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2019년 봄에서 여름까지 아버지와의 동행 10, 우리 삼형제, 자매, 오남매의 오늘

청솔고개 2022. 7. 11. 00:03

                                                                                                                                              청솔고개

   2019.6.9.    병원에서 아버지와 보낸 지 벌써 5일째다. 처음엔 답답할 것 같았는데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을 줄 알고 노트북도 가져왔는데 그냥 이 생애기록 외에 다른 거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처음엔 책 한 권 안 가져온 게 무척 아쉬웠는데 이런 상황이었다면 잘 안 가져왔다 싶다. 그냥 짐만 될 것 같았다. 아침 점심은 첫째와 첫째누이가 준비해 온 샐러드 등으로 잘 해결해 간다. 아버지도 양상추 무침 같은 것은 부드럽다 하면서 잘 드신다. 내일 돼 봐야 아버지 퇴원 날짜가 확정될 것 같다. 짐도 좀 정리해 보았다.

   입구 쪽 이웃 병상 환자는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여간 까탈스러운 성미가 아닌 것 같았다. 심한 수술 뒤라서 과민한 탓도 있겠지만 도무지 신경 쓰여서 숨도 크게 내 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뭐 좀 부스럭거리기라도 하면 가끔 커튼을 젖히고 무척 강하게 생긴 인상을 과시라도 하듯 번히 쳐다본다. 점잖게 한마디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그래서 괜히 병원에서 큰소리 나올까봐 무턱대고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대응한다.

   점심 식사 전에 아버지가 휴게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셔서 모시고 오는데 갑자기 걸음을 잘 못 걸으신다. 어지럽고 힘이 없다고 했다. 겨우 병실까지 모시고 와서 점심을 드시게 하니 그제야 힘이 난다고 했다. 기력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문제가 된다. 걱정이 슬며시 된다.

   저녁 식사 때 둘째동생이 왔다. 고맙다. 암만 봐도 쉰아홉 같지는 않은 동안이다. 이런 귀공자 스타일이 저리 혼자서 있는 게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첫째를 보면서 좀 이해가 된다. 어제 약속한 대로 아버지 심심하다고 드린 라디오의 배터리를 20개짜리 사왔다. 가격이 3천원밖에 안 한다. 교체해 넣으니 라디오 잘 나온다. 아버지 저녁 다 드시고 약까지 잡수시는 것 도와드린 후 같이 나오려는데 아버지가 짠한 얼굴을 하시면서 둘째동생의 손을 한 번 잡아보자면서 아들에 대한 못다 한 정을 표출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모습은 안쓰러움, 그리움, 연민의 정이 모두 뒤섞인 듯한 것이었다. 둘째동생도 약간 겸연쩍어하면서 같이 손을 잡아드린다. 아버지도 이 아들 때문에 참 많은 마음고생도 하셨을 텐데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그래도 어제 첫날을 또 노경에 짝이 있어야 한다면서 못 다한 아쉬움을 표하시는 것을 볼 때 자식에 대한 염(念)은 누구나 그러한 것인가 보다.

   오늘은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하니 둘째동생은 예의 입속에서 맴도는 듯한 어투로 사양한다. 어제 많은 이야기를 해서 오늘은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고향의 아파트에 바로 위의 제 형과 같이 지내면서 농사 짓고 노후를 보내라는 말을 두 번 하지는 않았다. 그냥 지나가면서 할 말 없어서 내가 해본 말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가진 건 아니었다. 노후 생활에서 내가 동생에게 주는 하나의 제안일 따름.

   저녁 먹고 다시 심장혈관 병동 1층 로비에 앉아서 좀 있다가 아이가 가겠다고 한다. 속으로는 명절 때 한 번씩 내려오고 아버지께 자주 전화 드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부질없는 일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코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문득 내가 30대 인근의 고등학교 근무할 때 삼형제가 사진관에 가서 찍은 아주 잘 나온 사진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삼형제 참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삶이란 설계대로, 계산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가신 어머니 말씀 따나 ‘하늘의 옥황상제도 부러워한다는 삼형제 두 자매 오남매, 삼남 이녀’ 그 삼형제의 후손이 둘씩만 났더라도 여섯은 되고 들어온 식구까지…….  가끔은 내 30대 시절 이런 우리 가족 풍경을 그려보았던 걸 다시 회상해 본다.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지만. 둘째동생을 보내면서 내 마음이 이렇게 착잡하다. 아이는 내 손 한 번 잡고 그냥 휘휘 떠나간다. 문득 그 모습이 너무 애잔해 보인다. 동기(同氣), 한 줄기에 난 가지 다섯이 이제는 이런 모습으로 세월을 보낸다.

   둘째동생 보내고 다시 편의점에 가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들어왔다. 비가 약간 흩뿌린다. 타관 병실에서 비 뿌리는 한 밤이 되니 마음이 스산하다. 다행히 그때까지 아버지는 휴게실에 계셨다. 모두들 인기 주말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이다. 한 두 모금 마신 커피를 드렸더니 잘 잡수신다. 나도 그 주말 드라마를 보고 병실에 들어왔다. 오늘은 어쩐지 병실 생활이 꽉 찬 듯하다.    2022.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