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蟾津江) 매화기(梅花記) 2
청솔고개
여기 남해고속도로의 휴게소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이 또한 곧 상실될 기억이 될 것이지만. 섬진강, 그 강물의 흐름과 처음 마주했던 휴게소 난간. 가슴 벅차올랐던 곳이다. 그 섬진강 휴게소에 못 미쳐 하동 IC로 빠져나왔다. 지난 날 오르내리면서 자주 들렀던 곳인데 못 가니 아쉽다. 아내가 거기서 몇 차례 미꾸라지, 다슬기 산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도착하니 딱 9시다. 4년 만에 열리는 축제인지라, 첫날부터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차가 빼곡하다. 차 세울 공간이 안 보여 계속 나갔더니 도사제방이라고 안내된 곳에 도착한다. 거기에도 벌써 도착한 순서대로 차가 꽉 메워져있다. 바로 옆은 옥빛 섬진강물이 출렁댄다. 아내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 물빛을 보니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그런 아내와 함께 우리 지난날의 그랜드캐넌, 공룡능선을 마주한 순간의 감동을 다시 불러와 본다. 남은 내 생애에 우리 다시 한 번 그 감동을 만날 수는 있을까?
매화 밭 들머리를 찾아서 쉬엄쉬엄 걸었다. 상춘객들이 삼삼오오 들뜨고 즐거운 표정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른다. 돌담길 따라 양 옆에서 매화가 도열해 있다. 우리를 부르고 있다. 잘 왔다면서 환영한다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재잘대는 소리가 매화의 꽃 너울처럼 펄럭인다. 퍼져 나간다. 그야말로 꽃길이다.
바람이 건듯 부니 오묘한 뭔가가 슬쩍 내 얼굴을 스친다. 이 무언가?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매향? 불현 듯, ‘지금 눈 나리고 梅花(매화) 香氣(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육사(陸史)의 ‘광야(廣野)’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과연 매화향이로다. 처음에는 그것이 매향(梅香)인지도 나도 몰랐다. 그 향에 취했다가 깨어난다. 동행하는 아내한테도 느껴보라 했다. 아직도 홍매(紅梅)가 절정이다. 너무 붉다 못해 검기까지 해서 흑매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옅은 연두색이 햇살의 방향에 따라 은은하게 또는 언뜻언뜻 내비치는 청매(靑梅)도 보인다. 청매가 있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매화 밭 사이사이로 샛노란 산수유 꽃도 숨어있다. 여기는 하얀 매화, 홍매, 청매, 산수유가 공존하는 천상의 화원인가.
[2023.3.10.금. 맑음] 2023. 3. 16.
'여정(旅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蟾津江) 매화기(梅花記) 3/ 내가 풋풋한 향을 풍기는 매화꽃송이와 입맞춤이라도 하려는가 (2) | 2023.03.17 |
---|---|
섬진강(蟾津江) 매화기(梅花記) 1/ 새벽안개 사이로 새벽달이 해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비현실적 풍광이다 (2) | 2023.03.15 |
길 위의 시간들, 별빛처럼 빛나다 3, 미서부 여행길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들은 사막 길 따라 존재한다 (1) | 2023.02.22 |
길 위의 시간들, 별빛처럼 빛나다 2, 여행길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여행길에서의 명화 한 편은 인생길의 깊이와 폭을 한층 더해 준다 (0) | 2023.02.21 |
길 위의 시간들, 별빛처럼 빛나다 1, 그 불꽃과 안개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묘약이었다 (1) | 2023.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