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진만리(風塵萬里), 중국 남부 여행 기록, 셋째 날 오전, 서호(西湖), 영은사(靈隱寺)
청솔고개
아침부터 무척 서두른다. 왜냐하면 오늘 항저우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로 상하이 공항으로 가서 구이린 가는 항공편에 탑승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엊저녁에 벌써 모닝콜 06:30, 아침식사 07:00부터이고 출발 집합은 07:40분으로 통보해 준다. 정말 강행군이다. 피로를 호소할 겨를도 없이 눈 비비고 일어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 모여서 출발했다. 20분 정도 가니 서호가 나왔다. 맑은 날의 서호보다 비 오는 서호가, 비 오는 서호보다 안개 낀 서호가, 안개 낀 서호보다는 밤의 서호가 더 아름답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개 낀 서호니 두 번째로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으려나.
가이드의 항저우와 서호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항저우는 "양주문화", "오월문화", "남송문화"라는 말과 같이 중국 남쪽의 문화 중심지다. 항저우라는 지명은 고대 우왕(禑王)이 홍수를 다스리려고 하늘에 절을 하려고 가는 도중에 (지금의 소흥) 일찍이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배를 나란히 세우는데, "항(航)과 "항(杭)이 서로 통하여 곧 "우항"의 지명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춘추시대에 이곳에서는 오나라와 월나라 두 왕국의 국경이 만들어졌었다.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한 후 전당현을 세우고부터 항저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추측한다. 한편 610년 수양제는 북방대운하를 개통하고 항저우의 발전과 번창을 촉진시켰었다. 당대(唐代)의 항저우는 주민이 10만 여에 이르렀으며, 서기 821년 시인 백거이가 항저우자사로 임명되었을 때, 전당문 밖의 돌을 포함한 다리 근처에 백공제를 건설하였다. 그 때 서호 호수는 자연적 호수에서 인공적 호수로 바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호(西湖)는 항저우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西子湖’(서자호)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미인 서시(西施)는 월나라 왕인 구천(勾踐)이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쳐진 인물로, 결국은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 왕 부차가 서시의 미모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등 3개의 섬이 떠 있다.
남송(南宋) 시대 화단(畵壇)의 선비들이 서호에서 빼어난 10곳을 골라 '서호 10경(西湖十景)’이라 이름 한 곳들인데 계절과 하루해의 뜨고 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서호의 10경을 정리해 본다.
제1경은 단교잔설(斷橋殘雪 뚜안치아오찬쉬에) 백제(白提)의 동쪽 끝에 위치한 다리. 겨울에 완만한 아치형 다리에 쌓였던 눈이 햇볕에 녹아내리면 멀리서 보았을 때 다리 가운데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제2경은 평호추월(平湖秋月 핑후치우위에) 백제의 서쪽 서냉교로 이어진 고산(孤山)의 전망대. 서호에서 달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한다.
제3경은 곡원풍하(曲院風荷 취위엔펑허) 송나라 때 궁정에 바치는 술을 빚던 곳인데 연꽃이 활짝 피는 4~5월이면 술집 뜨락에서 피어나는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며 기막힌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
제4경은 소제춘효(小堤春曉 쑤디춘샤오)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쌓았다는 제방. 길이 2.8㎞이며, 각기 다른 6개의 아름다운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른 봄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복숭아 꽃잎이 물 위에 살짝 떠 있는 경치가 기막히다고 한다.
제5경은 삼담인월(三潭印月 산탄인위에) 인공섬 소영주(小瀛洲) 남쪽에 세 개의 석등이 떠 있는데, 추석날 배를 띄우고 불이 켜진 석등을 바라보면 달이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제6경은 화항관어(花港觀魚 화강꾸안위) 서호의 남서쪽 호반에 위치한 정원. 모란꽃이 활짝 핀 정원에서 화려한 색색의 비단잉어들이 노닌다. 정원 입구 비각의 '花港觀魚’는 강희제가 직접 쓴 글씨이다. 이 중 ' '의 아래 부수에는 불화(火)가 아닌 물 수(水)변을 의미하는 점 세 개가 찍혀 있는데, 불교 신자였던 강희제가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물 수(水)변을 써넣었다고 한다.
