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나의 암울 시대를 건너는 법 1/이런 노래들은 들을수록 내가 한껏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청솔고개 2020. 7. 30. 15:50

나의 암울 시대를 건너는 법 1

 

                                                                                청솔고개

   고향 친구와 밥 한 끼 같이하면 으레 반주 한 잔씩 한다. 그 때 단골 안주로 등장하는 것은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청춘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누구나 한 생애 살아오면서 가장 치열하고 인상적인 삶의 고비를 지나왔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닥칠 일이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보다는 자연스레 지난 날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제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훨씬 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친구와의 그런 대화는 늘 내게 위안을 준다.

   이제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다. 해질 무렵 혹은 밤늦게 혼자 걸어서나, 아니면 자전거 타고 집에 오면서 온갖 상념에 잠긴다. 대개 술이 한 잔 들어가 있으니 더욱 비감에 젖는다. 이때 나의 행동은 준비해 놓았던 이어폰을 폰에 연결해서 즐겨듣던 ‘최신 옛 가요’ 듣기다. 나의 최신 옛 가요란 어린 시절 들어서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그 때 내 가슴에도 푹 꽂히어서 평생 기억에 남아 있는 노래들이나 그런 성향의 가수가 불렀던 다른 노래들이다. 최근에는 그런 희귀자료들도 유 튜브에서 속속 공개되니 정말 반갑다. 이런 노래들은 들을수록  내가 한껏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새벽길’의 남정희 가수의 몇몇 옛 노래는 작년 내가 찾아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새벽길’은 그 청아한 음색과 소박하면서도 시적 감수성이 밴 창법과 가사로 마치 새벽의 메아리처럼 당시 10대 후반 나의 가슴을 헤집고 갔던 기억이 평생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새로 발굴한 그의 ‘혼자 가는 길’, ‘무정’, ‘갈등’, ‘흐르는 눈물은 누구 때문에(엘레지)’ 등도 새벽길 못지않은 애조의 절창이며 명곡들이다.

   당시 엘레지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은 이미자 가수와 비견되는 노래 실력을 보이다가 50년생인 그가 79년의 교통사고로 30대 초반에 비운에 간 사실을 확인하고는 더욱 빠져들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정서를 공감 받고자 몇몇 친구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으나 한마디로 곡조가 가사가 너무 청승맞아서 지금의 정서와는 안 맞는다고 해서 내가 살짝 풀이 죽었던 기억도 있다.

 

‘새벽길’ [노래, 남정희]

1)사랑은 하늘가에 메아리로 흩어지고 /그 이름 입술마저 맴돌아서 아픈데

가슴에 멍든 상처 지울 길 없어라 /정답던 님의 얼굴 너무나도 무정해 울면서

돌아서는 안개 짙은 새벽길

2)꽃잎은 눈처럼 창가에 내리는 밤 /기러기 날개 끝에 부쳐보는 사연은

사랑이 병이 되어 찾아온 가슴에 /뜨겁던 님의 입김 너무나 차거워

울면서 돌아서는 안개 짙은 새벽길

 

‘갈등’ [노래, 남정희]

1)누구라 바라보나 고운 꽃 손에 들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 모습도 같구나

흩어진 구름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잊어야지 하면서 가슴이 아프도록

아아 불러보는 그 사람

2)누구라 부르는가 손수건 흔들면서 /소리 없이 웃어보는 그 입매도 같구나

사랑한 그 시절도 미웠던 그 마음도 /버려야지 하면서 이 몸이 지치도록

아아 찾아보는 그 사람

 

‘흐르는 눈물은 누구 때문에(엘레지)’ [남정희]

1)흐르는 눈물은 누구 때문에 /쓰라린 엘레지의 붉은 불빛이

바람에 휘날려서 엘레지를 뿌리네 /고독한 내 가슴의 옛 상처를 꼬집으며

스쳐가는 바람소리 나를 울리네

2)가슴에 상처는 누구 때문에 한없는 /엘레지의 숱한 사연이 바람에 휘날려서

엘레지를 뿌리네. 외로운 내 가슴에 /차가웁게 불지마라

잊어버린 옛 사랑이 나를 울리네

 

‘혼자 가는 길’ [노래, 남정희]

1)걸음마다 자욱마다 아쉬움 두고 /나 혼자 가는 길은 외로운 길 슬픈 길

돌이켜 보는 옛날 못 잊을 옛날 걸음마다 /새기면서 혼자 가는 길 아아아~~~끝없는 외로운 길

2)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리움 /가슴에 간직하고 간 길은 슬픈 길

당신은 오래 전에 잊었겠지만 못 잊어서 울며울며 /혼자 가는 길 아아아~~~너무나 고달픈 길

 

‘무정’ [노래, 남정희]

1)다시 한 번 불러보고 싶은 마음은 /내 스스로 달래이는 서러운 눈물

잊어야할 님이라서 잊으려 해도 /약한 것이 여자이기에 못 잊어 내가 웁니다.

2)영영 다시 맺지 못할 사랑이기에 /님이 가신 발길 위에 흐르는 눈물

미련일랑 두지 말자 다짐을 해도 /약한 것이 여자이기에 못 잊어 내가 웁니다.

 

   특히 비오는 저녁이면 나의 이런 버릇은 더 심해진다. 집에 오면서 역전 광장에도 앉아 있다가 오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때로는 플랫폼 안에까지 들어가 본다. 여행객 예나 지금이나 살짝 들떠 있고 설레는 표정에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건 분명히 내가 바로 떠나고 싶은 거다. 이어폰의 애조 띤 노래를 한껏 들으면서 나도 상행선이든 하행선이든 떠나고 싶다. 

   이제는 철따라 가로수나 공원의 숲이 달라짐이 주는 데 대한 무상(無常)함, 이와 관련된 감상벽(感傷癖)이 이런 상념을 더욱 부추긴다.   2020. 7. 20.