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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과 원초적 생의 의지에 맡기다,치료실 이벤트 4

청솔고개 2025. 1. 23. 17:30

   청솔고개

   2024. 7. 28.

   

   -우울감

   또 한 주 출발한다.

   주말에 보행 보조기 타고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했다 싶어 내심 작업치료 걷기에 대해 기대했었는데, 치료사가 바뀌어서 그런지, 기대에 못미친다. 한편 방송 리포트에서 척수장애인의 병원에서의 재활 기간이 평균 2년 8개월이라는 보도에 또다시 암울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지금은 작업치료실에서 다른 환자의 손 재활 장면을 보고 있다. 이걸 보고 내가 위안을 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속도 울렁거리고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다. 아까 내가 수행하려는 작업치료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감당하지 못해서 자신감을 잃어서인가.

   하루 일과 끝나고 저녁 식사도 마쳤다. 아내와의 이 겸상과 동행은 언제까지 해야 하나. 병실과 치료실을 들여다보면 천차만별 병증에 나는 저보다는 그래도 낫다, 여겨지지만 외래진료환자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면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도 40일 전에는 저처럼 걸었는데, 이제는 저들 중 지팡이나 목발을 짚고 가는 이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엄습하면 급히 우울해진다.

   오늘은 또 자가 도뇨 교육을 받고 카테터 샘플도 받아서 하나를 시행해 보았다. 그동안 척수 카페를 통해 주워들은 상식으로 보아 최소한 이것만은 면하자면서 아랫배 방광을 쥐어짜듯 눌러서 잔뇨량 1cc라도 줄이려고 애썼던 게 허사로 돌아갔다. 물론 실제로 사용해 보니 이물감은 생각보다 덜한 게 다소 위안은 된다. 평생 혈압약, 당뇨약에서 이어서 이제는 평생 카테킨이라. 이제 나도 진실로 늙음을 체화, 체득할 단계에 다다랐음이라. 또래보다 통계적으로 좀 일찍이 접어든 것뿐이다. 이제 하루에 4~6회 도뇨해야 한다. 마치 물을 마시듯이….

 

    -원초적 생의 의지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초적 생의 의지다. 눈도 못 뜨는 중증장애인이라도 그냥 침상에 뉘어놓으면 욕창, 관절의 굳어짐, 근육의 상실로 더욱 망가지기 때문에 재활치료실에서 치료 베드에 전신을 묶어서 비스듬히 세워놓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치료행위가 전적으로 환자의 의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면 미세하나마 간절한 생의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초기 환자는 물론 중장기 환자에 이를수록 그 열망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처절함에다가 어떤 감동이 덧씌워져 있어 보인다. 치료실에는 생의 재활 혹은 부활의 의지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중기 재활에 접어든 것 같다. 지팡이 하나만 짚고 걷기 연습, 지팡이 없이 양팔로 몸통의 균형을 잡으면서 마치 외줄타기 광대와 같은 모습으로 걸어보기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치료실에서 내가 가장 선망의 대상은 활보하는 방문객도 아니고 더군다나 젊은 치료사는 아니다. 치료사의 보호 속에 제법 빠른 속도로 보행하는 회복기 환자들이다. 나는 언제 저 단계에 진입할까, 과연 진입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면서 90kg 거구를 거의 매달다시피 해서 다리를 끌면서 걷기 연습하는 환자, 매트 위에서 균형잡기 연습, 휠체어에서 베드로 서로 이동하기 연습 등은 내가 거의 한 달 전에 받았던 기초 과정이다. 이런 치료 받고 있는 환자를 보고 나는 위안을 받는 것이다.       2025.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