제7경은 쌍봉삽운(雙峰揷雲 쑤앙펑차윈) 서호 서남쪽의 북고봉과 남고봉 사이의 골짜기에 운무가 끼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꽂혀 있는 것처럼 아름다워 서호 10경의 하나로 꼽히나 지금은 안개와 스모그로 인해 아주 가끔만 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제8경은 남병만종(南屛晩鐘 난핑완쫑) 땅거미가 질 무렵, 서호 남쪽에 있는 남병산(南屛山 난핑샨) 아래 정자사(淨慈寺 징츠쓰)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매일 저녁 8시에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1백 8번 종을 친다.
제9경은 뇌봉석조(雷峰夕照 레이펑시쟈오) 서호 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영봉산(靈峰山)의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인데, 지금은 탑이 없어졌기 때문에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제10경은 유랑문앵(柳浪聞鶯 리우랑원잉) 잔디밭과 버드나무가 잘 조성되어 있는 정원. 수양버들과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잘 어우러진다는 말뜻 그대로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일품인 곳이다. 버드나무?유(柳 리우)?자는 머문다는 뜻의?유(留 리우)?자와 발음이 같아 예로부터 여자가 남자에게 버드나무를 꺾어 주면 떠나지 말고 머물러 달라는 구애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나는 서호 10경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지금 수심이 2m내외 밖에 안 되어 비단결의 위처럼 매끄럽게 떠가는 유람선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지금은 그 10경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 곳을 유람하고 있나 하고 암만 떠올려보아도 딱히 맞아떨어지는 경(景)은 없는 것 같다. 굳이 끌어 붙여 본다면 제4경 소제의 물안개나 제7경 서남 골짜기의 운무(雲霧) 정도일까? 왜냐하면 지금은 안개로 흐려진 호면과 호변으로 다른 풍광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니까. 이런 정도로 생각해 보았다. 미끄러지듯 떠가는 유람선 선수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호안과 멀리 희미하게 윤곽만 남아 있는 연봉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다만 제3경의 연꽃향기와 술 향기의 어우러짐과 제10경에서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의 노랫소리에 얽힌 구애 행위가 너무나 시적이라서 중국인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꼭 한 번 언젠가 봄날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 노닐 때 비록 사랑을 고백할 나이는 지났겠지만 그 정취에 한 번 젖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어서 영은사(靈隱寺)를 관람하였다. 신라의 김교각 왕자가 지장보살(地藏菩薩)로 현신(現身)한 사실로 한국불교의 역사가 살아 있는 영은사는 그래서 더욱 특이했다. 지장보살이 어떠한 존재인가. 지옥불 속에서 중생들이 죗값에 대한 악형으로 영원히 고통당하고 있는 그 틈새에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다 구원받을 때까지 함께 하는 자비와 고통의 현신이신 보살님이 아닌가!
이 절에는 오, 송, 원대인 10-14세기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여 개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나 높이 33,6m의 대웅보전, 24.8m의 여래불상 등 그 규모면에서는 중국 절의 위용을 한껏 보여주는 점에서는 일견(一見)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신을 신고 법당에 들어가는 참배 방식이나 승복을 입은 스님들의 행태 등에서 너무나 우리나라 절 분위기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체투지례(五體投地禮)는 그런 대로 중국불교의 한 단면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소저우의 한산사와 더불어 절 집의 분위기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500나한상이 봉안 되어있는 나한전은 그 크기나 조각들의 위용, 생생한 얼굴 표정 등이 정말 우리의 500나한상치고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한동안 모두들 황당해 했다. 바위 굴 속에 즐비하게 안치되어 있는 석불 중에는 특히 송 대의 미륵좌상의 태연자약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03. 1. 22. 수. 오전]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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