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9.6.11. 새벽에 잠이 깨서 이틀 분량의 생애깁기를 기워보았다. 가져간 헤드랜턴이 참 유용하다. 나의 삶의 특별한 의미부여 행위, 나의 생애깁기, 내 삶의 존재 이유다. 한참 깁다 보니 서쪽 창밖이 훤하다. 새벽 5시 좀 지나도 그냥 밝아진다. 피로회복도 할 겸, 우선 내 샤워부터 해 놓았다. 어제 실종된 아버지의 틀니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가로 짓는다. 어렵다는 뜻이리라.
첫째내외, 첫째누이가 준비해 와 남은 음식과 과일을 보고도 못 드시는 아버지를 보니 더욱 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는 고집처럼 여전히 밥을 주문하신다. 그냥 좀 단단해진 잇몸으로 우물우물해서 드신다. 자칫 얹히거나 소화불량이 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모두가 내 세심함이 부족함 때문이다. 내 불찰이다. 뼈저리게 자책감이 든다. 나는 남은 음료수, 과일을 수시로 먹어댄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다.
ㅎㄱㄹ 담당 의사를 비롯하여 대여섯 명의 회진 팀이 들이닥친다. 아버지가 아직 판막을 교체할 만큼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걸 분명히 말해준다. 이 한 마디가 중요하다. 여기서 환자의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에 대해서 물어 본다는 게 깜빡했다. 마음이 바빠 간호사실에 가서 병원비 납부 등 물어보았더니 준비 중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드디어 병원비 계산하라고 연락 왔다. 어제 물어서 확인해 놓은 대로 병원 출입구 바로 앞에서 처리해 주니 참 편리하다. 밀리는 것도 없다. 이어서 약 복용에 대해서 길고도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아침부터 첫째누이가 와 있어서 같이 들었다. 오늘따라 병원에는 복도 물청소 때문에 더 바쁘게 되었다. 락스 풀기 전 겨우 첫째누이와 같이 나왔다. 첫째누이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나는 큰 가방을 끌고 나오면서 병실에서부터 먼저 보이는 환자, 간병사, 간호사들에게 그동안의 감사의 인사를 간략히 표했다. 아버지는 간호사보고 특별히 “천사”라고 불러주면서 고마워하신다. 그런 아버지 모습을 뵈니 내 기분이 더 고조된다. 아래에서 택시를 잡았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멋지고 유서 깊다고 소문난 이 대학의 본관에는 못 가보더라도 아버지 모시고 여기 지하 편의시설 상가에 와서 그 분위기를 한 번이라도 느끼시게 해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혹 병원에서 아버지나 나를 찾는 급한 일이라도 있으면 곤란할 터이니 불가피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아버지는 서울역으로 가는 도중 서대문구 지역의 양 옆에 즐비하게 늘어지는 고층건물을 지긋이 감상하시면서 이번에 서울 여행 한번 잘 했다고 하신다. 서울역에서 아버지는 추어탕을 찾으시는데 식당에 그런 메뉴는 없어서 순두부국을 드렸더니 그런대로 잡수신다. 이빨 없이 잡수시는 모습을 뵐 때마다 가슴이 매우 아프다.
드디어 차타고 떠날 시간이 임박했다. 첫째누이가 커피를 사 온다. 한 잔 마시고 내려가니 시간이 딱 맞다. 둘째의 이민 가방이 너무 투박하고 큰 것 같았지만 이번 서울행에서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첫째누이가 가져갔다가 나중에 보내 준다는 가방을 함께 뭉뚱그려서 끌고 가니 좋다. 살살 끌리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하행 열차가 벌써 대기하고 있다. 차에 올랐다. 첫째누이가 밖에서 작별인사를 한다. 또다시 아버지와 딸의 헤어짐이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봉별이 무상하다. 딸은 아버지가 아무래도 움직임이 민첩하지 못하시니 내릴 역에 다 가거든 내리는 입구에 미리 대기했다가 내리면 되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참 세심하다. 특실이라 짐 놓을 공간 넓고 앞 뒤 간격도 여유 있어서 좋다. 더구나 간식도 한 봉지씩 준다. 음료수 등 다른 준비한 것을 드리니 잘 드신다.
고향 역에 도착했다. 바로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아주 많이 흘러간 것 같다. 큰집까지는 30분 걸린다. 골짜기에는 녹음이 창창하다. 밤꽃은 벌써 지고 밤알이 달린 것 같다. 큰집에 도착했다. 며칠 분 약 배정 등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준비했다. 택시로 우리 집에 와서 급히 팥죽을 준비해서 자전거로 다시 큰집에 갔다. 아버지가 저녁식사하시도록 준비해 드리고는 오늘 저녁 동기들 모임 장소로 출발했다. 2022.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