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7일(베로나,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청솔고개
오늘은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간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설레는 마음으로 베네치아로 향발. 도중 베로나라는 유적 도시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중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매우 많은 곳으로 손꼽힌다. 가장 유명한 원형투기장은 지금 오페라 극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둘러보는 데1시간 이상 소요되어서 일정상 답사는 하지 못하고 가이드의 안내로만 대신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행히 베로나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여정으로 잡혀 있다. 아래 [ ] 안 내용이 1786년 9월 14일부터 9월 18일까지 4일간 머물렀던 기록이다.
[“9.14 . 1시경에 이곳 베로나에 도착하여 먼저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것으로써 내 일기의 두 번째 장을 마무리 짓고 철을 한 다음에 저녁 무렵에는 즐거운 기분으로 원형 극장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56쪽 베로나에서)”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은 포르타 스투파 혹은 델 팔리오라는 문인데, 이 문은 항상 닫혀 있다.(64쪽 9.16 베로나에서)”
“여섯 개의 높다란 이오니아 식 기둥이 있는 극장(팔라노모니코 극장) 건물의 현관은 아주 인상적이다.(65쪽 9.16 베로나에서)”
9월 16일 베로나
나는 웅대한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원형극장은 텅 비어 있을 때 구경할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원형극장은 민중들 자신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고 자신들이 최고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
9월 17일
내가 이처럼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대상들에 비추어 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미술, 혹은 화가의 수작업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렇게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제 2등급이나 3등급의 별들도 깜빡거리기 시작하고 하나하나의 별마다 전체의 성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면 우리가 생각해 온 것보다 세계는 더 넓어지고 예술은 더 풍부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활기차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으며, 특히 상점들과 수공예품 가판대가 밀집해 있는 거리는 정말 유쾌해 보인다. 이곳의 가게나 작업실은 앞문이 없이 건물 전면이 거리 쪽으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가게 안쪽까지 다 들여다보이고 그 안에서 하는 일을 모두 볼 수 있다.(76쪽 9.17 베로나에서)”]
여기 베로나에는 세계 문학의 고향이다. 바르톨롬메오 델라 스칼라가 통치하던 시절에 로메오 몽타궤와 줄리엣 카풀레트가 사랑하던 끝에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줄리엣의 무덤, 로메오의 집, 줄리엣의 집으로 보존되어온 유적들이 이들의 연애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베로나라는 이탈리아의 작고 아담한 옛 도시를 거쳐 버스로 몇 시간이나 달리고 있었을까.
아, 베네치아!
가는 도중 파릇한 채소밭이 이어져 있는데 짙은 녹황빛이 겨울 속의 봄이다. 롬바르디아 평야에는 미루나무와 아카시아가 무성하다. 자꾸 바다 쪽 저지대로 가니 산은 볼 수 없고 뭘 심었는지 모를 광활한 농지나 초지들이 보인다.
바로 베네치아로 가는 배에 오른다. 날은 흐리고 곧 진눈개비라도 내릴 듯하다. 뱃전에서 바라보니 하늘, 바다, 건물이 모두 짙은 잿빛이다. 뱃길은 이 회색의 우수(憂愁)에 차 있다. 회색 안개 속 너머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이는 석조 건물들이 그림처럼 고요하다.
11:45에 드디어 베네치아 입성. 아래 [ ] 안 내용이 괴테의 기록이다.
[9월 28일 베네치아
이제 베네치아는 내게 더 이상 단순한 단어가 아니며 - 무의미한 단어를 철천지원수처럼 싫어하는 나를 그토록 자주 불안하게 했던- 예의 그 공허한 이름이 아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고독을 이제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완전한 이방이 되어 군중 속을 헤치고 돌아다닐 때보다 더 진한 고독이 느껴지는 곳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9월 29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가치 있는 것들뿐이다. 그것은 결집된 인간의 힘이 빚어낸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작품이며 한 명의 지배자가 아니라 수많은 민중이 남긴 훌륭한 유적인 것이다.
10월 5일
나는 항상 나의 지론으로 돌아간다. 자신에게 진정한 대상이 주어졌다면 어떤 예술가라도 진정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10월 6일
아테네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연설 듣기를 더 좋아하고 또 그것을 더 잘 이해한다. 그들은 재판정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를 배웠음이 분명하다.
달빛을 받으며 나는 곤돌라에 올랐다 두 명의 가수가 한 사람은 이물에, 또 한 사람은 고물에 타고 있었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슬픔이 담겨 있지 않은 비탄의 소리 같이 아주 이상야릇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 노래 속에 담긴 뜻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진실되어서 지금까지는 생명이 없는 문자로 우리의 골머리를 썩이던 멜로디가 생생한 선율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은 어떤 고독한 자가 똑같은 심정의 또 다른 고독한 자에게 듣고 응답하라고 넓고 먼 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노래이다.
10월 8일
우리의 눈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주변의 사물들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화가는 모든 대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쾌활하게 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건물들이 뻘투성이의 얕은 바다를 나무기둥을 박아서 지반(地盤)을 굳힌 뒤 지은 것이 익히 듣고 있는 베네치아.
우리는 ‘탄식의 다리’를 보면서 좁은 수로 옆길을 걸어서 이 야릇한 도시를 둘러보았다. 이 다리는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Prigioni)을 이어준다. 대평의원회의 재판에서 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감옥으로 가는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창문으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탄식을 한 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죄수들의 낙서가 아직 남아 있다는 감옥이 보이는데 벽들이 모두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맣다. 좁은 수로를 따라 크고 작은 곤돌라들이 오가는 모습이 한가롭다.
베네치아는 또한 비발디가 젊은 시절 활동하던 천재의 고향, 들어서니 ‘사계(四季)’의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베네치아의 비발디, 나폴리의 깐소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며 장르이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표제음악의 대명사가 아닌가!
