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7. 28.
-오지랖이 넓다
맞은편 74세 환자의 보호자는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환자 남편을 돌보고 있다. 아내가 이를 보다 못해 식판 옮겨다 주고 물리는 것이 보일 때마다 도와준다. 그러면 보호자는 그때마다 고맙고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그 가족의 형편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보호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로 보아 보호자 본인이 돌봄 받아야 할 것 같아 보였다. 절뚝거리면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환자 남편 곁을 지키는 형편이니 오죽할까 싶다.
얼마 전에 그 환자가 병상에서 막 내려오려 하는 걸 아내가 보게 되었다. 아내는 급한 나머지 재빨리 다가가서 못 내려가게 하려고 했다. 이 상황을 내가 보고 아내한테 보호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당신이 너무 오버한 것 아닌가 했더니 내 눈에 띄는데 태연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낙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웃 환자를 돌보아주는 것도 환자 본인이나 그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설프게 개입했다가는 자칫 오해받을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은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했다. 세상이 본인의 선의대로 돌아가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나보고 당신은 참 몰인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몰아친다. 나는 그 이상의 말은 삼갔다. 그러다가 또 내가 "당신은 참 오지랖이다."고 했더니 발끈하고 성을 낸다. '내 진심은 당신의 그런 행동을 힐난하는 게 결코 아니고, 당신도 손가락이니 무릎, 허리니 하면서 안 좋다면서 아껴야 오래 쓸 수 있는데 남용하지 말라고, 당신 건강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하고 부연하려다가 용케 참았다. 더 이상 하다가는 더 큰 말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ㅇ아무개 환자의 두 번째 이야기, 낙상(落傷) 주의보(注意報)
엊저녁에 ㅇ아무개 환자가 어쩌다가 침상에서 빠져나와 버려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며칠 동안은 이 환자의 컨디션이 좋다고 간병하던 딸이 참 좋아했었는데, 그만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주말 근무의 간호사들은 물론 당직의까지 출동하였다. 낙상(落床) 이후 다른 부상 등 사고 여부를 판정해야 하는데 낙상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모두 설왕설래한다. 자칫 잘못 판단해서 처치하면 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병원 간호사실에는 "무 낙상 **일째"의 기록이 깨어질 것인지. 이렇게 소동을 일으키다가 모두 잠이 들만한 늦은 밤이 되니 희한하게 잠잠해지는 것이 병상의 일상 풍경이다.
아침에 그 딸은 너무 속상해서 옥상정원에 나가 30분 동안이나 심하게 울었다고 아내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어제 이후 그 환자가 자꾸 병상을 내려오려고 해서 이를 말리는 딸과 한바탕 씨름을 일삼다가 결국은 아비가 먼저 딸에게 맨정신으로는 뱉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궁여지책으로 간호사가 환자의 팔목을 묶는 사태로 발전된다. 그러니까 환자는 더욱 자극받아 광증(狂症)을 부린다. 종일 이러한 장면의 반복이 목격되곤 한다. 8개월 전 환자가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버스에 머리를 다친 후 나타내는 증상이라고 했다. 사람의 정신 체계가 외부의 물리적 타격으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목도한 셈이다.
"작업장 가야하는디, 버스비 없으니 빌려달라, 천만 원 빌려준 돈 받아야 하는데…. 계좌번호도 알려줘야 하는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오늘도 병실에서나 치료실에서 이 환자는 쉰 목소리로 호남 지방 어딘가의 자기 주소를 말하거나 뭔가를 호소하는 말을 반복한다. 한 팔은 끊임없이 바닥이나 치료실 기구나 치료 기구의 난간을 두드려댄다. 그것이 아주 리드미칼하다. 나는 엊저녁까지도 툭툭거리는 이 소리가 딸이 환자인 제 아비를 진정시켜 아기 잠재우려는 소리로 알고 들었었다. 이제야 그 환자가 제 한 팔을 종일 두드려대는 소리임을 나는 알았다.
오늘 저녁 식사 후에는 더 큰 소동을 일으켰다. 이 일로 그 환자는 침상에 누운 채로 병실에서 치료실로 옮겨졌다. 간호사실에서 다른 환자가 그 소음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와 안면방해 겪을 수 있어서 이동한다고 했다. 2025.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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