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빗속을 둘이서’/연민의 정을 느끼고 측은지심을 품는 게 사는 길이다

청솔고개 2020. 9. 16. 23:08

‘빗속을 둘이서’

                                                  청솔고개

“너의 맘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 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 하렴

정녕 말을 못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다면 오고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주렴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출처, '금과 은'의 노래  '빗속을 둘이서' 가사에서]

 

가을비가 이어서 내리니 무연히 쓸쓸해진다.

‘너와 내가 손잡고’ ‘다정스런 둘이’ 함께 ‘저 돌담 끝’까지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정감이 절절하게 울려펴진다.

저 돌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딱히 뭐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가보는 것이리다.

그렇다.

삶이란 이처럼 쓸쓸할 때, 특히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그냥 둘이서 말없이 같이 가보는 것이다.

가는 도중 주고받는 다정스런 눈빛 하나면 족하다.

고개 들어 살며시 무슨 이야기라도 하면 더욱 행복하고 마음 포근해질 것이다.

그런데 정녕 말이 필요 없고 마음 깊이 새긴 눈빛 하나면 되는 것이다.

 

이 노래 가사에서 빗속을 동행하는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가을비와 바람에 힘없는 잎들이 속절없이 진다.

그 잎들은 꺼칠하게 마르고 구겨져서 구석에 모여 있다.

오들오들 떠는 것 같다. 얼굴이 말라서 퍼석퍼석하다.

바람이 휙 불어드니 풀풀 날려 흩어진다.

그 비바람 길을 나도 홀로 멀리 떠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또 어느 임과 함께 ‘빗속을 둘이서’ 간다.

그 어느 임은 나의 파트너, 나의 그림자, 나의 마음, 나의 영혼, 곧 나의 동행이리라.

나는 빗속을 둘이서 가다가 수시로 나의 동행의 안부를 묻는다.

나의 동행과 대화하고 얼굴 표정도 살핀다.

 

이건 바로

내 마음과 기분 살피기, 다스리기다.

그 ‘기분과 마음’이란 이름을 가진 존재는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이다.

큰 나 속에 모두 포함 된 한 실체다.

그 큰 내가 혼자 가는 길은 절대 순수와 무한대 고독이다.

내게 ‘삼불화두’이란 이름을 가진 그런 친구가 없으면

결국은 더 힘든 다른 친구가 그 자리 차지할 것이다.

더 어려운 친구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친구가 채워져서 그와 동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친구와 부대끼며 사귀어 익숙해지려면 나는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그 친구와도 잘 사귀지 못하면 결국 그 다음 친구, 제 3의 친구가 등장할 것이다.

그 다음 제 4, 그 다음, 그 다음……. 5, 6의 친구 등등.

 

빗속의 둘은 결국 하나, 더 큰 나다.

더 큰 나에 들어있는 다른 작은 나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결코 다중인격은 아니지만 혹 다중인격이라고 손짓해도 좋다.

또 다른 나에게 대화하고

그를 보살펴주고, 연민의 정을 느끼고 측은지심을 품는 게 사는 길이다.

 

이게 마음에 대한 나의 한 생각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큰 나’를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 위로하고 격려해 주면

나와 또 다른 나는 상생하여 큰 나의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2020.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