어린 시절 고향인 브레시아를 떠나 베네치아로 왔던 그의 아버지 조반 바티스타 비발디는 이발사였다.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로 연주 실력이 뛰어나 산마르코 성당 관현악단의 정규단원이 되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3월 4일 태어났다. 너무나 허약한 몸이었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은 아주 어려서부터 나타났다. 그는 곧 아버지를 대신해서 교회 관현악단에 들어갔으며 베네치아 음악의 위대한 전통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비둘기 떼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해발이 1m도 안 되어서 파도가 심하게 치면 이 광장에는 물이 넘쳐서 물바다가 되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수심이 얕은 바닥을 바탕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의 수로는 운하(運河)의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117개의 크고 작은 운하, 118개의 크고 작은 섬, 이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무려 450개, 그중 50개는 귀족들의 전용 다리였다고 했다. 간선 도로격인 운하는 대운하(Canal Grande). 그보다 작은 운하를 카날레 카나레조(Canale Cannaregio)라고 하며, 아주 좁은 운하를 리오(Rio)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교통수단은 우측통행이지만, 운하를 흐르는 배는 좌측통행. 곤돌라는 일찍이 부자 상인이나 귀족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크고 호화롭게 꾸몄으나, 1562년 공화국 정부의 포고로 현재와 같이 작고 날렵한 형태를 갖췄다. 전성기 때는 1만여 대의 곤돌라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약 500여 척밖에 안 되며, 그것도 대부분 관광용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다음은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3KLIw에서 인용한 베네치아의 축제에 대한 간단한 안내이다.
“베니스[‘베네치아’의 영어식 표기] 비엔날레 (Venice Biennale)는 1895년을 시작으로 홀수 해의 6월 말에서 9월 말까지 열리는 국제 미술전. 카스텔로 공원을 중심으로 시내 전역에서 개최된다. 베니스 영화제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1932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세계 3대 국제 영화제 중 하나다. 매년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리도 섬에 있는 Palazzo del Cinema에서 열린다.
우리 한국영화와 베니스 영화제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1961년 제22회 영화제 때 《성춘향》(申필름)을 출품한 이래 해마다 극영화와 문화영화를 출품하여 왔으나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87년 임권택(林權澤) 감독의 《씨받이》로 강수연(姜受延)이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제 59회 영화제에서는 이창동감독의 《 오아시스 》 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베네치아 59'에서 감독상(Special Director's Award)과 신인배우상(Marcello Mastroianni Award for Best Young Actor or Actress)을 수상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유명해진 이유는 음악성이나 명작곡이 있어서라기보다 이탈리아 말이 가진 독특한 장점 때문이라고 했다. 라틴어 계통으로 93개로 변화하는 동사체계가 때문이라고 했다. 즉 이탈리아 말은 발음하기 쉽고 따라서 가사전달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 상가를 둘러보면서 유리세공을 하는 공방을 찾았다. 유리세공은 떡 빚듯이 유리를 자유자재로 가공하는 기술이 놀라웠다. 유리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장인들은 연방 즐겁다는 표정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신기하고 놀라웠다.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품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걸 처음 알았다.
백화점은 외국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여기서도 쇼핑은 전문점 위주로 이루어지고 고객도 대를 이어 거래를 한다고 한다. 한 가게에 전문 상품 하나만 취급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를 타보지 않을 수 없을 터. 50달러의 비용이 대수냐? 룸메이트 ㅇ**, ㄱ**, ㅂ** 제씨들과 같이 탔다. 배를 젓는 사공은 훤칠한 이탈리아 호남아. 즐겁게 노를 저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곤돌라는 약간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노 젓는 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라나.
날은 어둑어둑해지려는데 마침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와 훨씬 더 젊어 보이는 여자가 함께 곤돌라를 타고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둘 다 웨딩 복 차림이다. 신혼여행 왔는가. 곤돌라는 예쁘고 화사한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신혼부부치곤 너무 나이가 차이나지만 신부는 면사포를 곱게 쓰고 드레스를 곱게 입은 신부는 환한 미소를 아끼지 않는다. 신랑은 결혼 예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머리는 훤히 벗어진 중년이다. 한 손에는 와인 잔이 들려 있다. 곤돌라를 타면서 축배. 너무나 행복해하는 표정. 이 아름다운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신부가 너무 어려 보이지만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나이가 뭐 대수일까? 우리가 손을 흔들어 축하의 뜻을 표 하자 답례로 흰 장갑의 손을 살래살래 흔들어 준다.
다른 곤돌라에는 만돌린을 연주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노래 부르면서 흥겨운 시간을 갖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있다. 자유롭고 멋진 장면. 나의 새 애장 명품 아남 니콘 카메라는 또 다시 찰칵. 베니스 물길에 해질 무렵, 어둠사리는 몰려오고 음악은 흐르고…….
여기서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라는 어감이 주는 낭만과 사랑이 흐르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에 어둠이 내리고 등불이 켜지고 있다. 드리워진 회색은 걷히고 휘황한 불빛의 세례를 받고 있다. 멀리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수업 시간에만 지나가면서 얼핏 들었던 아드리아 해. 여기는 베네치아 만.
산마르코 사원을 보려할 때는 제법 어두워 졌다. 산마르코 베실리카 교회라고도 알려진 이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 마르쿠스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베네치아에 지은 교회 건물이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산마르코 사원은 베니스의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베니스여 안녕!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18:00에 숙소인 호텔 ALEXANDER로 돌아왔다. 내일은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입성하는 꿈을 안으면서 잠자리에 든다. [1997. 11. 28.(금, 제7일/12일) 2020.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