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9.6.7. 며칠 만에 엊저녁엔 거짓말 같이 푹 잤다. 중간에 아버지가 악몽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약간 고함을 치신 걸 느꼈지만 심한 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정신적인 안정을 회복하시고 있는 데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집단 수용 폐쇄 공간을 너무 힘들어하셨는데 어쩐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입원 기간은 무사히 넘어갈 것 같다.
오전에 아버지한테 두 가지 큰 검사가 있었다. 시술을 위한 사전 검사다. 폐기능 검사, 경식도 심초음파라고 했다. 그래서 간단한 음료 하나만 먹게 하고 나머지는 금식이다. 약은 급한 것만 간단히 복용했다. 남자 간호사가 휠체어에 태워서 가더니 거의 두 시간 동안 연락도 없이 검사한다. 나머지 검사까지 한꺼번에 하는 모양인데 이 검사는 직계 가족 동행하라고 돼 있는데 연락이 없다.
그 사이 큰일을 처리했다. 진료비 안내 간호사가 지난 4일 날 입원 수속 시 설명을 하려고 기다렸는데 늦게 와서 못했다고 하면서 비용 안내와 관련하여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이 대동맥판막협착증에 대한 시술은 판막 비용만 3천만 원이라고 한다. 전체 치료비용은 그래서 3천 5백만 원 가량 된다고 한다. 내가 보훈병원에서 전문위탁 절차를 밟은 것 등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더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고 한다. 위탁 사무 담당 직원은 뜬금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심장내과 담당의사와 상담했다고 했더니 확인 후 시술 비용이 무료가 된다고 했다. 안내서에 로봇 수술, 경피적 대동맥치환술 같은 고액 시술은 제외라고 해서 그간 늘 찜찜하던 차에 이런 걸 확인하고 일시에 걱정거리가 사라져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내한테도 결국 시술 비용이 국비100%로 해결된다는 낭보를 전해 주었다. 그래도 당장 최대 3천 5백만 원 상당의 비용은 지불하고 심사 후 선별 환불이니 그 비용 장만이 문제가 돼 일단 첫째 누이한테 협조를 좀 구해보기로 해볼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꿰맞추면 될 것 같다는 속셈이 나온다. 아버지께는 다 확인되는 대로 차차 말씀드리기로 했다. 아버지는 낮 12시 좀 지나서 검사 마치고 병실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오후 1시 30분 쯤 식사하라고 한다. 아버지 식사 후 약 드신 것까지 도와드리고 본관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혼자서 밥 먹는 것도 이제 이력이 났다. 오늘은 열무김치비빔밥을 시켰다. 맛이 괜찮다. 천원을 주고 추가 밥을 주문해서 강된장에 비벼 먹었다. 강된장의 맛이 묘미다. 가게에 가서 바게트, 넓적한 무슨 커피 빵, 아메리카노 봉지커피 등을 샀다. 오늘 저녁, 내일 아침 식사대용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여기 서대문구 신촌 동네에서 묵게 되는 것은 지난 번 송파구 체류 때 문득 서울에서 한 달 나기 프로그램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사하고 들어오다가 98병동 입구 벤치에 앉아서 좀 여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모처럼 가는 봄 오는 봄 원일의 노래 수일과 순에 등 그간의 애창곡을 두 번씩 반복해서 듣고 나직이 따라 불러보았다. 기분이 무척 고적하면서도 깊은 상념과 사색으로 바뀐다. 가리개 너머는 무슨 병원 증축공사를 하는지 굉음이 들린다.
오늘 아내, 첫째누이, 막내누이, 첫째, 둘째동생 등이 차례로 전화해 왔다. 고맙다. 첫째는 내일 아침에 샐러드 등 내 먹을 것 장만해서, 첫째누이도 내일 들린다고 했다. 둘째동생은 내일이나 모레 들린다고 한다. 어제 처남 전화부터 시작해서 힘 들 때 이런 한 통의 전화가 힘을 보충해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처남의 근심어린 전화 한 통이 정말 고맙다.
아버지 폰에 평소에 좋아하는 ‘가는 봄 오는 봄’ 등을 가져간 노트북을 통해서 깔아드리니 무척 좋아하시고 저녁 내내 감상하신다.
저녁 9시도 지나 야간순회 중인 ㅂ의사가 좋은 소식이라면서 운을 뗐다. 아버지의 증세 정도가 대동맥판막협착 중증도라고 하면서 시술까지는 가지 않고 약물로 다스려도 된다는 의견을 전달해 주었다. 그만큼 아버지 병세가 이전 병원에서 말한 것처럼 위중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말 희망적인 소식이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다. 집에 가서 정상적인 생활이 곧 재개 될 것 같다. 나의 상담도 여행도 실행될 것 같은 예감에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오늘 저녁은 모처럼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취침해도 좋을 것 같다. 2022.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