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풍진만리(風塵萬里), 중국 남부 여행 기록, 첫날 오후, 야상해(夜上海), 외탄(外灘)/여행의 주된 목적은 ‘다름’을 확인하고 ‘다름’을 낯설어하고 ‘다름’을 즐기려는 것인 바

청솔고개 2021. 2. 7. 02:17

풍진만리(風塵萬里), 중국 남부 여행 기록, 첫날 오후, 야상해(夜上海), 외탄(外灘)

                                                                    청솔고개

   다음 코스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홍구공원은 시간이 늦어서 답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노신공원(魯迅公園)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원 안에는 그 유명한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의 작가이며 중국의 근대 지식인이며 선각자 노신의 묘와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무덤에는 마오쩌둥이 직접 쓴 '魯迅先生之墓(노신 선생의 묘)'라는 글자가 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으로, 최근에 윤의사의 항거를 기념하는 기념탑과 매정(梅亭 : 메이팅)이란 이름의 정자가 세워져 있고, '윤봉길 의거현장'이라고 새겨진 초라하고 작은 비석만이 위대한 역사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일정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 두었다고 생각하자. 언젠가 다시 기약하마. 도시락 폭탄을 제조해서 거사한 윤의사의 혼백이라도 뵈올까 했는데 이 후손이 인연을 마련하지 못해서 아무래도 죄를 짓는 기분이다.

   상하이 거리에는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리고 그 유명하다는 상하이 야경이 펼쳐진다. 야경이 워낙 좋아서 야상해(夜上海)라고 한다나. 멀리 우뚝 솟은 동방명주(東方明珠)는 벌써 휘황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 지나가고 있는 남포대교(南浦大橋)는 길이가 8,346m로 황포강을 가로지르는 숱한 다리 중의 하나라고 했다. 야상해(夜上海)는 거대한 빌딩 숲과 거기에 걸맞은 간체자(簡體字) 간판들로 뒤덮여 있어서 아름답다기보다는 거대한 공룡에 헬 수도 없는 등롱(燈籠) 장식으로 억지로 그 광휘를 꾸민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활기가 많이 죽어 있는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의 사막 가운데의 환락(歡樂)도 없고 싱가포르 같은 남국적 정열은 더욱 없었다.

   외탄(外灘) 지구는 세계 동서양 건축물 전시장을 방불케 했는데 멀리 동방명주와 88빌딩의 찬연한 불빛이 다만 거대 도시 상하이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하다. 보통의 카메라로 암만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뜨려도 휘황한 강변 야경은 어둠에 묻혀버릴 터, 그래서 도로(徒勞)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폼이라도 잡아보려고 장엄한 야경과 1세기 전 서양 건축물을 배경으로 끈기 있게 눌러 본다. 문득 싱가포르 야경을 즐기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중국식 홍등(紅燈)을 단 배를 탔던 기억이 스친다. 외탄의 건물 중에 상해도서관(上海圖書館), 일본 영사관, 장령구소년궁(長寧區少年宮), 금강반점북루(錦江飯店北樓), 화평반점(和平飯店), 동풍반점(東風飯店)이 특히 볼거리로 유명하며, 노신 옛집(魯迅舊居)도 당시 개인 주택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이 찾는다고 소개해 놓았다.

   첫날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순 중국 음식 전문식당인 듯한 ‘금강주가’(錦江酒家)에서 했다. 아까 기내 난기류에 한 번 혼 난 위장의 비위가 도저히 되살아나지 않아서인지 음식 양 전체의 절반도 겨우 소화한 듯하였다.

   나의 여행길에서의 식사원칙은 철저히 현지 식이라서 누가 고추장이나 김치를 준비해 가면 여행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였는데, 이 번 중국여행에서의 첫 현지 식사는 철저히 나의 이런 별난 기호에는 딱 들어맞는 것 같아서 좋긴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여기서는 나의 한계점을 드러내어 버릴 것 같았다. 나도 음식 비위는 제법 자랑할 만했는데 말이다.

   여행의 다른 말로는 중국 고전에서 전해오던 관국지광(觀國之光)의 준말인 이른바 ‘관광’(觀光)이 있다. 현대의 ‘여행’(旅行)에는 현지 풍토, 음식, 언어, 문화유산, 생활 등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여행의 주된 목적은 ‘다름’을 확인하고 ‘다름’을 낯설어하고 ‘다름’을 즐기려는 것인 바,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곳에 내려졌을 때 그 ‘다름’을 체감하는 차례는 기후, 자연환경, 거리 풍경, 사람들의 생김새, 말씨, 가옥구조, 음식 등등이다. 이런 것들은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그 낯설어함은 여행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현지 음식이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미식가나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여행에서 절대적인 요소다. 인간 생활이 여유가 있어서 충분히 안락할 때 추구하는 것으로는 식욕이나 물욕, 명예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떤 거대 제국이 멸망할 즈음에는 반드시 이와 관련된 것들이 인간의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전철을 답습한다고 한다. 매 식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어도 그 많은 음식 종류를 다 맛볼 수 없는 극치에 다다란 향락과 사치의 역사는 결국 그들의 제국을 멸망하게 하였다. 그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다 맛보려고 깃털을 목구멍에 잡아넣어서 먹은 음식을 토하게 한 후 다시 먹고 또 게워내고 다시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제국의 멸망사에 반드시 전해지고 있지 않는가.

   한 번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저녁 식사를 처음 현지 식으로 하는데 그 유명하다는 이탈리아 원조 스파게티가 제공되었었다. 그런데 국수를 삼다가 말아도 유만부동이지 이렇게 생밀가루 냄새가 풀풀 나는 음식은 처음 보았다. 가이드 하는 얘기가 더욱 가관, 이것도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서 많이 바꾼 것이라 했다. 상하이에서의 첫 현지식사와 비교하면 그 스파게티는 약과라고나 할까. 모든 것은 중국식 향이 첨가된 기름 범벅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금강주가’(錦江酒家)라 기억되는 상하이 현지음식점에서의 첫인상이었다.

   저녁에 서커스 관람은 가히 인간의 한계점을 시험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묘기 대행진, 기상천외한 재주를 가진 재주꾼들이 거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을 터. 경극(京劇)과 더불어 이 서커스는 상하이 볼거리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원래 오늘 여기서 17:10에 다시 중국민항으로 구이린(桂林)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현지 사정으로 버스로 쑤저우(蘇州)로 이동한다나. 어둠을 가로지르면서 다시 서쪽으로 쑤저우(蘇州)로 향발. 쑤저우(蘇州) TIANPING HOTEL(天平大酒店)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가까이 되었다. 아무리 노독에 겹다고 해도 풍진만리(風塵萬里) 이역(異域)에서 객고를 달랠 한 잔 술이 어찌 없을쏘냐. 임시 총각의 처소에 가서 소주(燒酒)랑 중국 맥주랑 한 잔 가볍게 하였다. 쑤저우(蘇州)에서는 우리 소주(燒酒)를 꼭 한 잔해야 해’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은 여기서 모이고 부인들은 따로 모여서 잠시나마 담소를 즐겼다. 우리 내외는 이 티안핑호텔(天平大酒店) 403호에 배정. 그런대로 만족할 만했다.  [2003. 1. 20. 월, 오후]  2021.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