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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2

청솔고개 그 두번째 케이스, "ㄱ아무개"의 경우 그는 한낮 점심 식사 때도 반주로 기본 소주 한 병 비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친구다. 하는 일의 특성상 불가피하다고 하기에는 과하다. 내 중학교 동기다. 그는 보일러시공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그 회사의 대표다. 90년대 우리 사회의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라는 에너지 패턴 전환에 맞춰 관련 업종에 재빨리 손을 대 제법 재미 봤다. 이후 종합건설 면허를 내서 상하수도, 도로포장 수리 등 소소한 건설 공사를 맡았다. 지방 소도시 고향을 시장으로 하는 사업이니만큼 알음알음 연줄과 관급공사 따내는 게 관건이었다. 사업은 처음에는 제법 괜찮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좁은 시장의 과당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업이 기울자, 가정도 위기에 봉..

Now n Here 2025.07.13

‘죽음’1

청솔고개 이 나이까지 살다 보니, 주변의 갑장 지인 한 둘이 타계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최대 몇 달 전에서 최소 며칠 전까지 얼굴 맞대고 대화하고 호흡을 같이하던 삶의 주체가 어느 순간 유(幽)와 명(明)을 달리하는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생각도 없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주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가 전제돼야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몇몇 사례를 통해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한다. ‘그 첫 케이스’ 우리 나이 50살도 되기 전 일이다.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던 중고등 모임의 한 친구가 솔가해서 야반도주(夜半逃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임에서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다. 모임에서 의견이 모아져서 회비로 그..

Now n Here 2025.07.04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7, ‘동계 혹한기 훈련과 깊이 팬 헌데’

청솔고개 우리 부대는 전군최강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수행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전력 확보를 위한 맹훈으로 1년 365일 영일이 없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혹한기 훈련이다. 보통 12월 말, 크리스마스 이전에 일 주정도 진행된다. 우리 군은 언제 어디서라도 본래의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평소 교육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혹한기라 해서 전투가 수행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이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다. 혹한기 야전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면서 추위에 생존하는 훈련, 혹독한 환경에서 참호 조성하면서 진행하는 경계근무 훈련, 각종 병 기본 훈련 등이 주된 내용이다. 바깥은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할수록 텐트 안팎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

Now n Here 2025.07.02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6, ‘산악 훈련’ 3화

청솔고개 우리는 가슴을 죄면서도 승차의 안락함에 취한 나머지 거의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때 잠결에 누가 “큰일 났다. 들통난 것 같다.”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나도 화들짝 잠에서 깼다. 그 순간 “뛰어내려!, 걸리면 영창이다.*된다.”라고 숨죽여 말한다. 사태가 어렴풋이 파악됐다. 나도 아픈 뒤꿈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후다닥 뛰어내렸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사태가 많이 악화해 있었다. 다른 트럭 하나도 서 있고 그 옆에 몇몇 병사들이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었다. 깜깜한 한밤이지만 우리의 행적도 고스란히 노출된 게 뻔했다. 살짝 옆으로 새려고 하는 유혹도 생겼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오히려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도 다른 몇몇 동승자와 같이 순순히 나가서..

Now n Here 2025.05.25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5, ‘산악 훈련’ 2화

청솔고개 훈련 제3일 아침이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한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오늘은 기초유격이다. 교육훈련 50분 중 45분은 PT체조 훈련이다. 훈련의 기본은 체력이라고 거친 목소리로 호통치는 교관과 조교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엄정했다. 그렇지만 교육받는 병사들은 버티다가 40분쯤 지나면 날숨 들숨이 거의 기관의 피스톤처럼 오가다가 폭발 직전에 이르는 듯해진다. 그만큼 훈련은 병사들의 몸에 남은 단 한 올의 칼로리도 다 불태우려는 듯한 기세였다. 웅덩이에 물을 채워놓고서 로프를 잡고 건너는 훈련을 했다. 어떤 병사들은 반동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중간에 풍덩 빠진다. 망신이다. 나는 적어도 저런 꼴은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있는 힘을 다해..

