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9일(로마,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성당,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 진실의 입, 콜로세움)
청솔고개
새벽에 좀 일찍 잠을 깨서 호텔 밖을 내다보았다. 소나무 같은 것이 동글동글하게 전지한 모습이 이색적이다.
09:00에 호텔을 출발했다. 세계 가톨릭의 본산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간다. 꿈에도 그리던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에 입성. 일요일이라서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가이드는 밖에 설치된 축소 모형과 도표, 전시 사전 등을 활용해서 사전에 유물 전반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였다.
여기는 15 세기 이래 교황들이 수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은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세웠으며 교황 피우스 6세 때 확장되었다. 이곳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교황의 고대 조각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교황 피우스 7세가 세우고 조각가 안토니오 카바노가 설계한 키아리몬티 조각관은 고대 조각품의 전시관이다. 이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브라만테가 디자인한 미술관 안에 있는 전시관과 신증축관(브라치오 누오보), 뛰어난 고대 비명(碑銘)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관(라피데리아) 등이다.
교황이 직접 미사를 드리는 곳으로, 세계 가톨릭의 본산으로 주목받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은 세기적인 예술품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소장으로 더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상 조각도 있다. 나는 너무 웅장하고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에 도취되어 간다. 목을 쳐들고 벽과 천정의 벽화를 감상하니까 나중엔 어지럽고 목이 뻣뻣해 진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가 묻혀있는 이곳에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당을 지었다고. 그 후 1506년 교황 율리시스2세의 명에 의해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구상, 그 제자들에 의해 1626년에 개축 완공되었다. 무려 120년간을 걸친 대 역사였다.
성당내부에 6만 명을 수용한다고 했다. 광장은 좌우 폭이 240미터로 30만을 수용한다고 하니 그 웅장한 규모에 벌써 압도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진실의 입, 콜로세움 등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지체되어 날이 너무 어두워서 콜로세움은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밖에서 어둠 속에서 조명으로 빛나는 외양만 본다는 게 매우 아쉬웠다.
오늘 점심은 정통 이태리식으로 즐기고 저녁에는 한식당(韓食堂) ‘비원(秘苑)’에서 객고(客苦)를 달랬다. 저녁에는 호텔로비와 근처 상점에서 담임 학급 꼬마 숙녀[?]들에게 줄 엽서를 골랐다. 아내에게 장거리 전화도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통했다. 호텔에서 모처럼 룸메이트 네 사람은 맥주 한 잔 하면서 진솔한 대화로 객고를 달랬다.
아래 [ ]안이 괴테의 기록이다.
[1787년 1월 2일
글이나 말로 전해지는 내용이 아무리 믿을 만하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은 극소수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어떤 실체의 고유한 특성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신적인 문제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단 어떤 대상을 명확히 봐두면 그것에 관해 책으로 읽든지 말로 듣든지 간에 모두 즐겁다. 전달받은 내용이 생생한 인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며 이제 우리는 생각도 하고 판단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월 6일
나의 집필방식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그 작품을 조용히 써내려간 다음 한 줄 한 줄, 한 단락 한 단락 규칙적인 운율을 밟게 했다.
1월 25일
나는 아직도 그 지방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고대 민족의 정착지로서 로마보다 더 위치가 나빴던 곳은 없었다고 확신한다. 로마인들은 결국 모든 토지를 남김없이 사용해버린 뒤에 다시 생존과 삶의 향유를 위해 그들이 파괴한 여러 도시의 광장으로 별장 지를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1월 28일
우리가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 준비한 것은 많지 않다. 개념은 정확하고 뛰어나게 설정되었지만 개별적인 것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여러 해에 걸쳐서 눈을 각별하게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워야 한다. 망설이며 주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2월 13일
많은 것들이 내 주위에 수집되었지만 쓸데없거나 공연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이곳에는 그렇게 허튼 것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교훈적이고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담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커지면서 계속 불어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월 16일
나는 지금 큰방의 벽난로 곁에 앉아 있다. 이번에는 잘 타들어가는 불길의 열기가 새 페이지를 쓰기 시작해야겠다는 새로운 용기를 북돋워준다. 자신의 가장 새로운 생각을 그렇게 멀리까지 보낼 수 있고 자신의 바로 주변 상황을 말로써 그곳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2월 17일
우리는 올바른 것을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잡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것을 잡고 있다.
예술가들은 기꺼이 내게 가르침을 준다. 파악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악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뭔가를 재빨리 파악한다는 것은 정신의 특성이지만 뭔가를 올바르게 행하는 데에는 일생을 걸친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추어는 자신이 노력한 바가 미약하다 할지라도 낙담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대단히 걸출한 인간 존재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방해를 받지는 않는다. ] [1997.11.30(일, 제9일/12일)]
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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