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1, 1980. 7. 3. 목. 흐림./뜸부기가, 흰 달빛이 어리는 이 밤을 울어대는 들판으로 갈까나

청솔고개 2020. 7. 10. 00:29

나의 40년 전 그날 기록, 1980. 7. 3. 목. 흐림.

 

 

                                                                                                 청솔고개

   올해 2020년 7월 들어 장마철은 유난히 서늘하다. 흐린 날씨가 이어지니 문득, 아득한 40년 전 7월이 떠오른다. 그해 여름도 너무 서늘해서 통일벼 냉해 피해까지 있었던 게 생각난다. 그해 냉해로 7,700억 원 어치 쌀을 수입했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올해도 냉해가 심하면 안 되는데, 농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때 나의 기록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 관점에서 당시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당시 나는 나의 이십대 마지막 해를 벌써 절반을 써버린 상태. 7월이니 나머지 절반에 접어든 시점이다. ‘나의 이십대는 이렇게 그냥 흘러가버리나’ 내 마음 속에는 이런 허망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른 바 나만의 세기말 허무주의 같은 것에 감염된 듯하였다. 나만의 세기말 병을 앓고 있었다. 유난히 나의 자의식 과잉, 절망감 팽배로 이어진 것이다.

   한 해 전 1979년 1월 초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표류하듯 하다가 이태 째, 정박한 곳이 바로 보광사(普光寺)라는 어떤 자그마한 절 문간 방. 난 스스로 그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을 선방(禪房)이라 불렀다. 정말 마음의 평정을 찾고 싶어 하는 나의 열망이 그 선방이라는 이름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방문 앞에는 벌써부터 늙어가는 감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었는데 올해와 비슷한 저온다습의 유별난 그해 여름 날씨 때문인지 지붕위로 풋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똑또르르, 똑또그르르” 그 소리는 누가 나의 방문을 노크하는 것 같은 정겨운 소리였다. 빗소리, 바람소리, 풋감 떨어지는 소리, 게다가 맞은편 대웅전의 풍경과 독경 소리는 이미 앓고 있었던 과잉 의식 병증을 조금은 치유해 주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린 감 떨어지는 소리를 ‘낙시(落柿)의 둔성(鈍聲)’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생각난다.

 

   80. 7.3. 목. 흐림.

   정말 거짓말 같이 시원한 날씨다. 7월이면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운명처럼 따라붙는 절망의식……. 주저앉고 싶은 순간순간들. 강해지자, 자신에게.

   마침 월터 페이터의 산문을 강의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니. 오후에 모처럼 일찍 수업을 파하고 반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유대 강화?콜라 한 병씩을 마시고…….

   좀 일찍 와서 오랜만에 방청소를 하고……. 개운하고 상쾌하다.

   혼자 하는 시간을 갖자. 독서를 하고 의미를 추구하자. 독서를 하고 의미를 추구하자.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초조해 했나. 이렇게 성급했나. 超然하자, 外界와의 모든 것에. 죽음 역시 자연의 한 이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혼자 있는 시간이라 평온하다.

   뒷산에 부엉이 소리가 들린다.

   무척 음험하고 점잖은 느낌이 든다.

   창을 열면 언제나 나를 반기는 늙은 감나무의 온후한 등걸. 이제 좀 깔끔하고 정갈하게 살아가자. 모시적삼처럼……. 고독하게 살아가자. 의미 없는 만남에서 힘겨운 위로를 구하지 말고 내적으로 좀 더 다독거려, 추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나의 감정을 좀 정리해봐야겠다. 아이에게 향하는 심경은 일종의 미지의 세계를 동경함이랄까. 이제는 편지가 도착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받아 볼 수나 있으려는지. 보고 싶다.

   이즈음 멀리 떠나 있는 존재들은 왜 이리 나를 괴롭히는지.

   드보르작의 ‘꿈속의 고향’ 테마 멜로디가 연약하게 들린다.

   멀리 뒷산에서 또 부엉이가 울어대더니만 개구리가 목청을 돋우나…….

   뜸부기가, 흰 달빛이 어리는 이 밤을 울어대는 들판으로 갈까나?

   허나 난 마음에 든다, 이 선방(禪房)이.

   이제 좀 정갈하고 순수해지자. 끝없이, 끝없이(후략)

                                                                                                2020.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