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섬진강(蟾津江) 매화기(梅花記) 3/ 내가 풋풋한 향을 풍기는 매화꽃송이와 입맞춤이라도 하려는가

청솔고개 2023. 3. 17. 00:50

섬진강(蟾津江) 매화기(梅花記) 3

                                                         청솔고개

   걸어서 천천히 오르니 중턱에 정자가 보인다. 출발한 지 30분쯤 걸렸다. 정자에는 사람들이 난간에 앉아서 모두 황홀경에 취해들 있다. 뒤로는 산자락에 매화 꽃동산이 펼쳐져 있다.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앞으로는 너르디너른 매화밭, 그 너머 섬진강, 더 멀리는 지리산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옥빛 섬진강이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이곳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뷰포인트다. 온 천지에 봄기운이 미만하다. 봄의 정령인지 어른거리는 아지랑이가 매전(梅田)을 휘감아 오르는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공(時空)을 여기서 만난 것 같다. 땀을 식히고 꽃 대궐을 배경으로 우리 내외 함께 몇 장 담아보았다. 우리 내외는 이 땅의 낙원을 뒷모습으로 하면서 이 순간을 꽃그늘 아래 꿈에서 머물고 있다.

   바로 내려오려다가 아무래도 자꾸 뒤돌아보여서 다시 올라갔다. 여기서 이대로 헤어지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좀 더 멀고 깊은 코스로 들어서 보았다. 들어서는 길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매화꽃밭의 비경이 숨었다 나타났다 한다. 내 고개와 눈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를 만큼 매화 꽃밭의 비경이 펼쳐진다. 내려가는 쪽은 장정 팔뚝만한 왕대가 울창한 대밭을 이루고 있다. 오른 쪽 매화 밭 안으로 처음 들어가 보았다.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길로 나 있다. 아주 가까이서 매화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 본다. 내가 풋풋한 향을 풍기는 매화꽃송이와 입맞춤이라도 하려는가. 매실 농원 마당에 천여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독과 항아리가 기하학적인 묘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는 데마다 돌담으로 골목길과 집과 밭을 구분하고 있다. 모든 게 자연친화적으로 꾸며 내고 있다. 다 내려와서 야외 공연장에서 오늘부터 공연할 예술단의 리허설 장면을 잠시 맛보기 했다. 섬진강 서편 남도 소리의 걸쭉한 정한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었다.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국악도 양악과의 협연을 통해 많이 대중화되고 있다.

   나오는 길을 다시 행사장 중심으로 향하는 바람에 많이 지체한 것 같다. 답답하다기보다 천천히 이동하니 한껏 취한 매화의 향에서 이제 깨어난 기분이다. 하동 읍내로 향하는 도중 배가 얹혀져있는 강나루 빈터에 잠시 들렀다. 아내와 같이 푸르고 푸른 봄 섬진강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껴보면서 커피 한 잔 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바람인지 대숲바람인지 포근하고 정겹다.

   하동 시장에 들렀다. 아내가 여기서 오래 전 대봉 감을 사먹었던 기억을 불러낸다. 시장은 설렁했다. 아내가 오래 전 몇 번 왔던 재첩국 식당을 기억해 냈다. 거기 가서 재첩국과 재첩 전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사천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빼서 벤치에 앉았다. 봄바람이 포근하다. 돌아가는 길, 다시 오리라는 기약도 없이 여행길의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았다. 올해도 그 봄날은 길다. 그 봄날은 간다.   [2023.3.10.금. 맑음]              2023.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