Now n Here 2025.05.24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4, ‘산악 훈련’ 1화

청솔고개 국방부 시계는 째깍째깍 잘도 돌아간다. 계절은 한여름에 접어들었다. 드디어 악명 높은 유격훈련의 시즌이 돌아왔다. 훈련은 기수별로 명령받은 대로 부대 부설 산악훈련장에서 이루어진다. 산악 훈련 일정이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발을 부르트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데 온갖 노하우가 다 동원된다. 비누를 깎아서 군화 깔창 위에 넣는다든지, 아니면 솔잎을 넣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가장 큰 공포는 설악산 장수대에 있는 사단 산악훈련장까지 15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데 그 철야 행군에 발바닥이 까져서 극심한 통증을 겪는 일이다. 이때만큼은 부대 전체는 선임 후임 구분하지 않고 출정하는 대원을 위해 최선의 배려를 한다는 분위기로 넘쳐흐른다. 이런 미덕, 동지애, 혹은 전우애라고 하는 감정에 그..

Now n Here 2025.05.23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3, ‘이[蝨] 떼 창궐 소동'

청솔고개 쫄병으로 자대 배치 이후 첫 겨울을 힘겹게 보냈다. 야전 부대의 겨울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처구니없이 ‘이[蝨] 소동’이었다. 당시 이가 창궐하여 모포 솔기에는 굼실굼실할 정도였다. 병사들은 아주 어린 시절 한때 각자의 가정에서 목격하였다가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사라진 기생충으로 기억되던 존재였다. 내 어린 시절에도 우리 어머니가 우리 5남매를 키우면서 겨울마다 내복에 붙은 이를 컴컴한 등잔불 밑에서 잡아서 두 손톱을 포개서 으깨던 기억이 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던 기억도 있다. 그 후 위생 상태가 좋아지고 더구나 연탄을 때기 시작하면서 박멸돼 자취를 감추었던 이 떼를 군에 들어와서 구경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랴. 이투성이 모포를 당장 어찌하는 수는 없었다. ..

Now n Here 2025.05.21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2, ‘삥땅 첫 휴가’

청솔고개 고대하던 첫 휴가 명령이 떨어졌다. 군복도 새것으로 준비하고 군화도 반질반질 닦아서 걸어두었다. 1977년 4월 1일, 부대장에게 휴가 신고를 마친 후 첫 휴가를 출발했다. 봄풀이 파릇파릇하였다. 내 마음은 이미 고향 앞으로 가 있었다. 그간의 지독한 향수병 치유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더욱 부풀어 올랐었다. 소양호 도선장에 도착해서 배표를 사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생겼다. 도선장 초소를 지키고 있던 헌병 하나가 나를 불러세웠다. 휴가병 복장 점검한다는 것이다. 아래위를 죽 훑어보더니 비표인지 뭔가가 잘못됐다나. 복장 위반으로 군 풍기 적발을 해야겠다고 한다. 이미 두 번째 휴가로 동행하던 선임병이 나보고 드디어 우려하던 올 게 온 것 같은데 이제 어떡할 거냐고 ..

Now n Here 2025.05.13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1,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청솔고개 별은 밤하늘이 어두워져야 빛이 나는 법이다. 암울하다고 여겨질 때 더욱 빛났었던 내 청춘의 순간들이었음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입대 첫해 겨울나기 과정은 내 생애 특이한 체험이었다. 특히 전방 부대에서는 월동 준비를 교육 훈련 및 작전 이상으로 중요시했었다. “겨울을 잘 버텨야 한다.” 이는 군 전력의 유지와 직결되는 것이다. 폭설과 동파, 이로 인한 각종 안전사고 예방으로 월동기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월 중순이다. 행정반 선임병들이 이번 주말에는 월동 준비하러 부대 뒷산에 오른다고 했다. 1차 월동 준비는 화목 채취다. 선임병의 인솔로 천2백 미터 가까이 되는 사명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산꼭대기서 사방을 둘러보니 남북으로 펼쳐진 새파란 물결이 겨울 햇살에 반짝이고..

Now n Here 2025.05.12

나의 청춘보고서 4, 창고 업무, 공용외출

청솔고개 내가 맡은 보직은 사단 통신지원대, 본부 소속 통신 공병 수리 부속 계로, 창고 근무였다. 고교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에서, 느닷없이 전공과는 동떨어진 창고 근무라니, 내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박 아무개 상병은 함께 업무를 같이 처리하면서 내게 잘 가르쳐 주었다.퀀셋 막사의 창고 바닥은 흙바닥이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기도 했다. 사람이 기거하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전까지 방치돼 있었던 창고 내부를 정리하여 팔레트를 깔고 큰 물품은 쌓아놓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창고 안의 물품의 재고 조사였다. 이전에는 물품 재고 카드 하나 없이 그냥 주먹구구로 처리한 듯하였다. 손가락보다 더 작은 진공관, 퓨즈 등은 칸막이 선반을..

Now n Here 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