겁고 힘겨운 도로(徒勞)를.

 

2020.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